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자회담, 속도보다 상호신뢰 구축이 중요”

[문화일보] 버트란드 드 크롬브뤼게(51) 유럽안보협력기구(OSCE) 주재 벨기에 대사는 공산권 변화의 촉매제 역할을 한 헬싱키프로세스 전문가다. 2006년 OSCE 의장을 지내며 유럽의 안보협력 틀을 확장하는데 주력해왔고, 요즘엔 북핵6자회담이 헬싱키프로세스의 동북아판이 될 것으로 판단, 6자회담 진전에도 깊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지난달 말 제주평화포럼 참석차 방한했을 때 크롬브뤼게 대사를 1차 인터뷰한 데 이어 지난주 네차례에 걸친 e메일 대화를 갖고 6자수석 대표회담 합의에 따라 8월부터 본격화할 것으로 예상되는 6자회담 워킹그룹회의 및 헬싱키프로세스의 동북아 적용문제 등에 대한 견해를 들었다.

#1. 6자회담에 대한 유럽적 시각

―6자회담이 지난 20일 끝나고 이제 8월부터는 2·13합의 이행을 위한 분야별 분과회의가 시작되는데 6자회담에 대해 어떻게 보십니까.

“구체적 합의 도출이 이뤄졌느냐를 따지기보다 북핵문제 해결을 위해 다자대화 채널이 가동되고 있다는 점을 일단 높이 평가해야 합니다. 대화가 지속되면 신뢰가 생기고, 그 과정에서 해법이 나오게 됩니다. 6자회담의 성과를 세세하게 따지기 전에 이번 회의를 통해 상호 신뢰가 어느 수준으로 높아졌는지를 먼저 점검해봐야 합니다.”

―다자외교 전문가로서 6자회담에 대해 조언을 한다면.

“만약 내가 회담참여자라면 내 모든 외교적 상상력과 경험, 에너지를 6자회담의 비전을 만들고, 모든 참여자들이 이런 목표를 각 단계에 맞게 구현하는 일에 집중할 것입니다. 이런 다자회담을 진전시키기 위해선 누군가 영감을 갖고 상대를 격려하며 우정어린 조언을 해야합니다. 또한 상호간에 적대감이 생겨나지 않도록 인내심을 갖고 노력해야죠. 현재 한국과 미국은 이런 역할을 아주 잘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참가국들이 상호간의 불신과 공포를 극복하려면 시간이 필요합니다. 지금 중요한 것은 현상황을 데당트(긴장완화) 국면으로까지 발전시키는 겁니다. 그런 방향을 모두가 지향하고 있다면 속도는 크게 문제될 게 없습니다.”

―제주평화포럼에서는 6자회담이 장기적으로 동북아판 헬싱키프로세스로 나갈 수 있다고 전망했는데.

“동북아의 요즘상황을 보면 각국간 정치적 이견이 많고, 남북한은 분단된 상태로 평화협정조차 맺어져 있지 않아 동서진영 대립이 심했던 유럽의 1975년 상황과 유사합니다. 그런점에서 6자회담 모델은 헬싱키프로세스 동북아시아판으로 키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6자회담은 동북아 안보대화로 발전할 만한 아주 좋은 모델입니다. 남·북·미·일·중·러 등 참여국들도 회담 프로세스에 대해 점점 신뢰감을 갖기 시작하고 있어 이 모델을 전략적인 동북아 안보대화체로 발전시켜 나가는데 아주 유리한 상황이 조성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 2. 헬싱키프로세스와 북한

―헬싱키프로세스를 얘기하면서 한국의 진보파들은 교류협력, 보수파들은 인권을 중시하는데 어느쪽이 진실에 가깝습니까.

“헬싱키프로세스를 이해하는데 2개의 견고한 평행선이 있습니다. 동북아에서 안보협력을 해나가는 과정에서 북한이 붕괴할 수 있다는 것을 상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헬싱키프로세스를 낳은 유럽안보협력회의(CSCE) 발족당시 당시 우리의 핵심은 안보불안 해소였습니다. 이때문에 동서진영의 현실을 인정한 상태에서 상호교류를 하자는 게 핵심입니다. 한국사람들이 이것을 받아들이려면 북한을 공식국가로 인정해야 하는 딜레마가 있을 것입니다.”

―샘 브라운벡 미상원의원은 북한인권향상을 위해 헬싱키 프로세스를 북한에 접목시키자고 주창하는데 그런 접근법은 헬싱키프로세스의 의도적 왜곡이라 볼수 있습니까.

“ 당시 유럽각국은 소련의핵무기 위협에 많은 불안을 느끼고있었습니다. 이런 위기적 상황에서 벗어나 동유럽소련 진영과 협력하며 동유럽과 소련의 위협을 완화시키려 시작한 게 바로 헬싱키협약입니다. 처음부터 동유럽소련의 인권을 향상시키기 위해 헬싱키 프로세스 시작한 게 아닙니다. 인권문제는 헬싱키협약이후 협상이 본궤도에 오르면서 거론되기 시작했습니다. 1978년 지미 카터 대통령이 집권하면서부터 포커스가 군사에서 인권으로 이동했는데 1978 베오그라드 리뷰회의 때 인권문제가 최고로 부각됐습니다.미국대표단이 다른나라 대표단보다 많이 참석해 정치범 이름을 거론하며 인권문제를 꺼냈는데 소련은 미국이 CSCE회의를 망치고있다고 비난하고나서 회의가 엉망이 됐죠. 이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미국은 헬싱키협약을 존중하지않았고,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한이후 미소갈등이 심해졌다. 1980년대는 시련기였지만 우리는 대화를 지속했습니다.”

―헬싱키프로세스가 한반도에 주는 교훈은 무엇으로 정리할 수 있을까요.

“우선 한국은 북핵문제를 북한자체의 문제로 보지 말고 지역문제로 봐야 합니다. 북한문제로만 고립시키면 북핵문제를 풀 수 없습니다. 한국은 동북아 주변국들과 함께 앉아서 아주 솔직하게 해결책을 논의해야 합니다. 한국과 일본, 중국, 러시아가 북핵문제를 비롯해 일본의 납북자문제, 군사적 신뢰구축 등 각국이 갖고 있는 안보관심사를 한자리에서 논의해야 합니다. 처음에 어렵더라도 일단해야 합니다. 헬싱키협약은 1967년 처음 논의되기 시작해 1972년에야 CSCE가 창설됐고 75년 협약으로 완성됐습니다. 아이디어를 제시하고 상호관심을 확인하는 일이 어렵고, 합의는 더더욱 더디고 힘들지만 일단 시작해야 합니다.”

#3. 벨기에외교관이 보는 한국, 한국의 외교력.

―어떤 나라가 동북아판 헬싱키프로세스를 주도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헬싱키프로세스에서는 독일과 벨기에 스웨덴, 오스트리아, 유고슬라비아 등이 적극적이었습니다. 미·소 양국은 이 과정에 회의적이었죠. 특히 미국은 ‘우리가 안보우산 제공을 하는데 왜 그런 기구가 필요한가’라고 반문하곤 했습니다. 동북아에서는 한국이 중심이 돼서 추진해야 합니다.”

―한국이 동북아판 헬싱키프로세스의 주도적 역할을 맡아야하는 이유는.

“동북아 안보위협에 가장 취약한 나라, 가장 위기감을 느끼는 나라가 한국아닙니까. 헬싱키협약도 미·소경쟁속에서 안보위협을 가장 많이 느끼는 나라들이 적극적이었습니다. 물론 미국이 한국에 안보우산을 제공해주지만 미국은 멀리 있기 때문에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지역밖의 슈퍼파워에 의해 제공되는 안보우산은 충분치 않습니다. 따라서 한국이 전략적 구상을 갖고 추진해야합니다.”

―그런 역할을 하려면 한국의 외교적 역량이 커져야 하는데, 외교력 신장을 위한 비결은 무엇이라고 보시는지.

“국제적 관점에서 볼 때 한국 외교관들은 충분한 능력이 있습니다. 강국에 둘러쌓인 작은 나라들은 어떻게하면 고립되지 않고 생존할 수 있는가를 고민하게 되면서 협상과 대화와 협력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는데 이런 노력을 많이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벨기에는 유럽의 외교 강국으로 유명한데 벨기에 외교력의 비밀은 무엇이라고 보시는지요.

“벨기에는 1830년에 독립된 나라로 역사가 비교적 짧은데 늘 강국의 압박속에 시달렸습니다. 그 강국의 희생자가 되지 않기 위해선 늘 협상하고 대화를 해야 했습니다. 그게 우리의 생존법이죠. 벨기에 사람들에게는 민족적, 국가적 관점이란 게 없습니다. 역사가 짧고 나라도 작기 아서 벨기에적 관점이라는 게 없습니다때문이죠. 언어도 프랑스, 독일어, 네덜란드어 등이 공용되어 ‘우리 언어’라고 할 때 ‘우리’라는 뜻이 무엇을 말하는지 이해하지 못합니다. 영국이나 프랑스는 자국의 이해관계가 있겠지만 벨기에의 국가적 이해관계는 유럽연합 속에 있습니다.”

―벨기에 국민들과 한국민의 역사적 체험이 아주 유사한 듯한데….

“그렇죠. 그래서 우리가 보다 똑똑하고 지혜롭게 창의력을 발휘하고 역사를 헤쳐나가야 합니다. 벨기에 사람들은 그렇게 단련됐습니다. 한국친구들도 잘 해나갈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미숙 기자/문화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