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대 탈북여성이 6촌오빠 만나기까지

지난해 말 한국에 들어온 60대 탈북여성이 경찰의 도움으로 국내 유일의 `피붙이’와 생전 첫 만남을 갖게 됐다.

새터민 양모(60.여)씨는 아픔과 고난으로 점철된 한국 현대사와 고스란히 궤를 같이하는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일본강점기 일본으로 강제징용된 아버지와 일본인 여성 밑에서 해방 직후인 1949년 태어난 양씨는 11살 되던 해인 1960년 1월 아버지와 함께 북송선을 타게 된다.

북한에 가면 잘 먹고 잘 살 수 있다는 조총련의 선전에 현혹된 아버지의 뜻에 따른 것이었다.

아버지는 그러나 고향에 두고 온 피붙이를 한순간도 잊을 수 없어 양씨를 앞에두고 독백하듯 고향에서의 삶과 풍경을 설명하곤 했다.

특히 어릴적 함께 생활했던 5촌 조카(74)씨에 대한 그리움을 털어놓으며 “죽기 전에 꼭 한번 보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고 한다.

얼마나 그리움에 사무쳤으면 “한국에 6촌 오빠가 사는데 혹시라도 가게 되면 꼭 찾아뵙고 인사를 드려라”라는 말을 유언으로 남겼을 정도였다.

2000년대 들어 경제적인 어려움을 피할 수 없었던 양씨는 비참한 북한의 현실에 눈을 뜨면서 탈북을 고민하게 됐고, 결국 2006년 남편과 딸 등 전 가족을 데리고 남한행을 택한다.

중국과 제3국 등에서 2년간의 떠돌이 생활 끝에 지난해 12월 입국한 양씨가 제일 먼저 한 것은 아버지의 유언대로 한국의 유일한 피붙이인 6촌 오빠를 찾는 것이었다.

새터민의 신변 안전과 정착 지원을 돕는 양천경찰서 최순자 경위는 양씨의 사정을 전해듣고 전산조회를 거쳐 수소문 끝에 4개월 만에 충남 공주에 거주하는 오빠를 찾아냈다.

아버지가 60년의 세월을 그리움으로 보내다 결국 얼굴 한번 못보고 세상을 떠난 것과 비교해 양씨가 의외로 쉽게 오빠를 찾게된 것은 분단된 현실의 아이러니였다.

양씨는 28일 “생전 한 번도 뵌 적이 없지만, 아버지가 그토록 그리워하던 오빠를 만나게 돼 너무 기쁘다”며 “이산의 한을 풀지 못하고 먼저 가신 아버지를 생각하면 못내 아쉬울 뿐”이라고 말했다.

최 경위도 “이산의 아픔을 달래는데 조금이라도 힘이 됐다는 생각에 큰 보람을 느낀다”고 소감을 전했다.

양천서는 오는 29일 경찰서 내에서 양씨와 6촌 오빠의 상봉식을 열 예정이다./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