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민주항쟁 20돌…이제 북한민주화가 역사의 正道

1.

오늘은 위대한 대한민국 국민이 좀 더 많은 자유와 좀 더 많은 참여와 좀 더 발전된 민주주의를 열고자 거대한 함성으로 일어섰던 1987년 6월 민주항쟁 20주년이 되는 날이다. 지금으로부터 꼭 20년 전 수천 수만의 청년학생들이 강의실을 박차고 거리로 달려 나왔다.

서울의 시청을 중심으로 광화문, 명동과 남대문 시장, 서울역으로 이어지는 거리거리 골목골목은 독재타도의 함성으로 가득 찼다. 서울만이 아니라 부산 대구 광주를 비롯한 한국의 주요 도시는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대의 우렁찬 함성으로 날이 새고 날이 저물었다.

뽀얀 최루가스의 매운 연기로 시위 군중의 얼굴은 눈물과 콧물로 뒤범벅이 되고 흘러 내리는 땀으로 피부가 화끈거려도 아무도 물러서지 않았다. 거리의 상인들과 건물 창가의 회사원들이 학생들을 격려하고 때로는 같이 소리쳐 주었다. 좇기는 학생들을 숨겨주기 위해 상가 셔터를 내리고 물을 나누어 주고 두루마리 휴지를 던져주었다. 모두 하나가 되었다. 6월의 아스팔트에 작열하는 태양만큼이나 민주화를 향한 국민들의 요구는 뜨거웠다.

보름을 넘게 끌던 시위는 집권군부의 6.29 선언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리게 되었다. 그렇게 우리는 이루어냈다. 그러나 이러한 민주화로의 급진전은 비단 6월의 거리를 메웠던 학생이나 재야운동권 혹은 양 김 씨로 대표되던 야당만의 성취는 분명 아니었다. 이 모두와 집권세력을 포함한 대한민국 국민 전체의 승리였다.

2.

1948년 건국 이후 한국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두 개의 기본 정체성을 갖고 출발했다. 그러나 국민소득 100불이 채 안 되는 신생국가에서 처음부터 선진민주주의를 그대로 따라가는 것은 불가능했다. 따라서 이런저런 곡절이 있었고 이런저런 가슴 아픈 희생이 있었다. 그러나 우여곡절과 간난신고를 넘어 우리는 전진해 왔다.

6, 70년대를 거쳐 이뤄낸 기적 같은 경제성장도 민주주의 실현의 기본적인 바탕이 되었다. 따라서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이러한 풍요와 민주주의는 단지 6월 민주항쟁으로부터만 비롯된 것이 아니고 건국과 경제발전, 6월의 민주항쟁을 모두 아우르는 지난 현대사 전체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일부 사람들은 역사를 전체적으로 계승과 발전 혹은 혁신의 과정으로 파악하기보다는 단절과 갈등 나아가서는 대립으로 보면서 우리 현대사의 지난 60년 중 ‘50년을 독재에 짓밟힌 비정상 상태로, 지난 10년 만을 민주정부가 집권한 정상 상태’로 표현하고 있다. 이는 역사에 대한 극단적 주관주의이자 이기적 표현의 발로에 다름 아니다.

우리의 민주주의는 성, 세대, 종교, 지역을 모두 넘어선 것이다. 1960년 4월의 김주열이 꼭 영남만의 자식인가? 1980년 광주의 민주화 운동이 꼭 호남만의 것인가? 만일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계급, 계층, 특정 지역, 특정 세대만의 것이라면 그런 민주주의는 필요가 없다. 오늘날 보여지는 국정의 난맥상이 바로 이러한 인식에 기초한 것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이러한 인식의 극단적 본류라 할 수 있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현실은 이를 가장 잘 입증해주는 산 표본이 아니던가?

3.

6월 민주항쟁을 자신의 가슴에 단 훈장처럼 여기는 사람일수록 이상스러울만치 북한의 극단적 전체주의 독재에는 눈감고 귀 막고 있는 현실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우리와 그들이 6월의 경험을 공유한 동시대인인가를 고민하게 만드는 이러한 답답한 상황에 어떤 말을 해야 할까?

북한은 우리와 한날 한시에 일본으로부터 해방되었건만 왜 60여 년 가까이 흐른 오늘날 빌어먹는 처지로 변한 것일까? 한 쪽에서는 자유와 풍요, 민주주의를 구가하고 있건만, 다른 한 쪽에서는 핵무기를 개발하고 강성대국을 소리 높이 외치며 수백만이 굶어 죽고 수십만이 정든 고향을 떠나 이국 땅을 떠돌며 또 어린이와 여성과 노인을 포함한 수십만의 사람들이 세상과 완전 고립된 채 극단적 공포의 수용소 군도에서 동물 같은 삶을 영위하고 있는 이 현실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오늘 날 한국 사회가 누리는 민주주의가 과거와는 아무 인연도 없이 마치 자신들만의 노력으로 이루어졌다고 여기는 사람들은 이런 명백한 진실 앞에서는 왜 아무런 말이 없는 것인가? 북한 사람들은 우리와 같은 민족이 아니었던가?

이들은 한 걸음 더 나아가 북한 인민들의 기아와 빈궁의 극단적 삶과 동전의 양면이랄 수 밖에 없는 김정일 정권의 핵실험에 무감각한 남쪽의 현실을 평화로 착각하도록 사람들을 호도하고 있다. 또한 이들에 의해 독재자 김정일과의 화해와 협력이 ‘민족공조’의 미명아래 소리 높여 외쳐지고 있다. 기만도 이런 기만이 있을 수 없다. 백이면 백, 천이면 천 수많은 북한 사람들이 증언하는 6.15 이후의 남북관계가 결국은 북한 김정일 정권의 생존을 보장하고 북한 인민의 고통을 키웠다는 명백한 현실을 외면하는 이들의 위선의 끝은 어디인가.

4.

6월 민주항쟁 20돌을 맞는 우리의 목표는 뚜렷하다. 그 하나는 지금까지의 발전의 역사를 잘 계승하여 선진 대한민국으로 가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치 경제 사회 교육 등 모든 방면에서의 자유주의 개혁을 철저히 수행해야만 한다. 외교와 안보에도 일신이 있어야 한다. ‘자주’의 미명 아래 잘못 이뤄지고 있는 ‘고립으로의 퇴보’를 멈추고 민주주의 동맹을 강화하며 세계로 더욱 나아가야 한다.

또 다른 하나는 한국에서도 그랬던 것처럼 북한에서도 민주주의를 이루는 것이다. 오늘날 민주주의는 세계사의 대세다. 그 어떤 나라도 그 어떤 지역도 이런 거대한 흐름으로부터 자유스러울 수 없다. 비록 순간의 반동과 퇴보가 있을 수는 있으나 대세는 거스를 수 없다. 북한 역시 지금은 반동이 기승을 부리고 있으나 이는 여명 직전의 암흑일 뿐이다.

북한은 역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극단적이고 악랄한 전체주의 체제다. 따라서 한국의 과거 권위주의 정권 시절처럼 일정한 자유의 제한은 있었으나 근본적으로 세계로 열려 있던 체제의 민주화로의 진전과는 그 양상을 비교하기가 매우 어렵다. 한국은 그래도 비교적 정보의 유통이 자유로웠고 경제 발전에 따른 중산층의 두터운 성장이 이러한 민주화의 흐름을 뒷받침했다.

그러나 오늘날 북한은 외부의 라디오나 영상물 조차 자유롭게 접할 수 없음은 물론 만일 이를 접한 사실이 발각될 경우 가혹한 처벌을 면치 못하는 사회이다. 자유로운 공기를 늘 호흡하는 사람은 공기의 중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자유 사회의 사람들은 오늘의 북한을 이해하기가 매우 어렵다.

이러한 조건에서 북한에 민주역량이 잘 성장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다양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무엇보다 김정일의 강화와 유지로 귀결되는 지원을 끊고 북한인민에게 절실한 방면으로의 지원이 확대되어야 한다. 이는 비단 먹는 식량과 의약품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다. 김정일의 악행과 공포정치의 기만성, 외부 세계의 풍요와 자유로움을 북한인민이 널리 알 수 있도록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는 일은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이다.

이를 통해 멀지 않은 장래에 북한인민이 북한 사회의 진정한 주인으로 떨쳐 일어나, 한국이 그러했던 것처럼 마침내 민주주의를 쟁취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민주화된 남부 조국이 고난에 빠진 북부 조국의 형제들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최고최선의 역할이자, 20년 전 6월 민주항쟁의 정신을 오늘날 진정으로 계승하는 일이다.

2007년 6월 1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