“6.25 때 납북 민간 지도층 5천여명”

6.25전쟁 정전협상 초기인 1951년 12월 한국 정부는 당시 확인됐던 납북자 2만명 가운데 사회지도층 인사가 4분의 1인 5천여명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하고, 이들의 송환을 전쟁포로와 같은 차원에서 추진할 것을 요구하면서 정전협상 불참 가능성도 위협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6.25전쟁납북인사가족협의회(이미일 이사장)는 25일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의 후임인 매튜 릿지웨이 극동최고사령관이 1951년 12월 12월 합동참모본부에 보낸 극비전문에서 “유엔군사령부 대표단의 이(Lee) 장군은 5천명이 넘는 남한 지도층 민간인의 석방이 전쟁포로와 같은 차원에서 모든 노력이 경주돼야 한다고 강력히 요구했다”고 기술했다고 밝혔다.

외교부의 외교정책자료실에서 찾아낸 이 전문은 ‘이 장군’의 신상에 관한 구체적인 언급이 없으나 정전협정 당시 유엔군사령부에 소속된 한국군 대표를 일컬은 것으로 보인다.

릿지웨이 사령관은 이 전문에서 “이 장군은 자기 정부의 입장을 강하게 표시했다”며 “만약 이 문제가 협상에서 제기되지 않을 경우 그의 정부에 의해 유엔군사령부 대표단을 어쩔 수 없이 떠나게 될 것이라고 비공식적으로 말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릿지웨이 사령관은 “남한 정부의 바람을 충분히 이해하지만, 본인은 이 문제의 성격 자체가 정치적이므로 민간인 송환 전체 문제가 논의될 때 처리돼야 한다고 확신하며 어떤 경우든 전쟁포로 문제에 대한 결정이 있기 전에 이 문제를 제기하지 않을 작정”이라고 이 전문에서 밝혔다.

협의회측은 그러나 5천여명의 명단이 존재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존 무초 초대 주한미대사도 1951년 12월 5일 미 국무장관에게 보낸 극비전문에서 “김(김성수) 부통령이 어제 병상에서 2만명의 피랍 한국인 송환은 특히, 아주 필요한 지도자들이 많이 포함돼 있어 휴전과 관련해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강조하는 전갈을 본인에게 보내왔다”고 밝혔다.

무초 대사는 “이 문제를 제기하지 못하면 남한 여러 단체의 광범위한 비판과 불만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생각한다”며 “나는 공산측이 한국의 민간인들을 송환하는 데 동의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보지만 (공산측에) 최종적으로 타결될 목표보다 훨씬 더 많이 요구할 때인 것 같다”고 건의했다.

이미일 협의회 이사장은 “민간인 송환이 성사되지는 않았지만, 당시 우리 정부가 피랍자 송환에 무관심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자료”라며 “지금도 정부가 피랍자 생사 확인 및 송환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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