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납북자 가족, DNA 영구 보존한다






▲6.25납북자 가족의 DNA 샘플을 채취중이다.ⓒ김봉섭 기자
7일 6.25전쟁납북인사가족협의회가 주최한 ‘6.25납북희생자 기억의 날’ 기념행사에 참석한 6.25납북자 가족들은 DNA 검사를 받고 샘플을 채취해 영구 보관키로 했다.


최광석 운영위원은 “앞으로 통일이 되거나 북한이 전쟁납북자를 인정하고 유해 발굴 등을 허락할 때를 대비한 것”이라며 “납북자들의 DNA 샘플을 통해 그 유해의 가족을 쉽게 찾기 위함”이라고 말했다.


또한 어버이날마다 부모님 가슴에 카네이션을 달아 들이지 못한 전쟁 납북자들을 위해 납북자들 사진 앞에 헌화하는 시간도 가졌다.


헌화를 마친 김지성(76·남) 씨는 “속은 타고 말이 안 나온다”고 말했다. 김 씨는 1950년 8월 15일 갑작스런 북한군의 방문으로 아버지와 헤어졌다. 당시 김 씨는 중학교 3학년이었다.


또 다른 전쟁 납북자 자녀는 질문에 답하지 못하고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기도 했다.








▲6.25납북자 자녀들이 부모님 사진 앞에 헌화후 기도드리고 있다.ⓒ김봉섭 기자


이날 행사에서는 북한에서 태어났다 탈북한 전쟁 납북자의 자녀 장귀화(가명·여) 씨의 증언도 이어졌다.


“18살에 친할머니와 같이 있었다. 빨리나오라는 소리가 들렸다. 아버지가 큰 아들이어서 나갔다. 그 걸음이 마지막이었다. 영문도 모르게 마당에 모인 남자와 여자들이 있었다. 점심때 걷기 시작해서 저녁에 도착했다고 한다. 도착하니 인민군이 옷을 주고 총을 줬다. 총길이가 몸길이와 비슷하셨단다. 어머님이 편찮으셔서 집에 가야 한다니까 몰매를 맞았다. 이것이 영원한 이별이었다.”


장 씨가 전해 들은 아버지의 납북 순간이다. 아버지 장 씨는 영문도 모르게 끌려가 북한에서 갖은 고생을 했다. 3일에 한 번씩 끌려가 그동안 어떤 일을 했는지 적어야 했고, 고향에 대한 말을 하지 못하는 아픔도 있었다. 장 씨 집 근처에는 국군포로 5가족이 살고 있었는데 그들이 사망했을 때 장례식에 가지 못하고 방안에서 혼자 눈물을 흘릴 뿐이었다고 장 씨는 회고했다.


‘납북자’라는 아버지의 ‘유산’은 장 씨를 비롯한 7남매에겐 지울 수 없는 고통으로 다가 왔다. 이들은 아버지의 출신 때문에 원하는 직장도 결혼도 할 수 없었다.


장 씨도 당 간부의 자식과 결혼했지만 신랑은 높은 자리를 앉기 위해 장 씨가 34살이 되던 해 이혼을 통보했다. 장 씨는 이혼의 슬픔에 “책임지지 못할 자식을 왜 낳았냐” 라는 험한 말도 아버지에게 했다고 말했다.

장 씨는 아버지에 대한 추억과 납북가족들의 슬픔과 아픔에 대해 이야기하는 내내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이날 행사에는 현병철 국가인권위 위원장과 엄종식 통일부 차관을 비롯, 6.25납북자 가족 300여명이 참석했다.


현병철 위원장은 격려사를 통해 “그동안 납북자는 물론 그 가족들이 겪어온 고통을 생각하며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하며 “국가인권위원회는 납북자문제는 물론 북한인권의 개선과 해결을 위해서도 적극적인 노력을 경주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회 일정상 자리에 참석하지 못한 김무성 한나라당 원내대표도 “북한도 전시납북자를 비롯한 국군포로 문제들을 회피만 할 것이 아니라, 납북사실을 인정하고 우리 희생자 가족들에게 사죄하며, 빠른 시일 내에 전시희장자들의 생사확인과 유해 송환을 실시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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