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0여년 만에 빛 본 ‘고려왕궁 만월대’

‘황성옛터’로 알려진 고려왕궁 만월대는 고려 공민왕 10년(1361년) 홍건적의 난 때 소실됐다. 정전인 회경전 등 주요 전각이 있던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폐허로 방치됐다.

역사 연구의 사각지대로 남아 있던 만월대가 지난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남측의 남북역사학자협의회와 북측의 민족화해협의회가 주축이 된 발굴단이 5월부터 11월까지 개성에서 공동 발굴작업을 벌였다.

어렵게 뭉친 남북 공동 발굴단이었지만 성공적 발굴을 기원하는 개토제부터 문화적 차이를 드러내기도 했다. 북한은 미신 행위는 따를 수 없다며 개토제에 참여하지 않았고, 남측은 결국 달력 뒷장에 그린 돼지 그림을 제사상에 올려야 했다.

MBC TV는 6월3일 밤 12시30분 남북 역사학자들이 분단 후 처음으로 공동 발굴한 만월대 현장과 발굴 과정의 에피소드를 담은 특집 다큐멘터리 ‘고려왕궁 만월대’를 내보낸다.

MBC 통일방송협력단과 남북역사학자협의회가 기획한 이 프로그램은 방송위원회로부터 제작비 1억2천만 원을 지원받았다. 발굴에는 국립문화재연구소의 이상준 학예연구관을 단장으로 한 남측발굴단 12명과 조선중앙역사박물관의 김은룡 단장을 포함한 북측 발굴단 27명이 참여했다.

유물에 대해 남북이 서로 다른 용어를 사용한데다 해석에도 차이를 보여 발굴 과정에 약간의 혼란이 빚어지기도 했다. 길이 65㎝의 원통형 대형 청자를 두고 남북 학자들은 왕실 전용 청자 죽부인 또는 청자 똥장군이라는 등 온갖 해석을 했다.

아울러 방송에서는 한반도에서 처음 발견된 고대 인도어 산스크리트어로 된 명문 기와, 5명의 선대왕을 섬기던 강령전의 실체, 구릉진 언덕을 활용한 건축술, 왕궁 전체에 거미줄처럼 이어진 배수로와 석축 등 장대한 고려 왕궁의 모습을 전한다.

발굴에 참여한 학자들에 따르면 고려왕궁은 경사진 언덕에 조성됐기 때문에 고려인들은 폭우로 인한 산사태를 고려해 건물 설계 당시부터 체계적인 배수로 건설을 염두에 뒀다.

김동욱 경기대 건축학과 교수는 발굴 건물터에 직사각형이 아닌 ‘亞’자형 건물이 많은 것 등에 대해 “고려왕궁은 조선시대 건물과 달리 실용적인 측면보다는 심미적인 면을 더 강조한 것으로 추측된다”고 말했다.

프로그램은 왕궁의 보도블록 역할을 한 ‘전돌’ 위에 새겨진 ‘고누놀이판’, 용머리 형태를 한 잡상 파편 등도 소개한다.

이상준 단장은 “조선이 수도를 옮긴데다 한국전쟁으로 분단이 된 바람에 만월대에 대한 학술적인 연구가 거의 이뤄지지 못했다”면서 “이제 비로소 고려의 본 모습을 파악하게 됐지만 전체적인 발굴을 진행하려면 40~50년 이상이 걸릴 것”이라고 밝혔다.

전영배 MBC 통일방송협력단 팀장은 “프로그램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심사위원회에 영상기록물로 제출될 것이며 이는 개성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한 작업의 하나”라며 “앞으로도 개성 만월대의 남북 공동발굴 현장을 지속적으로 취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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