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 땐 올바른 군함 한 척 없었어”

6.25전쟁이 한창인 1950년 9월15일 새벽 4시 인천 월미도 앞 해상.

칠흑 같은 어둠 속에 미국 군함의 18인치 함포가 불을 뿜자 옆에 있던 대한민국 512정은 마치 포탄을 맞은 듯 충격을 받았다.

3만t급 미 군함과 비교하면 512정은 300t급에 불과한 소형 함정이기 때문.

미군함에서 함포사격을 할 때마다 512정은 전복될 듯 좌우로 심하게 흔들렸고.

항해실에 달린 문은 열리고 닫히는 과정을 반복하다 결국 부서져 버렸다.

“인천상륙작전을 하는데도 우리는 대포 한 방 쏘지 못했지. 아니 함정에는 쏠 대포조차 없었고 미군함의 경비만 맡았어”
6.25전쟁 때 해군으로 참전한 조경래(80.경남 진주시.당시 일등 수병) 씨는 22일 연합뉴스 기자와 만나 인천상륙작전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제대로 된 군함 한 척 없었던 우리 해군의 실정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는 “우리 함정은 군함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규모가 작아 함정 번호를 앞에 붙여 512정, 513정 등으로 불렀다. 40㎜ 기관포 두 정이 무기 전부였다”고 말했다.

그는 “1953년에는 군함이 부족하자 600t급 화물선 5척에 각각 야포 2개씩을 장착해 바다 위 전장에 투입하는 것을 봤다”고도 했다.

그러나 무기의 열세에도 그가 탄 512정은 북한군과의 해전에서 지지 않았다.

수차례 교전에서 큰 피해를 보지 않고 무사했으며 북한 함정 2~3척을 격침했다고 그는 밝혔다.

1953년 여름 강원도 원산시 원산만 아래 고성 연안에서 아침식사를 하려는데 그의 밥과 반찬 등이 하늘로 치솟았다.

그가 탄 함정의 아랫부분이 북한군 비행기에서 쏜 포탄에 정통으로 맞은 것.

함정 옆 부분에서 바닷물이 들어왔고 전우 몇 명은 피를 흘리고 쓰러졌다. 순식간에 아비규환이 됐지만, 다행히 함정은 침몰하지 않았다.

이후에도 수차례 비슷한 경험을 했다. 쓰러진 전우들을 돌보고 함정을 수리하면서 전쟁의 참상을 뼈저리게 느꼈다.

그는 수차례 해전에서도 살아남아 전쟁이 끝난 1956년 9월 상사로 전역했다.

그는 “전장에서 많은 전우가 후송됐지만, 지금까지 연락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어 거의 숨졌을 것으로 생각된다”며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쳤다.

이어 “6.25전쟁 때 해군은 종이배로 나라를 지키는 큰 일을 해냈다”며 “그러나 전쟁의 참상이 다시 재발돼서는 안된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진주시 재향군인회가 오는 25일 진주교육대 대강당에서 여는 ‘제59주년 6.25전쟁 기념 시민대회’에서 진주시장으로부터 ‘장한 용사 상’을 받는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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