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5대표단 숙소 백화원으로 변경 배경은

6.15 공동선언 5주년 행사에 참가하기 위해 14일 방북한 남측 당국 대표단의 숙소가 주암초대소와 흥부초대소 2곳에서 백화원초대소로 변경된 것으로 확인됨에 따라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번 숙소 변경은 이날 평양에 도착한 뒤 갑자기 이뤄진 것이 아니라 서울을 떠나기 전에 미리 우리측에 통보된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 당국자는 이날 “평양에 미리 간 선발대의 숙소가 두 곳으로 나눠져 있어 불편하다는 점을 들어 북측에 요청해 이뤄진 것”이라며 “행사 편의를 위한 것”이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그러나 백화원초대소가 북측의 영빈관에 해당하는 점을 감안할 때 북측이 우리측 대표단에게 극진한 예우의 뜻을 보인 것으로 일단 풀이되지만 그 외에도 다양한 정치적 관측을 낳고 있다. 이런 관측은 백화원이 숙소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다는 점에서 출발한다.

멀게는 1989년 당시 자오쯔양(趙紫陽) 중국 당 총서기가 묵었고 가깝게는 2002년 9월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가 평양을 찾았을 때 회담장으로 사용한 적도 있는 곳이다.

지도자급 인사들이 백화원에 머물며 중요 이벤트를 엮어 낸 사례도 적지 않았다.

1994년 6월 묵었던 지미 카터 전 미 대통령은 당시 제1차 북핵 위기를 푸는 ‘해결사’로 평양을 방문했었고 2000년 6월에는 김대중(金大中) 당시 대통령이 묵으면서 6.15 공동선언을 이끌어냈다.

이 때문에 북측이 5년 전 6.15의 현장이나 다름 없는 백화원초대소에 남측 대표단을 머물게 하면서 6.15 공동선언의 의미를 상징적으로 재확인하고 이행 의지를 과시하려는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아울러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국빈을 만날 때 백화원을 자주 이용한다는 점을 들어 김 위원장이 남측 대표단 면담을 염두에 두고 취한 조치일 수도 있다는 해석도 고개를 들고 있다.

이번에 고문 자격으로 함께 방북한 임동원(林東源) 전 통일부 장관은 2002년 4월과 북핵 위기 직후인 2003년 1월 대통령 특사로 각각 방북했을 당시 백화원에 머물렀으며 2002년에는 김 위원장을 면담했지만 2003년에는 면담이 이뤄지지 않았다.

한 북한 전문가는 “백화원초대소 숙박은 특별한 관계에 있는 사람을 위한 최고예우”라고 설명한 뒤 “북측이 남북 정상회담 5주년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김 위원장이 찾아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조심스럽게 내다봤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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