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자회담 북미 경수로 입장차이와 전망

2단계 제4차 6자회담 사흘째인 15일 경수로를 놓고 북미 간 입장 차이가 더욱 선명해지면서 협상 전망에 먹구름이 짙어지고 있다.

첫날인 13일 이뤄진 참가국 간 양자협의에서 북한이 제기한 것으로 전해진 경수로 제공 요구가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사실로 확인됐기 때문이다.

14일까지만 해도 경수로를 달라는 요구가 북한의 진의라기 보다는 또다른 상응조치를 획득하기 위한 최대치의 카드로 보는 시각이 많았지만 그런 시각은 다른 참가국의 기대에 불과했음이 드러난 셈이다.

이날 북한 대표단 현학봉 대변인 발표의 골자는 북한에 현존하는 흑연감속로를 포기하는 대신 경수로를 제공해 달라는 것.

현 대변인은 “비핵화 실현에 나서는 우리의 의무사항과 관련해 정치적 결단을 내렸으며 이와 관련한 구체적 문제에 대해 신축성을 보일 수 있다”며 핵포기 결단을 시사한 뒤 비핵화에 필수적인 신뢰조성의 기본이 경수로 제공이라고 역설한 것이다.

또 경수로를 미국의 대북 적대시정책 해소 의지를 가늠하는 잣대로 연결시켰다.

이 때문에 개막 전까지 북한이 말하는 경수로가 평화적 핵 이용권의 하위 개념으로, 미래에 경수로를 지을 수 있는 권리로 보던 관측은 완전히 빗나갔다.

나아가 1994년 제네바 합의의 산물로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가 짓다 중단한 함남 신포 경수로를 완공해 달라는 것으로 풀이하던 시각도 무참히 깨졌다.

북한의 이런 논리는 경수로가 갖는 양면성을 모두 활용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하나는 북한이 주권국가의 권리로 보는 평화적 핵 이용권이라는 명분을 ‘실물’로 충족시킬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다른 한편으로는 협상 과실을 추가해 실리를 극대화하려한다는 것이다.

물론 북한이 말한 흑연감속로는 영변에 가동 중인 5MW(5천kW) 짜리를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짓다가 중단한 영변의 50MW(5만kW) 원자로(85년 착공, 94년 중단), 태천 200MW(20만kW) 원자로(89년 착공, 94년 중단)까지 포함했을 수도 있다.

북한은 희망한 경수로의 시설용량을 공표하지는 않았지만 국내에 가동중인 한국 표준형 원전은 1기에 보통 100만kW이고 신형 경수로는 140만kW나 된다.

더욱이 북한은 우리측이 제시한 200만kW 대북 송전계획인 ‘중대제안’을 공개적으로 거부하지 않은 점에 비춰 경수로는 물론 중대제안까지 받겠다는 계산을 깔고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런 이유로 요구가 지나치다는 반응도 나오고 있다.

미국의 거부감은 전날보다 더 강하고 냉담해졌다.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는 이날 북한측 발표 이후 “경수로 문제는 논의조차 돼선 안된다”고 못박았다.

미국은 신포 경수로를 대신해 북한의 심각한 에너지난을 가장 신속하게 해결할 수 있는 대안으로 우리측 중대제안의 유용성을 강조해왔고 합의문에 평화적인 핵 이용권에 대해서도 명시적이고 구체적으로 담는 것에 거부감을 보여왔기 때문이다.

이런 미국이 경수로 권리가 아니라 실물을 달라는 요구를 받아들이기는 힘들어 보인다. 핵무기 전용 우려를 들어 신포 경수로 폐지를 주장해 온 미국 내 보수파를 설득하는 일도 불가능하다는 설명이다.

이처럼 양측의 간극은 오히려 더 벌어지고 있는 양상이지만 양측은 여전히 협상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고 중재자와 촉진자에 해당하는 중국와 한국도 타결 의지를 강조하고 있는 만큼 100% 비관만은 할 수 없는 상황이다.

힐 차관보가 이날 밤 “아직 비행기표를 예약하지 않았다”고 말했고 우리측 송민순 외교통상부 차관보도 “오늘 전체회의에서 이번에 원칙 선언을 합의하는 데 최선을 다하자고 의견을 같이 했다”며 회담이 계속될 것임을 강조했기 때문이다.

회담 관계자는 이와 관련, “북한은 오른쪽 주머니에 있는 카드(경수로 제공 요구)는 꺼냈지만 아직 왼쪽 주머니에 있는 것은 보여주지 않은 것 같다”며 절충점을 찾을 수 있을 다른 카드에 주목했다.

이는 1단계 회담에서 제시된 4차 초안에 경수로라는 문구를 집어넣어 미래의 권리로 분명히 못박으려는 타협안이 나올 가능성을 아직 배제할 수 없다는 시각이다.

북한도 핵문제 해결을 통해 경제도약을 위한 에너지 문제와 체제안보를 다져야 할 절실한 필요가 있는데다 경수로 제공요구 자체가 미국이 받기 힘든 카드라는 점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북미 양측이 유연성을 발휘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최악의 결렬을 피한 채 추석 전 조기 휴회를 통해 후일을 기약할 가능성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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