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자회담 재개 국면돌입…라이스 방북 가능성 주목

핵 신고 최종협의를 마치고 ‘방대한 핵 관련자료’까지 휴대한 성 김 미 국무부 한국과장이 10일 서울로 돌아옴으로써 북핵 협상이 급물살을 탈 전망이다.

성 김 과장의 이번 방북 협의를 끝으로 북한은 조만간 6자회담 의장국 중국에 공식 핵 신고서를 제출할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은 6자회담 참가국들의 의견수렴을 위해 북한이 제출한 신고서를 각국에 회람하고 곧이어 6자회담 재개 수순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현재 각국의 정상외교 등 일정을 감안하면 6자회담 재개시점은 6월초가 유력할 것이라고 외교소식통들은 전했다.

또 6자회담에서 핵 신고서 내용을 검증하는 방안을 마련하고 비핵화 3단계 논의가 진행되면 대략 8월께 6자 외교장관 회담도 열릴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은 북한이 핵 신고서를 중국에 제출하는 시점에 맞춰 북한을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삭제하는 절차(의회통보)에 착수할 것으로 알려졌다.

비핵화 2단계 시공도면에 해당하는 10.3합의 발표 이후 지난 7개월간 상당한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핵 신고의 고비는 이제 넘어가는데 성공한 것으로 북핵 외교가는 판단하고 있다.

미국내 일부 강경파들과 의회 일각의 견제에도 불구하고 북핵 협상이 진전 쪽으로 방향을 잡은 것은 역시 북한과 미국 수뇌부의 확고한 ‘협상의지’에서 비롯됐다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오랜 염원인 테러지원국 해제가 가시권에 들어오자 북한 측이 매우 적극적으로 움직였다는 후문이다.

지난 4월 싱가포르 협의 이후 미국보다 앞서 ‘전진이 있었다’는 발표를 할 정도로 발 빠르고 긍정적인 자세를 과시한 북한은 지난달 성 김 과장의 방북 당시 6자회담 북측 수석대표인 김계관 외무성 부상까지 나서 “테러지원국 해제를 위해서 우리가 뭘 더 해줘야 하겠느냐”는 말까지 해가며 적극성을 과시했다는 게 정부 소식통의 전언이다.

또 영변 원자로의 초기부터 현재까지의 가동일지 등 각종 기록을 제공하기로 약속한 것은 물론 미국의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북한이 삭제되면 24시간 안에 불능화 대상인 영변 원자로의 냉각탑을 폭파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냉각탑 폭파 장면을 전 세계에 공개할 수도 있다는 의사까지 피력한 것은 테러지원국 해제를 위해 북한 지도부가 얼마나 적극적인 지를 엿볼 수 있게 했다.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미국 수뇌부의 의지도 마찬가지로 적극적이었다.

북한-시리아 핵 협력 의혹이 미국 조야에 확산되고 있는 상황에서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과 크리스토퍼 힐 차관보 등 협상파가 계속 힘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은 부시 대통령의 지지가 없이는 불가능했다는 게 외교가의 시각이다.

예상한 대로 6자회담이 재개되고 북한이 신고한 핵 신고서의 내용을 검증하는 방안이 논의되면 본격적으로 비핵화 3단계인 핵폐기 문제가 현안으로 부각될 전망이다.

3단계를 본격적으로 논의하고 북한이 원하는 테러지원국 해제가 현실화될 시점은 대략 7월이 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을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삭제하려면 45일 전 의회에 통보해야 하고 6자회담에서 구체적인 신고서 검증과 핵 폐기 로드맵의 마련 등에 시간이 걸릴 것이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북.미 수뇌부의 협상의지를 상징하는 이벤트가 핵폐기 과정에 접어드는 시점을 전후해 가시화될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특히 미국의 테러지원국 해제 후 24시간 내에 영변 원자로 냉각탑을 폭파하고 이 장면을 언론을 통해 전 세계에 중계하는 순간을 외교가는 주목하고 있다.

만일 성사된다면 이런 중요한 순간에 미국의 주요인사, 구체적으로 북핵 협상을 총괄 지휘해온 라이스 국무장관의 방북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북핵 위기의 상징인 냉각탑 폭파 현장에 라이스 장관이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부시 행정부가 북핵 문제에서 ‘가시적인 성과’를 냈음을 증명하는 이벤트가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라이스 장관의 방북은 6자 외교장관회담이 8월중 열릴 경우 회담을 전후해 이뤄질 것이란 분석도 나오고 있다.

나아가 핵시설 불능화보다 훨씬 복잡하고 전문적인 작업이 될 핵폐기 작업을 진행하고 북.미 관계 정상화에 필요한 여러 조치를 이행하기 위해 평양에 미국의 외교사무소가 설치되고 상징적으로 워싱턴에도 북한의 외교거점이 등장하는 것도 생각해볼 수 있다.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은 지난 1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핵폐기 논의가 잘 진행될 경우 “비핵화 문제를 포함한 여러 현안을 논의하기 위해 6자회담 틀내에서 평양과 워싱턴에 양측의 상주사무소가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하지만 핵 신고서 검증과정 등에서 예기치 못한 장애가 돌출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북한이 신고한 플루토늄 총량이 추후 검증과정에서 확인된 양보다 훨씬 적을 경우 상황은 심각해질 수 있다. 지난해 11월 북한은 30kg 내외의 플루토늄 총량을 거론한 적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미국은 이보다 훨씬 많은 50kg 내외로 추정하고 있다.

물론 북한이 제출하는 핵 원자로 가동일지 등을 분석하면 북한이 신고한 내용의 신뢰성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게다가 새로운 쟁점이 나타나 시간을 다시 끌 경우 미국의 대선국면이 본격화되는 8월 이후에는 북.미 양측이 의지를 갖고 협상을 하려 해도 실질적인 진전을 기대하기 어렵게 된다.

결국 ‘정치적 타협’에 의해 어렵게 넘어간 ‘핵신고 고비’는 추후 검증 과정에서 다시 더 큰 고비를 만날 가능성이 상존하는 국면인 셈이다./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