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자회담 재개 합의..한반도 정세 중대 국면

꺼져가는 듯 했던 북핵 6자회담이 다시 살아나려 하고 있다.

북한과 미국이 중국의 중재하에 베이징(北京)에서 전격 회동, 6자회담 재개에 원칙적으로 합의했다.

‘편리한 시기에 조속히 개최한다’는 합의 내용이 현실화될 지, 된다면 언제가 될 지 현재로서는 불투명하지만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 강행으로 벼랑 끝으로 내닫던 한반도 정세가 협상을 통한 외교적 해결 가능성을 되살렸다는 데 이번 베이징 회동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북미 6자회담 재개 합의 배경 = 무엇보다도 북한이 6자회담에 돌아오겠다고 밝힌 대목이 주목된다.

북한은 지난 19일 평양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까지 직접 나서 중국의 후진타오(胡錦濤) 주석의 특사인 탕자쉬안(唐家璇) 국무위원에게 다소 변화된 모습을 보여줬다.

그 내용은 ’미국이 우리를 괴롭히지 않으면 핵실험을 추가로 하지 않겠다’는 것과 ’먼저 6자회담에 들어가겠다. 대신 우리가 들어가면 가까운 시일내에 금융제재를 풀어라’는 것으로 요약됐다.

특히 북한의 대미협상을 실무적으로 지휘하는 강석주 외무성 제1부상이 별도로 나서 브리핑까지 하면서 북한의 의지를 과시했다.

하지만 북한은 무시당했다. ’금융제재의 고깔을 쓰고는 6자회담 복귀는 없다’는 기존의 입장과 비교할 때 당시 발언이 선후가 달라진 면에서 상당히 진전된 내용이긴 했으나 여전히 전제조건이 붙어있다는 점에서 미국은 그 의미를 평가절하했다.

오히려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은 ’새로운 게 없다’며 북한을 압박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은 과감한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인다. 6자 무대에 복귀하기로 한 이상 보다 적극적으로 협상장에 나와 자신들의 주장을 펼치는 것이 유리하다는 판단을 한 듯하다. 특히 핵실험을 한 상황이고 자신들이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하고 있는 만큼 어떤 형태로든 ’핵보유’를 전제로 협상에서 우위에 서겠다는 속셈도 엿보인다.

물론 북한은 과감한 결단을 과시하기 위해 조건을 제시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차관보는 중국 외교부의 발표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북한이 ’전제조건을 제시하지 않았고 회담에서 양보가 이뤄질 경우 핵 포기 용의를 재차 밝혔다’고 전했다.

또 ‘회담이 재개되면 미국의 대북 금융제재에 대한 북한의 우려를 다루게 될 것’이라고 했다.

미국으로서도 11월7일 중간선거를 앞두고 핵실험까지 한 북한을 그냥 놔둘 수 없는 상황이다. 특히 이라크 전쟁에 대한 비난여론이 비등한데다 이란 핵문제와 함께 미국 외교의 부정적 현안으로 꼽히는 북한 문제에 보다 적극적으로 개입할 필요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조건을 내걸지 않았듯 미국도 이른바 금융제재와 관련된 ‘상당히 진전된 안’을 제시했을 것으로 보인다. 방코델타아시아(BDA) 조사를 조기에 종결하고 그 결과에 따라 이른바 ’합법적인 거래’에 해당하는 금액은 동결을 해제하는 등 모종의 조치가 포함돼 있을 것으로 보인다.

물론 회동에서 이런 내용이 자세히 북측에 전달됐는지는 알 수 없다. 정부 당국자는 “금융제재와 관련해 뭔가 있을 텐데, 그것이 외교적 수사로 전달됐는 지 여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북미 양국이 이번 회동에서 무슨 얘기를 했는 지와 상관없이 6자회담이 열리면 그 테두리내에서 북미 양자회동이 별도로 열려 BDA 문제를 집중 협의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합의의 배경에는 물론 6자회담 의장국인 중국의 중재 노력도 주효했던 것으로 보인다. 국가 주석의 특사까지 평양에 파견한 마당에 아무런 성과물도 내지 못할 경우 중국의 체면이 말이 아니게 되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외교소식통들은 지난 19일 평양회동의 성과를 중국측이 ’헛되지 않았다’고 평가했지만 미국이 이를 외면하자 매우 당혹해 했다고 전했다. 그만큼 중국의 발걸음이 더욱 빨라진 것으로 보인다.

당시 평양에 갔던 우다웨이(武大偉) 외교부 부부장이 김계관을 베이징으로 불러들이고 힐이 이에 응하게 한 것은 중국이 얼마나 적극적으로 양측을 중재했는지를 말해준다.

결국 6자회담 재개 합의를 이끌어 낸 것은 3자의 의기가 투합한 결과로 볼 수 있다. 터널이 어두워질수록 터널 끝에 다가서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 북핵 외교방정식의 독특한 성격임이 다시 한번 확인된 대목이라 할 수 있다.

◇ 북, 핵포기할까 = 6자회담 재개에 합의했지만 향후 사태의 향방을 좌우하는 것은 역시 북한이 과연 핵포기를 할 수 있느냐다.

탕자쉬안 특사와의 19일 평양회동에서 김정일 위원장은 ’한반도 비핵화는 김일성 주석의 유훈’임을 재강조하면서 북한의 의지를 과시한 것으로 알려진다. 만일 북한이 핵포기 결단을 내릴 경우 지난해 9.19 공동성명 채택 당시 기대됐던 ‘한반도 평화시대’의 도래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북한이 미국과의 관계정상화는 물론 정상적인 국가로서 거듭 태어나 국제사회의 질서에 편입되는 상황도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북한의 핵개발이 체제의 생명을 위한 절체절명의 과제라는 점에서 과연 북한이 핵포기를 할 수 있을 지에 대해 전문가들은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지난해 합의한 9.19 공동성명 뿐 아니라 1994년 제네바 합의도 북한의 핵포기를 대가로 그에 상응하는 혜택을 주는 구조로 돼있다”면서 “지난 10여년간 경험을 토대로 볼때 북한은 웬만큼 확실한 대가가 아니고서는 핵폐기에 흔쾌히 나서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말하자면 북한 입장에서 핵은 마지막 남은 자산에 해당되는데 이를 포기하는 대가도 최소한 체제보장과 함께 북한의 살길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고서는 안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특히 이미 핵실험까지 한마당에 북한은 ‘핵보유국’으로서 더 큰 혜택을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핵보유 문제와 관련, 정부 당국자들은 매우 신중하다. 정부 당국자는 이번 베이징 합의와 관련, “지난해 11월 상황(6자회담 5단계 1차회의)으로 복귀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 말은 곧 북한의 핵보유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은 이미 북한이 핵을 폐기할 때까지 제재는 계속될 것이라고 공언하기도 했다.

따라서 핵보유를 전제로 하는 북한과 이를 인정하지 않는 미국 등 관련국간의 입장충돌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한마디로 핵폐기와 관련된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경우 이번 합의도 일시적인 휴전에 불과할 수 있다는 얘기다.

결국 베이징 회동의 성과로 6자회담이 조만간 재개되더라도 갈 길은 여전히 멀고도 험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북한의 운명과도 같은 핵을 폐기하도록 하는 외교적 노력은 앞으로도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북한이 유엔 중심으로 대북 제재가 본격화하는 국면을 전환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6자회담을 활용하려 할 경우 사태는 더욱 어려운 상황으로 전개되고 한반도 정세가 다시 일촉즉발의 위기로 빠질 가능성도 있다.

따라서 베이징 회동의 성과에 너무 매몰되지 말고 북한을 진정 ’새로운 세상’으로 이끌기 위한 포괄적인 전략이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다.

정부 관계자는 “상황에 따라 일희일비할 필요가 없다”며 “이럴 때일수록 냉정한 판단과 현명한 대처가 요구된다”고 말했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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