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자, 북핵신고 앞두고 `멈칫’…회담일정 안개속

순항하던 6자회담 트랙이 북한 ‘핵 신고’라는 중대 고비를 앞두고 일촉즉발의 ‘숨고르기’에 들어선 양상이다.

6자회담 의장국인 중국은 12월6~8일 비공식 수석대표 회의를 개최하는 방안을 각국에 회람한 것으로 지난 달 23일 알려졌지만 여태 회담 날짜는 발표되지 않고 있다.

북핵 외교가는 12월15일 이전에는 회담이 열릴 것으로 내다보고 있지만 속을 들여다 보면 그 또한 장담할 수만은 없어 보인다.

회담 날짜가 잡히지 않는 것은 표면적으로는 북한이 ‘OK’사인을 주지 않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일각에서는 북한이 신고.불능화의 상응조치 일환으로 한.중에게서 받기로 한 발전소 설비 지원이 신속하게 이뤄지지 않고 있는 점, 미국 행정부의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 결정이 늦춰지고 있는 점 등에 대해 몽니를 부리고 있는 것이라는 해석을 내 놓고 있다.

그러나 일부 외교 소식통들은 단순히 북한의 OK 여부가 변수라기 보다는 북핵 신고 문제를 어떻게 풀지에 대한 6자 차원의 공감대가 형성돼 있지 않은 점 때문에 일정이 잡히지 않고 있는 것으로 봐야 한다는 해석도 내 놓고 있다.

우선 6자는 북의 신고서를 접수한 뒤 6자 수석대표 회의에서 평가를 하자는데 공감대를 형성했고 북한은 나름대로 신고서 제출 준비를 마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 만큼 곧바로 신고서를 받은 뒤 6자 수석대표 회의를 개최하면 될 듯 하지만 신고의 핵심인 농축우라늄(UEP) 관련 해명이 이뤄지지 않은 ‘부실 신고서’가 제출될 경우 6자회담을 열지 않은 것만 못한 상황이 연출될 수 있다는 점을 한.미 등 일부 참가국들은 우려하고 있다.

이와 관련, 천영우 우리 측 6자회담 수석대표도 지난 달 29일 “신고서를 언제 내느냐 보다는 얼마나 성실하고 완전한 신고서를 내느냐가 중요하다”며 “미흡한 신고서를 냈을 경우 생각치 않은 어려움 야기할 수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때문에 신고 문제 협의를 주된 목표로 한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차관보의 3~5일 방북 결과에 따라 신고서 제출시기와 6자 수석대표 회의 일정이 윤곽을 드러낼 것으로 외교가는 보고 있다.

만약 힐의 방북을 계기로 UEP 의혹 규명방안에 대해 북.미가 만족할 만한 합의를 이룬다면 신고서에 당장 UEP 관련 사항이 들어가지 않더라도 일단 신고서 접수에 이은 6자 수석대표 회의 개최가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 경우 6일 또는 8일께 회담을 시작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UEP의 존재 여부를 두고 북.미가 계속 평행선을 그릴 경우 6자 수석대표 회의를 아예 뒤로 늦추자는 의견이 참가국 사이에서 대두될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되면 연내에 6자 수석대표 회의 개최는 물건너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된다.

한편 힐 차관보의 방북을 앞두고 외신 보도 등을 통해 북한의 핵 프로그램 신고와 관련한 비관론이 확산되는 등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미국 워싱턴 타임스는 현지시간 11월30일 미국 관리들의 말을 인용, 파키스탄이 1990년대 북한에 판매한 원심 분리기들이 시리아 등 제3국에 이전됐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같은 날 일본 요미우리 신문은 북한이 농축우라늄(UEP) 관련 자재로 의심받고 있는 알루미늄관을 UEP와 무관한 로켓탄 제조에 사용했다는 설명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신문은 또 대북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의 전제조건으로 미국이 플루토늄 추출량, 시리아 등 외국으로의 핵 이전 상황, UEP 실태를 신고서에 명시할 것을 북에 요구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같은 보도들은 결국 플루토늄 추출량과 UEP, 그리고 시리아 등으로의 핵이전 의혹에 대한 해명이 신고서에 포함돼야 하며 그것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경우 북한을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삭제해선 안된다는 미국 조야의 대체적인 분위기를 반영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힐 차관보는 11월30일 서울에서 북한의 신고 대상으로 ‘핵 시설.프로그램.물질 등’을 지적했지만 미국 내 상당수 인사들은 핵이전과 핵 프로그램 관련 자재 수입 등 이른 바 ‘핵활동’까지 신고되어야 한다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런 만큼 3일 북한을 방문, 신고 문제에 대한 담판을 짓고 최종 핵폐기 단계 협상의 발판을 만들어야할 힐 차관보의 심경은 지난 6월 1차 방북때와 달리 편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힐은 일단 북측 인사들에게 테러지원국 명단 삭제 해제에 필요한 ‘커트라인’은 통과할 수 있는 수준으로 신고서를 내도록 설득한 뒤 미진한 부분은 연말까지 계속 보완하려는 복안인 것으로 관측된다.

군부 인사들까지 만나겠다며 의욕을 보이고 있는 힐 차관보가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 카드를 활용, 돌파구를 만들어 낼 것이라는 기대도 있지만 북한이 한번 부인했던 UEP를 자존심 손상을 감수해가며 시인하기란 쉽지 않으리라는 비관적인 전망도 만만치 않다./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