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차 북핵 6자회담에 임하는 각국 대표단의 입장은 회담의 최종목표로 ‘한반도 비핵화’라는데는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하지만 한반도 비핵화의 내용을 놓고는 여전히 입장차를 드러내고 있다.
다만 주요 참가국들이 24일부터 잇따라 가진 연쇄 양자 협의를 통해 실질적 진전을 이루려는 강한 의지를 보이고, 이를 위해 회담기간을 비롯한 회담형식에 대해서도 실질과 실적을 중시하겠다는 입장이어서 전망이 어둡지만은 않은 분위기다.
특히 지난 해 제3차 회담에서 공감한 ‘말 대 말’-‘행동 대 행동’ 등 단계적 접근법의 바탕 위에 먼저 회담 목표에 ‘먼저’ 합의한 다음에 그 목표를 구체화하기 위한 세부 이행방법을 논의한다는 접근법에 중지를 모아가고 있는 모습이다.
◇ 주도적 역할 돋보이는 한국 = 우리 정부는 이번에 ‘행동 대 행동’ 보다는 ‘말 대 말’에 대한 합의에 최우선 목표를 두고 ‘말 대 말’의 내용을 가능하다면 공동합의문으로 문서화하겠다는 방침을 갖고 있다.
이런 입장은 북핵 문제의 해결과정을 ‘미로찾기’에 비유한다면 입구부터 시작하기보다는 먼저 출구를 확인한 뒤 그 출구에 이르는 길을 역으로 찾아 나간다면 훨씬 효과적이라는 이른바 ‘출구 접근론’에 바탕으로 두고 있다.
한반도 비핵화를 비롯한 성취할 수 있는 최종목표를 먼저 합의하게 되면 그 이행 절차를 위한 논의도 보다 효율적으로 이뤄질 것이라는 인식에 따른 것이다.
우리 대표단은 이를 위해 미국과 보조를 맞춰 회담의 방향타를 잡아나가면서 북미간에 간극을 줄이기 위한 ‘메신저’ 역할도 병행하겠다는 입장이다.
특히 이번 회담 성사과정에서 남북대화 채널의 유용성이 확인된 만큼 북한 대표단과의 잦은 접촉을 통해 실질적인 성과를 유도하는 한편, 200만kW 대북 송전계획을 적극 활용해 북핵 폐기를 이끌어 낸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 적극성으로 기대치 높인 미국 = 미국은 ‘한반도 비핵화’를 최종목표로 잡고 그 방법으로는 ‘동결 대 보상’ 원칙을 활용, 이번 회담을 본격적인 협상의 장으로 만들어 진전을 이루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가 이끄는 미 대표단은 24일 베이징(北京)에 도착한 뒤 중국측과 만찬을 함께 한 뒤 25일 오후 북한 대표단과 1시간 넘게 회담 전 협의를 가진 것은 이런 의지를 엿볼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특히 북한이 강하게 희망해 온 양자회담에 부응, 6자 회담장 안팎에서 북미 양자접촉을 자주 하겠다는 입장이어서 본격적인 협상 국면을 예고하고 있다.
북한과 평행선을 달리고 있는 농축 우라늄 프로그램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지적보다는 ‘모든 핵 프로그램’이라는 신축적인 표현을 활용하겠다는 유연성도 발휘할 방침인 것으로 전해졌다.
또 먼저 회담 목표의 합의를 통해 출구를 먼저 확인하겠다는 접근법에서도 우리 정부와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하지만 대북 에너지 보상 참여에 대해서는 미온적인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 한반도 비핵화 목표 재확인한 북한 = 북한 대표단은 22일 이번 회담 참가국 가운데 가장 빨리 베이징에 도착, 24일 한국, 25일 미국, 러시아 등 주요 참가국과 사전 접촉을 마쳤다. 중국과는 비공개로 양자협의를 가진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북한은 우리 대표단과 허심탄회하게 의견을 교환함으로써 선(先)핵포기에 대한 강한 거부감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이번에 실질적 진전을 이뤄야 하며 한반도 비핵화 실현을 위한 틀을 마련하자는 데 의견을 같이 한 점은 긍정적인 대목으로 평가된다.
또 성과를 이끌어 내기 위해 남북접촉을 자주 갖자는데 합의하고 미국과 양자협의에서도 자주 만나 간극을 줄여나가자는데 의견을 같이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측의 ‘중대 제안’에 대해서는 그 유용성에 대해서는 공감하고 있지만 핵폐기의 결정적인 동기가 될 수는 없을 것이라는 입장을 보였다는 후문이다.
체제안전보장 문제에 대해서는 비핵화 과정을 통해 한반도 평화체제를 이룩하겠다는 논리를 펴며 앞으로 핵군축 논의의 필요성을 제기할 가능성이 적지 않을 것이라는 게 회담장 안팎의 관측이다.
◇ 상황악화 방지 주력하는 중국 = 회담 의장국이라는 점에서 미국과 북한 등 주요 당사자 못지 않게 중요한 역할이 기대되는 나라이다.
이미 공동의 목표가 된 한반도 비핵화에 전폭적인 지지 입장을 보이며 북한과 ‘특수관계’는 물론 한국, 미국 등의 입장도 감안, ‘중간자’ 역할을 해 왔다.
중국의 기본 입장은 더이상 상황이 악화될 경우 동북아시아 평화에 악영향이 불가피하다는 인식 아래 우선 안정적인 상황 관리에 중점을 두고 있는 모습이다.
올 들어 북한의 2.10 핵무기 보유 선언으로 악화일로를 치달았던 북핵 문제가 파국을 맞을 경우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것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성과 없는 회담 폐막에 강한 부담을 갖고 이번에 참가국들과의 수시 접촉을 통해 형식보다는 실리를 중시한 회담 문화를 만들어나가는 데도 공을 들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 납치문제 부각하려는 일본 = 지난 14일 서울에서 열린 한.미.일 3자 고위급협의를 통해 호흡을 맞춰 왔지만, 자국내 정치와 여론을 내세워 북한의 일본인 납치 의혹을 회담 테이블에 올려놓으려고 끈질지게 시도하고 있다.
이는 1∼3차 회담 때도 기조연설에서 납치문제를 언급한 연장선에서 6자회담장을 북한과 현안을 푸는 무대로 활용하겠다는 계산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북한이 이에 대해 북일 정상회담 등을 통해 “이미 다 해결된 일”이라며 강한 거부감을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모처럼 열린 이번 회담의 분위기를 깨는 악재로 작용할 수 우려가 적지 않다.
이런 움직임은 북핵문제 해결에 집중해야 한다는 다른 참가국 입장과도 반한다.
다른 참가국의 경우 핵 문제를 먼저 해결하면, 자연스럽게 납치문제도 논의할 수 있는 북일 관계 정상화의 과정으로 넘어가는 환경이 조성되는 점을 지적하고 있지만 일본 대표단의 베이징에 와서도 고집을 꺾지 않고 있다.
◇ 평화적 해결 ‘보조역’ 러시아 = 북핵 문제 해결에서 러시아의 역할과 입지는 그다지 크지 않지만 북한과 ‘돈독한’ 관계를 이용, 회담 분위기 조성에 적극적으로 기여하겠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공식 입장도 북핵 해결을 위해서는 6자회담 외에 다른 대안은 없다는 것인 만큼실질적인 진전을 위한 자리가 될 이번 회담에 힘을 실어 줄 것은 분명해 보인다.
러시아는 특히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공동원칙과 메커니즘을 현실화하고 이를 이번 회담에서 공동문건이라는 형식의 틀에 담아낼 수 있기를 희망하고 있다.
러시아 정부는 역시 한국, 미국과 마찬가지로 일본의 납치자 문제 제기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이와 함께 우리의 중대제안에 앞서 3년간 이뤄질 대북 중유 제공 동참 문제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지는 않고 있는 상황이다. /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