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5축전 첫째날 이모저모

6.15민족통일대축전 공동행사에 참가한 남.북.해외 대표단과 평양시민 등 3천여명은 첫날인 14일 평양시 대성구역에 있는 고구려 시대의 대성산성 남문 앞 잔디광장에서 개막식 행사를 가졌다.

대표단은 개막식 이후 동평양대극장에서 만수대예술단 공연을 관람한 뒤 인민문화궁전으로 장소를 옮겨 북측이 마련한 환영연회를 끝으로 첫날 일정을 끝냈다.

=야외 파티장 분위기 물씬=

0…당국이 처음 참가했던 2005년 6.15행사 개막식이 김일성경기장에서 대규모 인파가 모인 가운데 치러진 것과 대조적으로 이번엔 남.북.해외 대표단과 평양시민 등 3천여명이 모인 가운데 아늑한 분위기에서 치러졌다.

남문을 배경으로 설치된 무대의 좌우엔 대형 풍선 2개가 띄워져 있고 행사장 주변 4곳에는 대형 양산과 음료대가 설치돼 있는 등 야외 파티장을 방불했다.

행사에 참석한 평양시민들은 ‘단합실현’, ‘조국통일’, ‘평화수호’ 등의 문구가 적힌 손깃발 등을 흔들며 남측과 해외 대표단을 환영했다.

김일성종합대학 컴퓨터공학과 교원이라고 밝힌 김금수(28)씨는 “행사 마지막 날까지 잘 보내고 가시라”며 “북과 남이 서로 앞장서서 통일 문을 열어가자”고 말했다.

개막식 행사는 고적대 및 민속놀이 축하공연, 통일기 게양과 남.북.해외 대표단의 축하연설 등으로 50여 분만에 끝났다.

진 영(한나라당) 의원은 “6.15행사에 대한 남북한의 평가가 다른 것 같다. 북한이 우리보다 행사 의미를 많이 평가하는 것 같다”며 “당에서 일부 의원들이 참가에 반대했으나 그래도 직접 와서 봐야 한다는 생각에 참가했다”고 말했다.

=개막식 시간 오락가락=

0…개막식 행사는 당초 오후 5시로 예정됐으나 여러차례 바뀌면서 그 배경을 두고 설왕설래했다.

대표단이 순안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북측 요원들은 개막식을 1시간 앞당겨 오후 4시에 하겠다며 협의를 요청해 왔고, 남북은 협의를 거쳐 1시간 앞당기기로 했다.

대표단이 행사장 이동을 위해 서둘러 숙소를 빠져나왔으나 출발이 지연되면서 행사는 원래 예정됐던 오후 5시께 치러졌다.

북측 요원은 “개막식을 오후 4시로 앞당기기로 했는데 햇볕이 너무 뜨거워 남측 대표단 선생님들에게 편의를 제공하기 위해 그런가 봅네다”고 추측했다.

그러나 남측 관계자는 “원래 내일로 예정된 환영 연회가 오늘로 앞당겨지면서 개막식 시간도 당겨졌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다른 행사 관계자들은 15일 본행사 연설문에 관한 주최측의 의견 조율 과정이 길어졌기 때문에 개막식 시간에 변동이 있었다고 전했다.

북측 안경호 위원장의 연설문이 ‘우리 민족끼리’의 정신을 강조하며 무려 A4용지 5장분량으로 너무 길게 잡혀 있자 남측이 문제를 제기했다는 것이다.

=동평양대극장 벽화에 감탄사 연발=

0…개막식 후 만수대예술단 공연을 보기 위해 동평양대극장에 들어선 남측 대표단과 해외 대표단은 한쪽 벽면 전체에 그려진 벽화를 보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

금방이라도 ‘우르르 쾅’하며 쏟아져 내릴 것만 같은 폭포벽화는 사진이 아닌 만수대창작사 조선화창작소가 강원도에 있는 ‘울림폭포’를 화폭에 옮긴 것.

그림이 마치 사진같아 참가자들은 저마다 벽화를 배경으로 사진기 셔터를 눌렀고, 연거푸 “대단하다”는 찬사를 보냈다. 일부 참가자들은 믿기지 않는 듯 손으로 만져보며 감탄했다.

김애경 6.15 학술위원회 공동위원장은 “실물보다 더 생생하다”며 “이 그림도 집단창작일 텐데 북측의 그런 능력은 정말 탁월한 것 같다”며 혀를 내둘렀다.

북측 관계자는 “원래 산 속 깊이 감춰져 있던 폭포였는데 2001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현지지도를 나갔다가 발견한 것”이라며 “(김 위원장이) 군인들을 시켜 발굴, 보전하라는 교시를 내렸다”고 설명했다.

=사제지간 47년만의 해후=

0…6.15민족통일대축전은 47년동안 끊어졌던 사제간의 인연도 이어줬다.

6.15 유럽지역위원회 리희세(75) 상임대표와 6.15 캐나다지역본부 김수해(64) 대표는 47년만에 만나 뜨거운 사제간의 정을 나눴다.

서울공고에서 미술교사로 재직하다 1962년 그림을 배우러 유럽으로 떠났던 리 대표는 5년 뒤 동백림 사건에 연루된 큰아버지 이응로 화백의 구명운동을 펼쳤고, 이로 인해 고국에 발을 들이지 못하는 신세가 됐다.

그 뒤 41년간 타국을 전전하며 통일운동을 펼쳤던 리 대표는 2005년 8.15민족공동행사 때 북한을 방문할 수 있었다.

고교시절 이 대표로부터 가르침을 받았던 김수해씨 역시 1987년 캐나다로 이주, 통일운동을 펼쳐왔다.

은사를 잊지 못했던 김 대표는 수소문 끝에 이 대표가 유럽지역의 대표적인 통일운동가가 된 것을 알게 됐으나, 수차례 시도가 불발된 끝에 마침내 13일 해외측 대표단의 숙소인 고려호텔에서 백발이 성성한 은사의 주름진 손을 잡아보게 됐다.

이 대표는 “늙은 제자가 얼마나 나를 껴안고 우는지 눈시울이 뜨거워 혼났다”면서 “제자는 당시 급장(반장)이었다”고 회상했다.

김 대표도 은사의 손을 꼭 잡은 채 “이제 통일이 다 됐다. 이렇게 만나서 대화를 나누는 것이 통일 아니겠는가”라며 “남측 정부도 일찍이 조국을 떠난 사람들이 통일운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특별히 신경을 써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