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자회담 앞둔 北 대미 외교라인

베이징에서 26일부터 제4차 6자회담이 개최됨에 따라 북한의 대미 외교라인은 그 어느 때보다 뜨거운 여름을 보내게 됐다.

베이징의 회담장에서는 김계관 외무성 부상이 북측 단장으로 나서 미국에 대해 대북 적대정책 전환을 요구하면서 지루한 줄다리기를 벌여야 한다.

김 부상은 1994년 제네바 핵협상 등 미국과의 협상을 담당해온 외무성 내 대표적인 미국통.

1991년 강석주 외무성 제1부상의 유엔총회 참석에 동행한 뒤 1992년 김용순 전 당중앙위 비서를 수행해 북.미 고위급회담에 참석하면서 대미협상 이력을 쌓기 시작했고 이후 북한과 미국의 각종 협상에서 단장을 맡았다.

6자회담 북측 대표단장으로 최근 방북, 미국의 정계.학계 인사들을 만나 북한의 입장을 설명했고 미국의 방송과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베이징에서 김 부상이 협상의 전면에 나선다면 평양에서는 강석주 제1부상이 총괄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절대적인 신임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강 제1부상은 국제관계대학을 나와 1993년 북.미 고위급회담 대표를 맡아 제네바 합의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강 제1부상은 회담 기간 평양을 지키며 회담 내용을 김정일 위원장에게 보고하고 행동지침을 받아 베이징에 나가 있는 대표단에게 훈령을 보내게 된다.

이와 함께 평양에서는 국방위원회 김양건 참사도 회담 기간 내내 잠 못 이루는 밤을 보내게 될 것으로 보인다.

노동당 국제부장을 지낸 김 참사는 북한의 핵문제가 주된 대화소재였던 정동영 통일부 장관과 탕자쉬안(唐家璇) 중국 국무위원의 김정일 국방위원장 면담 자리에 각각 배석해 국방위원회에서 외교정책 결정과정에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그동안 6자회담 대표단원으로 활동했던 리 근 미국국장은 부국장에서 국장으로 승진하고도 김 부상을 지근 거리에서 보좌하는 역할을 맡을지 주목된다.

유엔대표부 차석대사를 역임하고 본부로 돌아가 국장에 오른 리 국장은 군출신 외교관으로 김일성종합대학 독일어과 재학시절 군에 입대한 뒤 인민무력부 정찰국 소속 외국어강습소에서 영어를 전공했으며 인민무력부 기술총국과 대외사업총국에서 활동한 것으로 알려졌다.

1980년대 중반부터 중좌 계급장을 달고 짐바브웨 주재 부무관으로 일했으며 귀국 후 군복을 벗고 외무성 미국국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대미전문가로 고속 승진, 올해 6월에는 뉴욕에서 열린 비공개 토론회에 참석해 죠셉 디트러니 미 대북협상대사와 만나 4차 6자회담의 물꼬를 열기도 했다.

그동안 6자회담에 참가해온 한성렬 유엔주재 차석 대사도 이번 회담에 참가해 뉴욕채널로 의견교환을 해온 미 국무부와 의사소통로의 역할을 맡게될 것으로 예상된다.

김일성종합대학을 졸업한 한 차석대사는 1994년부터 유엔주재 북한대표부 공사로 일하며 토머스 허바드 당시 미 국무부 차관보와 북미협상 일정을 조정하는 등 창구역할을 하기도 했다.

리 근 국장의 후임으로는 김명길 외무성 산하 군축평화연구소 연구위원이 부국장 자리를 맡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어 리 국장 대타로 이번 회담에 모습을 드러낼지 관심이 모아진다.

김명길 부국장은 혁명유자녀로 만포혁명학원을 나와 김일성종합대학 영어과 재학 중 가이아나에 유학한 뒤 1985년 자메이카 주재 서기관을 거쳐 1997년 유엔대표부에서 일했다.

특히 그는 앞으로 한성렬 유엔대표부 차석대사가 본부로 귀임할 경우, 차기 차석대사로 유력하다.

박명국 미국 과장은 평안북도 신의주외국어학원을 졸업한 뒤 군에 입대, 인민무력부 대외사업국에서 근무했고 리을설 군 원수의 딸과 결혼해 외무성으로 자리를 옮겨 미국국 지도원, 유엔대표부 서기관 등을 거쳐 과장에 올랐다.

북한 최고의 수재와 엘리트로만 골라 뽑았다는 대미 외교라인이 이번 회담에서 어떤 성과물을 만들어낼지 주목된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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