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여학교 입학식 날. (영화는) 9시까지 등교해 혼자 입학식을 치르고 마음이 상해서 왔다. 바빠서 혼자 보냈더니 그런 모양. 이럴 때 영화 아버지가 계셨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하다. 어느새 영화가 자라서 여학생으로서 씩씩하게 공부한다. 영화 부친이시여, 이것을 보고 계십니까.”
6·25전쟁 당시 남편 하격홍 씨를 북한에 납치 당한 성갑순 씨의 일기 중 한 대목이다. 성 씨는 남편이 납북된 직후부터 지끔까지 매일 일기를 쓰며 남편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왔다.
그는 세 딸들에게도 “(이 일기들을) 꼭 읽을 것을 부탁한다. 너희를 탄생시킨 어미의 ‘유언’이니 너희의 필생을 두고 읽기 바란다. 장구한 생활의 역사이니 너희가 몰랐던 것들, 내 한 맺힌 일기를 보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처럼 6·25 전쟁 납북자들의 가족들은 6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가족의 소식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기다림과 절망의 시간을 견뎌온 가족들에게 반가운 소식이 전해졌다. 오는 2일 ‘6·25전쟁납북진상규명위원회’에서 60여건의 납북자 피해 신고에 대한 심사를 진행해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전시 납북은 북한에 의해 조직적으로 이뤄진 것이었지만, 전쟁 중에 발생했고 납치를 증명할 실증자료가 충분치 않다는 이유로 지금까지 정부 차원에서 공식 인정은 이뤄지지 않았었다. 이번 심사는 6·25전쟁 기간 북한에 의해 민간인이 납치됐다는 것을 정부 차원에서 처음으로 공식 인정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전쟁 당시 조부모님이 동시에 북한에 납치됐던 이무헌 씨는 1일 데일리NK와 전화를 통해 “늦었지만 잘 됐다”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이 씨는 “6·25 전쟁 통에 학교도 못 가고 할아버지와 밥을 먹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인민군들이 들어오더니 ‘너, 할아버지 할머니 앞으로 언제 볼지 모르겠다’라는 말을 남기고 할아버지 할머니를 끌고 갔다”면서 “만약 조부모님께서 안 가겠다고 저항했다면 나와 우리 아버지는 지금 이 세상에 없었을 것”이라고 회고했다.
그러나 하격홍 씨의 딸 하영남 씨는 “국가에서 공식 인정 한다는 것만으로는 우리에게 큰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하 씨는 “정부에서 공식인정했다는 것은 ‘아, 이제 정부가 제대로 관련 사안들을 처리하겠구나’라는 정도의 감흥만 올 뿐”이라면서 “가해자인 북한이 인정을 안 했는데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겠나”라고 울분을 터트렸다.
이어 “북한에서 이것을 공식 발표해 생사여부를 확인해줬다면 우리에게 큰 의미가 있었을 것이다. 우리의 응어리는 아직 그대로”라고 덧붙였다.
이미일 6·25전쟁납북가족협의회 이사장은 “정부가 납북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섰다는 것 자체가 가족들에게 위로와 기쁨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서 “61년이 지나 얻은 성과이기 때문에 감회가 새롭지만 한편으로는 (납북자 가족들을) 오래 기다리게 해 죄송하다”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 우리가 이 문제를 해결하고 납북자들을 제자리로 모시기 위해 정부와 함께 더욱 열심히 노력할 것”이라는 의지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