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자회담 제2의 9·19공동성명 도출될까

하루 앞으로 다가온 북핵 6자회담에서 9.19 공동성명에 이어 북핵폐기의 초기조치 이행 로드맵을 담은 제2의 공동 문서가 도출될 것인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번 회담의 목표는 북한이 이행할 9.19 공동성명 상의 핵폐기 초기단계 이행조치와 나머지 5개국이 역시 공동성명에 근거해 제공할 상응조치의 목록에 6개국이 합의한 뒤 합의된 내용을 공동 문서로 만드는 것으로 좁혀진 상태다.

앞서 지난 해 12월 회담이 별 성과없이 끝났지만 지난 달 북한과 미국 수석대표들의 베를린 회동에서 차기 6자회담에서 합의할 바에 대해 상당한 의견접근이 이뤄졌고 지난 달 30~31일 방코델타아시아(BDA) 실무회의가 좋은 분위기 속에 진행됨에 따라 회담 성과에 대한 기대치는 어느 때보다 높다.

따라서 북한이 취할 초기 조치와 나머지 5개국의 상응조치간 균형점 찾기가 원만히 진행됨으로써 북핵 폐기 ‘2막1장’의 대본이 될 공동문서가 도출될지가 초미의 관심사다.

◇초기단계 조치 합의여부 관심 = 북한이 취할 초기단계 조치와 관련, 플루토늄 추가생산을 막기 위한 영변 5MW 원자로 등 핵시설의 가동중단과 그에 대한 감시 인력 수용 등이 협상의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북한은 이미 지난 해 12월 회담 등을 계기로 BDA 계좌동결 문제가 해결될 경우 조건이 맞으면 5MW 원자로 가동중단과 가동중단 확인을 위한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단 입국을 수용할 수 있다는 입장을 누차 밝혀왔다.

때문에 외교가에서는 합의 내용에 대한 평가는 차치하고라도 어떤 형태로든 초기조치 합의문이 나올 가능성이 50%는 넘는 것으로 보고 세부 합의 내용이 어떻게 될지에 관심을 쏟고 있다.

우선 가동중단의 대상 시설과 관련, 한국과 미국 등 관련국들은 대체로 1994년 제네바 북.미 기본합의 상의 동결 대상 시설들이 그 기준이 되어야 한다는 데 뜻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동결 대상은 영변 5MW 원자로와 핵연료봉 공장, 방사화학실험실과 함께 현재 공사 중인 50MW 원자로 및 200MW 원자로 등 5개 시설이었다.

북한도 제네바 합의를 통해 동결을 약속했던 이들 시설을 가동중단하거나 공사를 중단하는데 대해 크게 반발하지는 않을 것이라는게 전문가들의 일반적인 예상이다.

그런 만큼 쟁점은 플루토늄 생산시설인 영변 5MW원자로 처리와 관련, 스위치를 뽑는 수준의 단순 가동중단에 그칠 지, 북한을 제외한 나머지 5개국이 희망하는 ‘폐쇄’ 수준까지 나아갈지로 모아지는 분위기다.

단순 가동중단은 제네바 합의에 명시된 동결조치의 재판(再版)으로 평가될 수 있다는 점에서 미국 등 일부 관련국들이 만족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핵폐기를 조기에 마무리한다는 구상 아래 5MW원자로를 재가동이 어려운 상태로 만들어야 한다는 차원에서 참가국들은 동결에서 좀 더 나아간 ‘폐쇄’ 수준까지 합의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당국자는 “초기 조치는 핵폐기로 이어질 수 있는 첫 단계로서의 조치가 될 것”이라고 전제한 뒤 “단순한 가동중단 보다는 더 나아가야 한다”며 “그것은 시설을 폐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북한의 동의 여부는 초기조치와 상응조치의 조합에 따라 갈릴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일치된 분석이다.

아울러 초기 조치의 이행기간이 얼마로 명시될 것인지, 합의사항 이행을 위한 이슈별 워킹그룹 구성안이 합의문에 담길지도 주요 관심사항으로 거론된다.

◇5개국, 상응조치에 합의할까 = 외교가에서는 협상이 순조롭게 진행돼 북한이 초기 조치를 수용할 경우 나머지 5개국은 상응조치 차원에서 대북 서면 안전보장을 비롯, 북.미 관계 정상화 초기 조치와 경제.에너지 지원 등에 나서는 선에서 타협이 이뤄질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이 중 미국이 북한에 제공할 아이템인 관계 정상화 관련 조치는 사실상 양자 이슈로서, 지난 달 베를린 북.미 수석대표 회동 등을 통해 충분한 조율을 거쳤을 것으로 보여 별 ‘탈’이 없을 전망이다.

그러나 ‘돈이 드는’ 경제 및 에너지 지원의 경우 5개국간 의견 일치를 보는 일이 쉽지 않을 수 있다고 당국자들은 보고 있다.

한 정부 당국자는 “5개국이 북한에 무엇을 줄 것인지를 합의하는 것이 북한과의 협상 못지 않게 어려울 수 있다”고 전망한 뒤 “현재까지 대북 에너지 지원 문제와 관련, 나머지 5개국이 실질적 협의를 진행하지 않았으며 북한도 구체적인 요구를 제시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대북 경제.에너지 지원을 두고 5개국의 협의가 잘 진행된다면 초기 조치 합의도출에 큰 문제가 없겠지만 각국의 이해관계 때문에 북한을 앞에 두고 5개국이 분열하는 양상을 빚을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는 얘기다.

협상과정에서 북한에 제공할 대체 에너지 문제가 화두로 떠 오를 경우 각국은 저마다 주판을 바삐 두드리게 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대체 에너지의 유력한 아이템으로 꼽히는 중유를 제공하는 문제를 두고 각국이 의견차를 노정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을 전망이다.

한.미 양국은 중유 제공 문제를 북한과 협의할 수 있다는 입장 속에 만약 중유를 제공하게 된다면 5개국이 분담하는 형태를 취해야 한다는데 의견을 같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북한을 제외한 5개국이 북한에 에너지 지원을 제공할 용의를 표명했다’는 9.19 공동성명 조문에 근거한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 일본, 러시아 등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는 미지수다. 일본 정부는 자국민 납치문제가 해결되기 전에는 북한에 물적 지원을 할 수 없다는 입장이라는 일부 일본 언론 보도는 ‘일본 변수’의 현실화 가능성을 예고한다.

또 러시아의 경우 채무 미상환국에 대한 지원을 제한하고 있는 국내 규정을 이유로 대북지원에 난색을 표할 가능성이 상존한다.
따라서 에너지 및 경제지원 문제와 관련, 차기 협상의 관건은 일본과 러시아 등의 ‘이탈’을 막는 일이 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예상하고 있다.

관련 5개국간 협의가 순조로울 경우 합의문에 대북 에너지 및 경제지원의 자세한 내역이 포함되겠지만 마지막까지 합의에 도달하지 못할 경우 시한을 정한 채 추후 구성될 워킹그룹에서 논의한다는 식으로 정리될 가능성도 있다.

한 외교 소식통은 “각국의 독자적인 입장이 있을 수 있지만 에너지.경제 지원은 9.19 공동성명에 나와있는 사항으로, 참가국들이 모두 이행키로 약속한 것”이라며 “비핵화보다 양자 이슈를 우선시하는 나라는 없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수로.대북 송전 문제 어떻게 정리될까 = 9.19 공동성명에 명시된 대북 경수로 제공 논의 건과 우리 정부가 약속한 200만㎾ 대북 송전 문제가 차기 회담에서 어떤 식으로 정리될지도 관심거리다.

경수로 및 대북 송전은 핵폐기 시점 이후에 제공될 수 있는 것으로, 초기 조치에 포함될 수 없다는 것이 북한을 제외한 관련국들의 확고한 입장.

하지만 9.19 공동성명에 경수로와 대북 송전이 명시된 이상 북한은 차기 회담에서 두 사안에 대한 모종의 ‘약속’을 받으려 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논의 자체는 불가피해 보인다.

두 사안에 대한 북한과 나머지 참가국간의 이견이 좁혀지지 않은 상태에서 초기단계 조치에 합의할 수도 있겠지만 그 경우 초기조치 이행 후 반드시 새로운 장벽을 만날 수 밖에 없는 만큼 어떤 식으로든 참가국들은 두 사안을 짚고 넘어갈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송민순 외교부 장관이 최근 “차기 회담에서 합의할 9.19 공동성명 이행의 초기 조치는 9.19 공동성명의 나머지 부분과 분리될 수 없는 부분”이라며 “초기 조치는 나머지 부분을 다 이행하는 것을 전제로 합의될 수 있다”고 언급한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 나온 것으로 풀이된다.

핵폐기의 대가 차원에서 공동성명에 포함된 경수로 제공 및 200만㎾ 대북 송전 등을 어떤 식으로 처리할 것인지에 대한 최소한의 공감대가 형성되어야만 차기회담의 목표인 초기 조치 이행이 실질적인 의미를 지니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특히 경수로를 둘러싼 북한과 나머지 5개국간의 입장차가 크기 때문에 이 문제가 초기 조치합의를 방해할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을 전망이다.

북한은 지난 번 회담에서 현존하는 핵무기는 그대로 둔 채 핵시설(핵 프로그램)을 폐기하는 대가로 경수로 제공을 요구했지만 나머지 5개국은 핵무기를 보유한 나라에 평화적 핵 이용에 해당하는 경수로를 지어주는 것은 국제법적으로도 원천 불가능하다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회담에서 경수로와 200만㎾ 대북 송전의 제공 조건과 시기를 둘러싸고 북.미가 개략적이나마 의견일치를 볼 수 있을지 여부가 6자회담의 장래에 중요한 변수가 될 가능성이 없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