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5선언’에 따라 북송된 63명 그들은 누구인가?

지난 2000년 9월에 북송된 비전향 장기수들이 북한체제 선전단으로 활동하고 있는 모습이 동영상을 통해 확인됨에 따라 과거 그들의 북송 과정과 행적들이 다시 주목된다.


비전향 장기수는 사상전향을 거부한 채 7년 이상 장기복역한 인민군 포로나 남파간첩을 의미한다. 지금까지 1993년 1명, 2000년 63명 등 총 64명이 북한으로 송환됐다.

비전향장기수 북송 첫 사례는 1993년 북송된 이인모(2007년 사망) 씨다. 그의 북송은 1992년 7.7선언 4주년을 맞아 남북 간 상호주의 원칙에 입각, 이산가족 희망지역 정착 제의에 따라 이뤄졌다.


이 씨는 북송 이후 북한 당국에 의해 ‘의지와 신념의 화신’ ‘통일의 영웅’ 등으로 찬양되었다. 그에 대한 북한의 극진한 대접은 김일성이 자신의 생일(4월15일, 태양절)에 이 씨를 병문안하고 노동당원증을 수여했던 일로 소개되고 있다.


그는 신병 치료차 미국에 다녀왔고 ‘김일성훈장’ ‘영웅칭호’ ‘국기훈장 1급’을 받기도 했다. 또 그를 소재로한 영화 ‘민족과 운명'(제11∼13부)이 제작됐고 이씨의 자작시인 ‘당신만 있으면 우리는 이긴다’ ‘신념과 의지의 찬가’ 등은 노래로도 만들어졌다.


결국 2007년 6월 89세 나이로 사망한 그는 우리의 국립묘지 격인 신미리 애국열사릉에 안치됐다.


장기수 63명 북송 결정은 김대중 정부때 있었던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에 의해 이뤄졌다. 6·15공동선언 3항은 “남과 북은 올해 8·15에 즈음하여 흩어진 가족, 친척 방문단을 교환하며 비전향 장기수 문제를 해결하는 등 인도적 문제를 조속히 풀어 나가기로 하였다”는 내용이다.


따라서 그해 9월 2일 ‘인도주의적’이란 이유로 비전향 장기수 63명은 판문점을 통해 북송했다. 이들은 빨치산 출신 13명, 간첩 출신 46명, 인민군 출신 4명으로 70% 이상이 남파간첩이다. 이들 중 12명은 이미 사망한 상태다. 


북한 당국은 북송 비전향 장기수 63명 전원에게 ‘조국통일상’과 노동당 당원증을 수여했다. 그들에게는 대형 아파트와 각종 생필품, 약재를 공급됐으며 그들의 건강관리는 적십자병원에서 전담케 했다는게 북한의 선전했다.

특히 이들 중 함세환 씨 등 8명이 북한에서 결혼했는데, 이재룡, 함세환 씨는 만혼에 딸까지 얻었다. 이 씨의 딸에게는 김정일이 ‘축복’이란 이름까지 하사했다. 하지만 동영상에서는 축복이를 포함 이 씨 가족 3명은 북한체제를 찬양하는 공연단으로 전락했다. 

북한은 2005년 송환 5주년을 기념해 특집방송을 편성 보도했다. 북한은 방송에서 “일찍이 비전향 장기수 송환문제 해결을 위해 그토록 마음써오신 김정일 장군님께서는 그들이 조국에 돌아온 후에는 ‘비전향 장기수들을 데려왔으니 마음이 놓인다’고 ‘이젠 그들이 성심을 되찾고 영광과 행복 속에 여생을 보내도록 하는게 자신의 임무’라고 하시며 그들을 꽃방석에 앉히어 이세상의 모든 복을 누리도록 은혜를 베푸시었다”고 선전했다.

북한의 대남 기구 조국평화통일위원회가 운영하는 웹사이트 ‘우리민족끼리’는 올해 장기수 송환 10주년을 기념해 지난 8월30일부터 9월 6일까지 매일 한편씩 총 8편의 기사를 연재했다.

9월 2일 기사에서는 북송 장기수들의 생활과 관련 “옷장을 열면 나이에 어울리는 와이사쯔와 넥타이가 받쳐진 양복들, 솜옷들, 철따라 갈아입을 각종 속옷들.. (중략) 부엌에 들어가면 큰공기, 작은공기, 접시, 차잔받치개 등 가정용 결질그릇, 각종 술잔들이 또한 그들의 가슴을 뜨겁게 적셔준다”고 선전했다.

또 이들 가운데 현지에 가족이 있는 사람은 평양시 중구역에 거주하고, 가족이 없는 사람은 평촌구역에서 생활하고 있다는게 북한의 설명이었다. 그러나 이번 동영상을 전한 북한 내부소식통은 “모두 평양시 평촌구역 안산에 거주하고 있다”고 밝혔다. 사실상 다른 주민들과 격리해 감시와 통제를 받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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