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당시 지휘권 박탈된 김일성 주도로 전쟁 승리?”

진행 : <노동신문 바로보기> 시간입니다. 27일은 정전협정이 체결된 지 63년이 되는 날입니다. 북한에서는 이날을 ‘전승절’이라고 주장하면서 기념하고 있는데요. 26일 오늘은 ‘전승절’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해설에 장성무 방송원이 수고해 주시겠습니다. 안녕하십니까.

– 전승절을 앞두고 노동신문에서 분위기 띄우기에 나서고 있습니다. 우선 북한의 전승절이 어떤 날인지 설명해주시죠.

북한에서 전승절은 말 그대로 북한이 조선전쟁(한국전쟁)에서 승리했다는 뜻으로 만든 명절입니다. 고급중학교 1학년 교과서 중에 <김일성혁명력사>라는 게 있는데, 교과서에 담긴 내용을 보면 “세계 최강을 자랑하던 미제침략자들은 선군으로 억세어진 조선인민군과 인민들에게 무릎을 꿇고 정전협정문에 도장을 찍었다. 그처럼 가열 처절했던 3년간의 조국해방전쟁은 우리인민의 빛나는 승리로 끝났다”고 선전하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는 정전협정은 잠시 휴전한 것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북한에서는 그날을 자신들이 조국해방전쟁에서 승리한 날처럼 날조해 기념하고 있는 겁니다.
 
– 북한이 처음부터 전승절을 기념하지는 않았다고 알고 있습니다. 언제부터 전승절을 기념한 것인가요?

1960~7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전승절이 없었어요. 처음에는 북한도 ‘정전협정일’이라고 부르다가 1996년도에 말을 바꿔 본격적으로 조국해방승리의 날, 즉 ‘전승절’이라고 제정해서 기념하고 있습니다. 
 
– 말씀을 듣고 보니, 북한 당국의 주장과 역사적 사실이 맞지 않습니다. 북한은 ‘북침전쟁을 일으킨 미국과 싸워 이긴 승리의 날’을 전승절이라고 하는데요, 침략을 먼저 한 건 북한 아닌가요?

자신들이 침략을 해놓고도 침략 당했다고 선전하는 게 북한 당국입니다. 북한이 먼저 침략했다는 것은 더 말할 것도 없는 진실이고, 전 세계 모두가 이를 알고 있죠. 그럼에도 북한 당국은 그 자체를 숨기는 것이 가장 급선무이기 때문에 그런 주장을 계속하고 있는 겁니다.

– 미국과 유엔 연합군이 참전한 날만 봐도 북한이 먼저 침략한 사실을 알 수 있겠는데요?

1950년 7월 5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유엔군을 창설하면서 (유엔군이) 참전을 결정한 거잖아요. 이것만 봐도 누가 먼저 침략했느냐는 명백하죠. 그렇지만 북한에선 유엔군이 전쟁을 일으켰다고 표현합니다. 미제와 그 추종자인 이승만 괴뢰도당이 침략을 먼저 했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죠.
 
– 그렇다면 주장대로 북한이 전쟁에서 승리를 많이 거뒀습니까?

실제로 보면 6·25전쟁에서 북한이 승리한 기간은 한 달 반 정도 입니다. 초기에는 북한이 전략적으로 먼저 침공을 했으니까 아무런 방어조차 없이 있던 남한 국군이 상당히 밀릴 수밖에 없었죠. 그래서 3일 만에 서울도 빼앗기고 한 달 반 만에 낙동강까지 내려왔었어요. 그런데 유엔이 1950년 7월 5일에 참전을 결정하고 8월 초에 낙동강방어선을 구축했더니, 승승장구하던 북한군의 공격기세가 꺾이기 시작했죠. 특히나 인천상륙작전 이후부터는 북한군들이 패배를 많이 당했습니다. 
 
– 북한 당국은 6.25 전쟁 당시 최고사령관이었던 김일성의 탁월한 전략으로 미국을 물리쳤다고 선전하고 있는데요, 사실 전투에 계속 패해서 중국 팽덕회에게 지휘권을 빼앗기지 않았나요?

그렇죠. 제가 어릴 때만 해도 이 ‘팽덕회’와 ‘무정’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어서 저도 자세히 알고 있었는데, 지금 40, 50대 사람들은 팽덕회가 누군지, 무정장군이 누군지 잘 모르더군요. 6·25 당시, 낙동강까지 내려갔던 북한군이 후퇴를 하면서 거의 중국 국경까지 밀려난 적이 있었는데, 그 때 북한을 도와준 사람이 모택동이었어요. 모택동은 ‘항미원조보가위국’ 구호를 내걸고 10월에 지원군을 조선전쟁에 참선시켰죠. 그때부터 조중연합이 꾸려졌고 이에 따라 지휘권이 사령관 팽덕회에게 넘어갔어요. 명실상부하던 사령관 김일성이 지휘권 없는 존재가 됐죠. 특히 팽덕회는 큰 전투를 벌이거나 작전 계획을 잡을 때고 김일성을 참가시키지 않을 정도로 무시했다고 해요. 심지어 전쟁 마바지에 유엔군과 정전협정 교섭을 할 때 역시 그 책임을 전부 모택동이 가졌거든요. 이 사실만 봐도 당시 김일성이 탁월한 전략을 가지고 미제침략자들을 물리쳤다는 말은 정말 말도 안 되는 이야기죠.

– 전쟁이 길어지자 김일성은 정전협정을 빨리 체결하기를 원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소련의 스탈린이 거부해서 휴전협상이 길어졌다면서요?

정확한 얘기입니다. 김일성은 조선전쟁이 장기화 되는 것을 견디지 못하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유엔군 측 주장을 모두 수락할 테니 하루 빨리 정전하자고 호소까지 했습니다. 그러자 스탈린은 미국에 약한 모습을 보여줘 정치적 불이익을 초래했다는 이유로 김일성을 호되게 질책했죠. 이에 김일성은 아예 러시아의 타스 통신 기자를 불러 정전을 호소하는 기자회견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그마저도 구소련 정부의 방송 통제로 일반 주민들에겐 전달되지 않았죠. 그렇게 김일성은 계속 고민을 하다가 중국의 주은래를 내세워 스탈린을 설득하려고 했습니다. 주민들이 이미 많이 죽었고, 대부분 굶주리고 있어서 더 이상 전쟁을 할 여력도, 의지도 없다면서 말이죠. 반면 스탈린은 계속 현 상태에서 전쟁이 끝나면 러시아가 불리해진다고 생각해 정전 협정을 반대했습니다.

그럼 스탈린은 대체 왜 정전협정을 반대했느냐. 당시 소련 점령 하의 독일이나 유럽에서는 경제난 악화로 인해 시위가 많이 일어나고 있었는데요. 그 중에서는 살길을 찾아 서방으로 탈출하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조선전쟁이 끝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스탈린은 미국이 한숨을 돌리게 되면서 동유럽이나 사회주의 국가들에 개입을 할 것이라고 본 것이죠. 그래서 스탈린은 미국을 조선반도 전쟁에 계속 묶어두고 싶었던 겁니다. 그러나 스탈린은 1953년이 되자 갑자기 죽습니다. 그리고 그가 죽은 해의 7월 27일, 정전협정조약이 체결됐죠.

– 그런 배경이 있었네요. 북한 당국의 역사왜곡이 얼마나 심각한지 알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1953년은 7월 27일은 전승절이 아니라 김일성이 일으킨 전쟁을 중단하기 위해 정전협정을 체결한 날이라고 바로잡아야 할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장성무 방송원과 함께 했습니다.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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