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 아동절, 없는 살림에도 내 아이를 위해 北 엄마들은……

6월1일은 북한의 아동절이다. 북한 달력에도 ‘국제아동절’이라고 기록돼있다. 한국 달력에는 기념일이 써있지 않고 이를 기념하는 행사도 없지만 탈북자들은 오늘만큼은 북한의 어린 아이들을 생각하기 마련이다.

1942년 제2차 세계 대전시기 독일의 나치 군대가 체코의 리디체 마을에서 16세 이상 남자와 영아를 모두 살해하고 부녀자, 아동 90명을 수용소로 보냈으며 마을의 집과 건축물을 모두 불태워 마을을 잿더미로 만들어버린 사건이 있었다.

공산권 여성단체인 국제민주부녀연합회는 전쟁으로 인해 죽어간 리디체 촌과 전 세계 어린이들을 추모하고 아동들을 보호하기 위해 1949년 11월 모스크바에서 회의를 열고 6월 1일을 국제 아동절로 선포했다.

북한도 다음해인 1950년 6월 1일 아동절을 선포하고 해마다 이 날을 위한 여러 가지 모임들과 행사들을 진행하고 있다.

북한에서 국제 아동절은 김부자 탄생일이나 설날처럼 큰 명절은 아니다. 그래도 기념일로 정하고 당국에서 기념행사를 진행하고 각 탁아 시설에서도 이 날을 기념해 여러 행사들을 조직한다.

평양에서는 국가 행사로 국제 아동친선연환모임이 진행되는데 여기에는 평양에 거주하는 각 나라 대사관 자녀들을 비롯한 외국인 자녀들과 평양시 창광유치원이나 김정숙유치원 어린이들이 함께 참가한다. 이들은 만경대유희장에서 체육경기, 예술공연 등 다양한 놀이와 모임들을 진행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전국의 탁아소, 유치원들에서도 자체로 운동회나 예술경연 등을 조직하는데 이날을 위해 부모들이 일부러 조퇴나 휴가를 받고 아이들과 함께 이 모임에 참가하기도 한다. 각 탁아소, 유치원들은 국가적 행사와는 별도로 자체로 행사들을 조직하는데 속해있는 어린이들의 경제 수준에 맞게 조직한다.

먼저 어느 정도 여유가 있는 지역의 탁아소, 유치원생 부모들은 야외에서 먹을 음식을 스스로 준비하고 버스 한 대를 세내여 선생님과 아이들을 모두 태우고 강변이나 경치 좋은 산기슭 같은 곳으로 소풍을 간다. 1990년대 중반 이전에는 탁아소와 유치원에서 음식을 준비했지만 지금은 그런 여력이 없다.

도착해서 아이들이 준비한 예술 소품을 개인별, 또는 반별로 발표한 다음 함께 앉아 준비해 온 음식들을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식사가 끝난 후 사람찾기나 보물찾기 경기를 진행하고 경기가 끝나면 예술 공연과 시상식을 진행한다. 그리고 수상한 어린이에게 장난감이나 그림책 같은 선물을 주고 행사를 마친다.

이런 방법은 돈이 많이 들고 학부모들의 부담이 크므로 어느 정도 힘있는 공장이나 기업소 탁아소, 유치원들이 아니면 생각하기가 힘들다.

때문에 대개 거의 모든 탁아, 유치원들에서는 자체 운동장이나 가까운 장소를 택해 체육경기를 진행하고 식사를 하는 것으로 아동절 행사를 진행한다.

경기에서는 달리기, 밧줄 당기기(줄다리기), 놀이감 따기, 기차놀이, 자전거 놀이, 글자 붙이기 등 다양한 종목의 경기들이 진행된다.

북한의 탁아소, 유치원들은 1990년대 중엽 ‘대아사’ 시기부터 아동절이 와도 어려운 식량사정 때문에 기념 행사를 진행하지 못했다.

이 행사가 부활한 것은 2000년대 초반 이후다. 일부 탁아소, 유치원들이 자체로 여러 가지 다양한 모임을 조직하기 시작하자 전국적으로 확산돼 식량난 속에서도 어린이들에게 작은 즐거움을 선사하고 있다.

2009년 3월에 입국한 탈북자 김 모씨(33세·여)는 “작년 6.1절 행사 때 아이가 집에와서 ‘다른 애들은 다들 어머니가 음식을 맛있게 준비해가지고 온다’며 하도 졸라대서 없는 살림이지만 음식을 준비해 딸애와 함께 운동회에 갔었다”며 “어린 딸애가 앞에 나서 노래 부르며 춤추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온갖 시름이 다 풀리는 것 같았다”고 북한에서의 아동절을 회고했다.

김 씨는 “북한에 사는 아이 부모들은 간부집 자식들처럼 먹는 거며 입는 거를 사람답게 해주지 못해 다들 마음이 아파한다” 면서 “아동절날 과자라도 마음껏 먹이고 싶지만 그러기가 쉽지 않은 것이 조선(북한)의 현실”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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