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자회담, 제네바합의 넘어설 수 있을까

다음달 8일 재개되는 6자회담에서 1994년 북한과 미국이 체결한 제네바기본합의(Agreed Framework)를 넘어서는 결과물을 만들 수 있을지 관심이다.

1990년대 초반 1차 북핵위기 국면에서 북한과 미국간 타협의 산물로 만들어진 제네바 기본합의는 핵폐기를 목표로 하되 폐기 전까지 핵동결의 대가로 중유를 제공하고 폐기시점에 맞춰 경수로를 제공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2002년 북한의 고농축우라늄(HEU) 프로그램 시인 파문이 불거지면서 사문화된 제네바합의가 이 시점에서 주목받는 이유는 차기 회담의 목표인 핵폐기 초기단계 합의에 대한 기본 틀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통상의 핵폐기 과정이 동결-신고-검증-폐기의 4단계임을 감안할 때 1단계 조치인 핵동결의 대상시설설정과 동결 조치를 취하기까지의 시한, 핵동결에 대한 보상 등이 제네바합의에 담겨있는 만큼 이번 협상의 중요한 참고자료가 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그러나 한국과 미국의 당국자들은 2002년 2차 핵위기 이전 상태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하는 제네바 합의 수준의 결과물 보다는 한 단계 진전된 결과물을 만들어 내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미측 6자회담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는 29일 언론 인터뷰에서 “다음 6자회담이 1994년 제네바 북미기본합의와 유사한 합의를 만들 수 있을 것이나 그것은 예비적인 것일 뿐 마지막에는 더 멀리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또 송민순(宋旻淳) 외교통상부 장관은 31일 정례 브리핑에서 “우리의 목표는 2002년 (2차 북핵위기 이전의) 상태로 돌리는 것이 아니라 북한의 모든 핵프로그램을 폐기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제네바 합의 수준보다 더 나아가야 한다는 인식의 기저에는 북한 핵 폐기를 18개월 이나 2년 이내에 달성한다는 한미 등 관련국들의 목표 의식이 깔려 있다. 핵동결 시점에서 5~6년 후 폐기를 염두에 두고 만든 제네바합의 때 보다는 한결 진전된 초기조치를 이끌어 내야 한다는 것이 관련국들의 대체적인 구상인 것이다.

제네바합의를 넘어서야 한다는 목표는 최근 6자회담 참가국들 사이에서 집중 제기되고 있는 핵시설 `폐쇄’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영변 5MW원자로 등 핵무기 제조 관련 시설의 스위치를 뽑는 수준을 넘어 다시 재가동하기 힘든 상태로 만드는 것이 바로 최근 제기되고 있는 `폐쇄’의 개념.

1단계 핵폐기 조치로 핵물질의 추가 생산을 차단한다는 본질에 있어서는 동결이나 폐쇄에 큰 차이가 없지만 다시 가동시키기 어려운 상태로 만든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지난 해 핵실험 등으로 북한의 핵폐기 의지가 의심받고 있는 만큼 첫 단계에서 단순한 가동중단을 넘어서는 조치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 핵시설 폐쇄 조치를 추진하는 관련국들의 목표인 셈이다.

이와 함께 많은 전문가들이 차기 회담에서 합의될 초기단계 조치로 예상하고 있는 핵동결 및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핵동결 감시까지 소요될 시간을 명문화하겠다는 참가국들의 구상도 제네바합의에는 없는 새로운 목표로 볼 수 있다.

아울러 북한에 대한 상응조치도 차기 회담에서 북한의 초기 조치에 합의만 이뤄진다면 중유 제공 및 무역 및 투자제한 일부 해제, 연락사무소 상호 설치 등을 담고 있는 제네바합의를 넘어설 것으로 당국자들은 보고 있다.

미국 등 관련국들은 초기 단계 이행 조치를 북한이 수용할 경우 9.19 공동성명에 근거해 한반도 평화체제 및 북.미, 북.일 관계 정상화 관련 조치와 대북 경제 및 에너지 지원 등을 포괄적으로 제공하는 방안을 구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차기 회담에서 제네바합의의 초기조치 수준을 뛰어 넘는 합의를 이루는 것이 간단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송 장관도 “그간 초기조치에 대해 관련국간 많은 대화와 의견조율이 있었지만 실제 조율을 거쳐 공동문서로 채택하려면 갈 길이 멀다”며 “공동문서 채택을 기대하지만 그까지 합의할 수 있을지는 실제 회담을 해 봐야 알 것”이라고 말해 신중론에 무게를 실었다.

신중론의 배경에는 북한이 핵무기 1~2개를 만들 수준의 플루토늄만 보유하고 있던 1994년과 이미 핵실험을 마친 상태에서 핵무기 6~7개를 제조할 수 있는 플루토늄을 확보한 것으로 추정되는 2007년의 핵동결이 갖는 값어치가 다르다는 점이 자리한다.

5MW 원자로의 스위치를 뽑는 조치가 갖는 `가치’가 13년 전에 비해 현격히 떨어진 만큼 관련국들이 북한 핵동결에 대해 북.미 기본합의 수준의 보상을 제공할 수 있을지를 두고 회의적인 시각이 없지 않다는 얘기다.

만약 북한이 미국이 제공하려는 과감한 북미 관계 정상화 조치에 만족하며 핵동결에 대한 물질적인 보상을 적극적으로 요구하지 않을 경우 협상이 큰 어려움 없이 전개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북한이 핵실험까지 마친 핵보유국임을 내세워 최소한 제네바 합의에 명시된 연간 50만t의 중유공급 수준의 물질적 보상이 담보되어야 핵동결에 나설 수 있다는 논리를 펼 가능성이 더 높다고 보는 시각이 만만치 않다.

또 가동중단 또는 폐쇄의 대상을 어디까지로 설정하느냐와 IAEA의 감시활동 범위를 어디까지로 잡느냐는 부분도 쟁점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보상 조치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회담의 발목을 잡을 수 있는 요인들도 없지 않다. 북한으로부터 상환받지 못한 채권 때문에 대북 지원에 제도적 제한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러시아와 납치문제 해결 전에 대북 지원에 나서기를 꺼리고 있는 일본 등의 입장이 변수가 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 정부가 취할 보상성 조치가 가시화했을 때 국내에서 제기될 다양한 여론의 스펙트럼도 변수중 하나다. 여론 수렴작업을 거쳐야할 부분이 있을 수 있으며 이 과정에서 반대 여론이 강할 경우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도 적지않은 노력을 기울여야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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