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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비핵화를 목표로 최근 ‘타결’된 6자회담의 의미있는 점은 북한이 핵 프로그램을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재확인했다는 것이다.
북한이 자기 나라보다 엄청나게 잘 살고 강력한 힘을 가진 이웃 국가들에게 북한의 핵무기 시설을 하루 아침에 해체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내보이며 주목을 끌기만 한다면, 북한에게는 사례금이 보장되어 있다는 사실을 재확인한 것이 바로 2월 13일의 베이징 합의다. 북한의 핵무기 보유라는 안보 위협은 북한의 정권 유지를 위한, 의문의 여지없는 충분조건이라는 사실을 이번 6자회담의 합의서가 명백하게 일깨워준 것이다.
에너지, 식량, 경제지원, 또 (국가로서의)’적법성’은 북한정권의 장기생존을 위한 필수조건이다. 김정일 범죄정권은 (모든 것을 자주적으로 해결한다는)주체사상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외부의 지원 없이는 장기적으로 기능할 수 없기 때문이다. 동시에 핵 공갈은 지원에 의존하는 경제적 빈사상태의 북한정권을 보장하고 있다.
북한정권은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는 한 전 한반도의 적법성을 가진 정권이라고 사칭할 것이며, 계속해서 한국의 지원을 받을 것이다. 김정일 정권에게 핵시설의 해체는 다른 것과는 바꿀 수 없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죽이는 것이며, 이웃들의 끊임없는 의지 앞에 굴복하는 것-이는 지극히 불리한 국가 정책이다-이나 다름 없는 것이다.
미국이나 다른 관련 국가들은 역사의 교훈은 고려하지 않고 유화정책이 언젠가는 먹힐 것이라고 진심으로 믿으면서 아직도 환상을 쫓고 있다.
낭만주의 시인 사무엘 테일러 콜러리지는 “사람이 역사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다면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 것을 가르쳐 주고 있는가! 하지만 열성과 당파 (passion and party)에 눈이 멀어 경험이 비추는 빛은 배 뒷머리에 있는 등불로 우리 뒤의 물결만을 비춘다”고 했다.
사실 90년대 초반의 1차 북핵위기 후 미국은 회전목마에 올라타고 떠들썩한 잔치를 벌였다. 그러나 그 잔치는 한반도의 특수성을 고려했다기보다 자국의 정치적 이익을 고려해, 북한의 세습독재와 빨치산식 정치활동을 변화시키려는 생색만 낸 것으로, 북한정권이 제작 감독한 ‘비핵화 드라마’나 다름없었다. 이 슬픈 이야기는 ‘열성과 당파’는 끈질기게 현실을 꺾어왔다는 것이다.
지난 15년 간 북핵문제를 둘러싼 피상적인 정세는, 또 최근 유화정책의 정세에서는 북한이 더더욱 국제적인 의무에 순종할 그 어떤 강압적인 국면에도 직면하지 않았다. 북한은 여러 차례 국제협상을 위반했고 국제범죄를 저질렀지만 현실적인 벌칙을 받지 않았다. 도리어 이러한 위반과 범죄는 어김없이 ‘관용적인 보상’을 신속하게 유도해냈다. 특히 북한이 뻔뻔스럽게 불응해도 국제사회는 언제나 새롭고 더 강력한 유화정책을 반복해서 북한에게 보여주었다.
북한 핵 프로그램의 완전하고 되돌릴 수 없는 해체를 유도하기 위한 베이징 협상의 가능성에 대해 말한다면, 이론적으로는 거의 모든 것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 마치 김정일이 아침에 골프를 칠 때 모두 홀인원 할 수도 있고, 오후에 근처 편의점에서 복권을 구입하면서 사실상 당첨된 번호를 고를 수도 있는 것처럼 말이다. 이처럼 이론적으로는 김정일이 하루 아침에 평화와 민주주의, 비핵화의 사도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과거의 행동을 미래 행동의 징표로 본다면, 핵 위협을 통해 살아남으려는 북한의 전략으로 볼 때 국제사회가 김정일 정권을 포용하는 유화정책을 통해서는 핵 프로그램 해체를 달성할 수가 없다.
북한의 국가 생존전략은 핵 원료를 늘이겠다고 협박하는 등 ‘추가 곡예’를 정기적으로 하면서 안보위협을 계속하는 것이다. 그런 다음 잠시 휴식기를 거쳐 협상 테이블로 되돌아와 협상을 위한 참신한 행동을 하는 척한 다음, 그로 인해 마치 이웃 국가들이 주요한 양보를 얻어낼 수 있을 것이라는 환상을 조성해준다.
북한은 지금까지 이렇게 해오면서 이웃 나라의 온건파에서부터 강경파에까지 꾸준히 보상을 거둬들였다. 이같은 수법에 단기적으로 다른 대안이 없는 이웃나라는 유화정책이 강력한 ‘미끼’처럼 되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지켜보면 빨간 코의 광대가 진행하는 서커스가 떠오른다.
최근 6자회담의 결과는 북한이 또 한번 서커스의 유쾌한 광대와 같이 링 위의 진정한 승자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북한은 거리낌 없이 받아들이고 잘 속아 넘어가는 관객들에게 또 환상을 팔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잘 알다시피, 이 서커스에서 최후의 미소를 띠는 자는 항상 의기양양하게 날뛰는 그 ‘뚱뚱한 광대’다.
이성윤/ 美 하버드대 한국학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