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전7기, 나는 죽기 싫어 여기 왔다”

▲ 지난해 1월 국내에 입국한 탈북 청소년 변종혁군. 그는 이제 꿈을 향해 도전하고 있다.

탈북소년 ‘솔’의 가슴 뭉클한 탈북 이야기가 인터넷에서 큰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솔’의 본명은 변종혁. 나이 18세. 12살에 첫 탈북한 그의 이야기는 읽는 사람의 마음을 감동으로 몰아넣었다.

6일 오전 DailyNK와 만난 변군은 첫 마디에 이렇게 말한다.

“죽기 싫어서 왔습니다”

삶과 죽음의 경계선을 넘나들지 못해본 사람은 이같은 쾌도난마의 설명방식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는 ‘꿈을 이루기 위해서가 아니라 죽기 싫어서 왔다’고 했다. 이 얼마나 검박한 ‘삶의 언어’인가?

그는 6번 탈북했고 또 체포됐다. 그리고 또 탈북했다. 6전 7기. 결국 그는 지난 1월 남한으로 입국하는 데 성공했다.

변군은 국내 입국 이후 청소년직업교육기관 ‘하자센터’의 퍼포먼스 연주단 ‘재활용 상상 놀이단’에서 활동했다. 놀이단 활동중 자신의 탈북과정을 해당 홈페이지에 올린 것이 뜻하지 않게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그는 탈북자들이 흔히 말하는 남한사회 적응의 어려움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는 자신이 원하는 모습을 스스로 만들어가고 있었다. 그는 어딜가도 적응은 100점이라고 했다. 아마도 그가 가진 ‘넉살의 힘’인듯 보였다.

‘재활용 상상 놀이단‘은 재활용품을 이용해 악기를 만들고, 자기 몸을 이용해서 소리를 내며 시민들을 위해 무료로 공연을 하는 곳이다. 이곳에서 활동한 박군은 “악기를 만들고 공연을 하면서 다시 태어난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변군이 태어나 성장기를 보낸 북한은 그에게 말 그대로 고통의 연속이었다. 부모님이 이혼하는 가슴 아픈 일도 겪고, 먹을 것이 없어서 일주일동안 굶어가며 물로 배를 채우는 일이 허다했다. 도둑질까지 해가면서 곡식을 훔쳐 먹었다. 그러다 걸리면 죽도록 맞기도 했다.

동생 데리러 다시 북한으로

변군은 열두 살때 처음으로 국경을 넘었다. 혼자 몸이었지만 두렵지 않았다고 한다. 중국으로 넘어 갔다가 동생을 데리러 북한에 들어가 동생을 데리고 다시 탈북했다.

중국에서 동생과 함께 고아원 생활을 하던 변군은 누나를 만나기 위해 다시 북한행을 시도했다. 하지만, 중국 공안에게 붙잡혔다. 고아원에서 혼자 생활하던 동생은 이후 고아원을 나가 연락이 끊겼다.

▲ 변종혁군의 공연모습

그는 체포와 송환의 두려움 속에서도 다시 북한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은 가족에 대한 절박한 그리움이었다고 했다.

동생이야기를 하면서 눈물을 글썽이던 변군은 “동생에 대한 이야기는 가슴이 너무 아파 이야기 하지 않으려고 했다”면서도 “가족이 함께 살 때 동생에게 잘 해주지 못했던 게 너무 후회된다”고 했다. “하지만 어딘가 꼭 살아 있을 것으로 믿는다. 꼭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애써 태연한 모습을 보였다.

내가 살아가는 ‘넉살의 힘’

동생을 가슴에 묻고 우여곡절 끝에 남한 땅을 밟는 순간 “그렇게 원하고 그립던 남한에 왔을 때는 인생 최고의 순간이었다”고 말했다.

남한에서의 생활에 대해 묻자 “어디에 가나 적응을 잘해서 큰 어려움 없이 지내고 있다. 무엇보다도 중국에 있을 때처럼 잡혀갈 것 같은 불안감은 없어서 좋다”고 했다.

요즘 주유소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생활하고 있다는 변군은. “같이 일하는 사람들은 내가 북한 사람이라는 걸 모른다. 일부러 숨기는 건 아니지만 굳이 말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면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지는 얼마 안 됐지만 좋은 경험이 될 것 같다”고 덧붙였다.

10월에 한 교회단체에서 운영하는 학교에 입학하기로 한 변군은 혼자지내야 하는데 외롭지 않겠느냐는 질문에 “그런 걱정은 없다. 일단은 가서 열심히 공부하고 싶다”고 말했다.

“검정고시를 통과한 후에 신학도 공부해보고 싶다“고 말한 변군은 이어 ”지금까지의 꿈은 가수가 되는 것이다. 내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겠지만 열심히 하고 싶다”라고 말하며 자신의 포부를 밝혔다.

많은 탈북 청소년들이 변군이 가진 ‘넉살과 적응의 힘’을 나눠가졌으면 하는 바램을 하며 발걸음을 돌렸다.

이현주 대학생 인턴기자 lhj@dailyn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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