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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5 남북정상회담 5주년이 가까워 오고 있다. 많은 정치인들과 친북단체들이 북한에 가기위해 분주하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5년 전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될 당시 나는 아버지를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감에 밤잠을 설쳤다. 하지만 달라진 것은 없었다.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된 지 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납북자 가족들의 눈물샘은 마르지 않고 있다.
납치된 어부들을 정치적 인질로
나의 아버지 최종석(55)씨는 1987년 1월 15일 백령도 부근에서 북한경비정에 의해 납치된 <동진호> 어로장이다. <동진호>는 민간 어선이기에 당시 북한은 간단한 조사만 끝내고 그해 2월 선원들을 송환하겠다는 의사를 우리 정부에 통보했다. 텔레비전을 통해 이 소식을 전해 들은 우리 가족은 설을 앞두고 아버지의 귀환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 즈음 북한에서 김만철(金萬鐵)씨 일가족이 탈북해 일본에서 한국망명을 신청했고 우리 정부는 이를 받아들였다. 그러자 북한은 즉각 <동진호> 선원 12명과 김씨 일가 11명을 맞교환하자는 제의를 했다. 우리 정부는 이를 거절했다. 이곳에서 김씨 가족을 환영하는 행사가 떠들썩 하던 때에 나의 아버지 최종석씨는 북한에서 남한간첩으로 몰려 모진 고통을 받아야 했다. 그리고 짐승보다 못한 취급을 받으며 정치범 수용소에 수감되어 있다는 국가정보원의 발표를 들었다.
아버지를 마지막으로 본 1987년 아버지는 유난히 바다로 나가기 싫어하셨다. 아마도 나쁜 예감을 느끼셨던 것 같다. 아버지가 타셨던 <동진호>는 작업이 고되기로 유명한 저인망 어선으로 태풍주의보가 내리기 직전까지 파도와 싸우며 고기를 잡았다. 분명한 것은 아버지는 우리 가족을 위해 가장으로서 목숨을 걸고 험난한 파도와 싸우다 북한으로 납치된 무고하고 평범한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사실이다.
납북자를 간첩으로 몰아
아버지의 마지막 행적을 찾아 백령도에 갔을 때, 그곳에서 아버지와 <동진호>에 대해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물어 보았다. <동진호>에 대한 희미한 기억을 가진 목사님도 만났고, 20년 넘게 저인망 어선에 생필품을 대는 40대 중반의 아저씨도 만났다. 그러나 내가 발견한 것은 백령도 사람들은 납북자들에 대해 말하는 것을 상당히 꺼려한다는 점이었다.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장산곶이 잡힐 듯 가까운 백령도 인근에는 납북된 사람들이 유독 많았다. 안개라도 끼는 날이면 실수로 북쪽으로 길을 잃는 일이 다반사라는 것이다. 그렇게 북으로 넘어 간 사람도, 다시 남쪽으로 돌아온 사람도 이쪽 저쪽에서 무수한 고통을 당해야 했다. 생업의 바다가 아니라 이념의 바다, 분단의 바다, 그리고 원한의 바다가 그곳에 있었던 것이다.
백령도 사람들이 본능적으로 납북자에 대해서 말하는 것을 꺼려하는 이유를 알게 되자, 나는 그동안 이 땅에서 납북자문제가 덮어져 있어야만 했는지 까닭을 알게 되었다. 과거 고문 경찰로 악명이 높았던 이근안 재판에서 ‘납북어부에 대한 고문혐의’가 사실로 인정되었듯이 수많은 납북자들과 그 가족들, 그리고 송환자들이 숨죽이고 있어야만 했던 슬픈 역사가 이 땅에 있었던 것이다.
비전향장기수는 돌아가고, 납북자는 오지 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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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숫자는 북한에 계신 내 아버지의 주민등록번호다. 나는 이제 결혼을 해서 남편의 호적에 올라가 있지만 어머니와 남동생의 호적에는 아버지가 호주로 되어 있다. 대한민국의 법률은 그를 아직도 국민으로 인정하고 있다. 우리 정부는 이 사실을 똑똑히 알아야 한다.
지금까지 북한당국은 비전향장기수의 송환을 각종 회담의 의제로 밀어 부쳐, 결국 희망하는 비전향장기수는 모두 북한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억울하게 억류된 내 아버지와 같은 가난한 국민들은 남에서도 북에서도 따돌림 당하고 있다.
더구나 비전향장기수는 북한의 입장에서는 영웅이나 혁명가일지 모르지만 남한의 입장에서는 어쨌던 반국가 활동을 했던 사람들이다. 그런데 오직 가족을 위해 험한 일을 마다하지 않았던 납북어부들이 무슨 죄가 있길래 이처럼 철저히 외면당하는지 목이 메일 따름이다.
분단 이후 처음으로 남북정상이 마주 앉은 6.15 정상회담을 기념하는 것은 나름대로 그 의미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같은 동포를 정치적 인질로 삼는 사람들과 자국민들에 대한 최소한의 생명보호도 못하는 사람들이 마주 앉아 ‘민족행사’를 운운하는 것은 참기 어렵다.
그들의 잔치상 위에 납북자 가족들의 피눈물이 흐르고 있다는 점을 알고나 있을까?
최우영 / 납북자가족협의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