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사 美해군 대위 추모공원 건립

6.25전쟁에 참전했다가 전사한 미 해군대위 고(故) 윌리엄 해밀턴 쇼(한국이름 서위렴)의 추모공원이 2010년 서울에 건립된다.

해군은 22일 쇼 대위의 고귀한 희생정신과 한국 사랑을 기리기 위해 인천상륙작전 60주년을 맞는 2010년 6월 현충일을 전후해 완공한다는 목표로 그의 추모공원을 건립할 것이라고 밝혔다.

추모공원은 현재 그의 기념비가 있는 서울 은평구 응암어린이공원에 건립될 예정이다.

1922년 6월 평양에서 선교사로 활동하던 고(故) 윌리엄 얼 쇼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했다’는 꼬리표를 달고 다닌다.

평양에서 고등학교까지 마친 쇼 대위는 1945년 해군 중위로 노르망디 작전에 참가했다가 2년 뒤 전역했다. 이후 진해 해군사관학교에서 영어와 함정 운용술 교관으로 생도들을 가르치는 등 초창기 해군 건설에 크게 공헌했다.

1950년 미국 하버드 대학 박사 과정에서 공부를 하던 중 6.25전쟁이 발발했다는 소식을 듣고 미 해군 대위로 재입대해 한국으로 돌아왔다. 한국을 ’제2의 조국’으로 생각했고, 자신이 직접 가르쳤던 해군사관생도들을 내버려 둘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부모님에게 “지금 한국 국민이 전쟁 속에서 고통당하고 있는데 이를 먼저 돕지 않고 전쟁이 끝난 후 평화가 왔을 때 한국에 간다는 것은 제 양심이 도저히 허락하지 않습니다”란 편지를 전하고 한국행을 선택했다고 한다.

인천상륙작전에서 맥아더 장군의 부하로 참가한 쇼 대위는 서울탈환 작전에도 참가했다. 하지만 그는 1950년 9월22일 미 해병 7연대의 서울 접근을 위해 적 후방 정찰을 목적으로 은평구 녹번리에 접근하던 순간, 매복 중이던 공산군에게 저격당해 산화했다.

당시 29세로, 국군의 서울 탈환을 일주일 앞둔 때였다. 쇼 대위는 현재 부모와 함께 서울 마포구 합정동 외국인 묘역에 잠들어 있다.

우리 나라에 군목제도를 처음 도입하게 한 그의 부친은 대전에서 기념교회를 건립하고 목원신학대학에서 교수로 활동하다가 1967년 10월 미국에서 타계했으며 시신은 유언에 따라 아들 곁에 안장됐다. 어머니 아델린 해밀턴 쇼는 남편과 함께 선교사, 교사로 평양과 서울, 대전에서 활동하다가 1971년 5월 타계한 뒤 역시 남편과 아들 옆에 묻혔다.

해군과 은평구청은 22일 오후 3시 응암어린이공원에서 쇼 대위 전사 58주기 추모식 및 추모공원건립추진위원회 설립대회를 개최한다. 행사에는 역대 해군참모총장인 이성호(5대), 함명수(7대), 김영관(8대), 안병태(20대) 예비역 대장 등이 참석한다./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