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간 뻣뻣한 北 이번엔 사과할까?

북한의 댐 무단방류로 국민 6명이 실종·사망한 ‘임진강 사태’에 대한 북측의 ‘사과’ 여부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이미 북측이 ‘댐 수위 상승에 따른 방류’라고 해명했지만 여론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이번 사태에 따른 국민의 대북여론 악화로 이산가족상봉 합의 등으로 진전 조짐을 보이던 남북관계도 기로에 섰다는 평이다. ‘사과’ 여부가 향후 북측의 남북관계 개선의지를 엿볼 수 있는 ‘바로미터’가 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일각에선 최근 잇따른 유화책을 내밀며 전향적인 대남정책을 취했던 만큼 북한이 과거 전례와 비슷한 수준의 ‘유감’ 표시를 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하고 있다. 그러나 전례에 비춰볼 때도 우리 측이 요구하는 수준의 ‘사과’는 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중론이다.

실제 통일부에 따르면 지난 60년 동안 북측은 단 한 번도 자신들의 잘못된 행동에 대해 ‘사과’하지 않았다. 북한이 그동안 남측 인명 피해 사건 등에서 직·간접적으로 우리 측에 ‘유감’ 의사를 밝힌 것도 모두 7번에 지나지 않는다.

가깝게는 지난해 금강산 관광객 피살사건에 대해서도 북측은 아직까지 사과하지 않고 있다. 단지 ‘유감’ 의사를 밝혔을 뿐이다. 이로 인한 국민적 여론 악화로 중단된 금강산 관광 역시 재개가 불투명하다.

북한은 또 1968년 1월 21일에 발생한 ‘청와대 무장공비 침투사건’에 대해 사건 발생 4년4개월만이자 ‘7·4 공동성명’ 발표를 2개월 앞둔 1972년 5월 4일,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의 평양 방문을 계기로 김일성 이 직접 ‘대단히 미안’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1976년 8월18일 발생한 ‘판문점 도끼 만행사건’에 대해 사흘 뒤 군사정전위 북측 수석대표가 김일성의 ‘유감’의 뜻을 유엔군 사령관에게 전달했다.

김일성은 1994년 특사교환을 위한 판문점 실무접촉에서 박영수 북측 대표가 “전쟁이 일어나면 서울은 불바다가 되고 말 것”이라고 발언한 데 대해서도 외신 인터뷰에서 “적절치 못한 것”이라고 했다.

이밖에 1995년 6월 북송쌀 2만t을 싣고 방북길에 오른 시아펙스호의 인공기 게양사건에 대해서 약 한 달 만에 ‘유감’의 뜻을 밝혔고, 1996년 9월에 ‘북한잠수함 동해 침투사건’에 대해서는 약 3개월 만에 중앙통신 등 통해 ‘유감’을 표시했다.

북한은 또 4강신화를 창출했던 ‘2002 한·일 월드컵’ 기간인 6월 29일에 있었던 서해교전 사태에 대해서는 그해 7월25일 남북장관급회담에서 우리 측 수석대표에게 전화통지문을 통해 ‘유감’의 뜻을 전달했다.

이들 사건을 포함, 북한이 유엔군사령부와 정전협정을 맺은 1953년 7월 27일 이후 관련 자료 제출을 거부한 1994년 4월 말까지 정전협정을 위반한 건수는 42만5천271건에 달하지만 위의 7건의 ‘유감’ 표시 외엔 사과 한마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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