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자회담 ‘짝퉁 제네바합의’는 안된다

중국 베이징에서 열릴 예정인 제5차 6자회담 3단계 회의가 하루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는 6일 “북한이 이번 6자회담에서 핵무기 프로그램 폐기에 합의한다면 향후 3개월 이내 실행에 옮겨야 한다”고 못박았다.

힐 차관보는 이날 일본에서 베이징으로 출발하기 앞서 기자들과 만나 “북한이 다음 회담에서 핵포기를 향한 어떤 조치에 합의한다면 그로부터 수주(single-digit weeks)내 실제 이행에 들어가야 한다”며 북핵문제 해결에 대한 강한 의욕을 내비쳤다.

이와 함께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 5일 ‘2008 회계연도 업무계획 보고서’에서 내년 초까지 북한 핵폐기 협상을 마무리 짓고, 핵무기 해체를 개시하겠다고 밝혔다. 북한인권 및 금융압박도 계속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미 행정부 내 북핵 관련 주요 담당자인 라이스 장관과 힐 차관보의 잇따른 타임 테이블(일정) 설정은 그동안 대북 ‘압박모드’를 설정해오다 지난해 북한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 등으로 국내외 여론이 악화되자 과감히 ‘협상모드’로 전환하면서 일정한 성과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라이스 장관이 북핵 문제와 관련해 밝힌 내용을 보면 일단 지난해 발표한 ‘2007년 업무계획 보고서’의 내용과는 상당히 다름을 알 수 있다. 지난 보고서에는 “북한이 핵을 ‘되돌릴 수 없고 검증가능하게(CVID)’ 폐기하는 협상을 계속하는 것이 목표라고만 밝혔었다.

그러나 이번 보고서에서는 북핵 협상을 오래 끌기 보다는 1년이라는 타임 테이블에 올려놓고, 남은 부시 행정부 임기 내에 해결을 보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라이스 장관은 지난 12월 AFP 통신과의 인터뷰에서도 “미국의 목표는 북한이 2년 내에 핵 프로그램을 완료하는 것”이라고 못박았다.

하지만 겉으로 드러난 의도와는 달리 이번 보고서에서 CVID 원칙을 삭제해 북한 핵의 완전하고 돌이킬 수 없는 폐기를 포기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해 11월 중간선거 패배 이후 북한과 직접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자 ‘임기 내 성과’에 집착하게 된 것 아니냐’는 지적이 일고 있다.

물론 보고서에는 북한과 1년 내에 협상을 마무리하고 북한 핵무기와 핵 프로그램 폐기에 들어가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여기에 북한의 모든 중∙장거리 미사일 해체를 목표로 하는 협상까지 내년 중에 별도로 개시한다는 청사진도 밝히고 있다.

부시 행정부가 남은 ‘임기 내 성과’에 집착할수록 김정일 정권은 속으로 쾌재를 부를 가능성이 높다. 미국이 성과에 연연해 할수록 미국이 카드는 줄어들고, 북한의 협상입지는 커진다.

미국은 북핵문제 해결을 위해 나름의 시한을 설정해 놓고 북한이 계획표대로 따라와 주길 바라고 있겠지만, 문제는 미국과 달리 북한이 세워놓은 계획표는 이와 다를 것이라는 점이다. 부시 행정부는 임기내 해결을 바라지만 김정일은 어차피 핵실험을 한 만큼 시간을 연장해갈 수 있다고 판단할 것이다. 또 협상 내용이 미흡하면 2차 핵실험 경고 등의 카드로 내밀 수 있다. 말하자면 핵폐기 시간표를 놓고 미국과 북한은 동상이몽인 것이다.

이번 6자회담에서 북핵 폐기 ‘초기 이행 조치’에 대한 ‘상응 조치’로 중유 제공과 금융제재 해제 등이 논의될 가능성이 크지만, 쉽게 풀리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영변 5MW 원자로를 비롯한 핵시설 동결 대가로 이러한 요구를 한다 하더라도 남은 6자회담 관련국들 사이의 이견 조율도 쉬운 문제는 아니다.

힐 차관보는 북한에 대한 중유 제공 문제는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밝혔고, 일본은 ‘납치자 문제’ 러시아는 대북 ‘차관 문제’ 등이 얽혀 있어 이러한 전망을 가능케 한다. 섣부른 낙관론을 경계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또한 중유 제공 문제나 금융제재 문제가 해결된다고 하더라도 최종 단계에서 북한은 핵폐기 시점을 경수로 운영키(key)를 넘겨 받는 시점으로 못박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하지만 2002년 중단된 경수로 건설 사업이 재개돼 북한에 운영권을 넘겨주는 시점은 부시 정권 이후에나 가능하다는 게 경수로 사업을 담당했던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북한 핵의 완전한 폐기를 위해서는 분명한 로드맵이 물론 필요하다. 그러나 부시정권 임기 내 해결이라는 성과주의에 빠져 ‘짝퉁 제네바합의’가 나온다면, 다음 정권에 더 많은 북한 핵무기를 넘겨주게 되는 일이 발생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