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자회담 물밑작업 꾸준히 이어져

북미간 달러 위조 공방에도 불구하고 차기 6자회담 개최를 위한 관련국간 물밑작업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공방 당사국인 북미 양국간 직접 접촉 및 대화는 끊긴 상태이나 의장국인 중국을 매개로 회담 재개를 위한 논의가 심도있게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6자회담 미국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는 20일 워싱턴 주재 한국특파원들과 가진 간담회에서 제5차 2단계 6자회담 개최시기와 관련, “북한이 중국측과 의견을 교환 중인 것으로 알고 있고, 따라서 중국이 개최 시기를 결정해 알려주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해 그런 물밑 움직임을 전했다.

우리 정부도 수석대표들 간의 ‘제주도 회동’을 비공식 제안한 데 이어, 제주도가 회동장소로 마땅하지 않다면 어느 곳에서든 모임을 갖자는 뜻을 나머지 6자회담 참가국들에게 전하는 등 회담 개최를 위한 분위기 조성에 주력하고 있다.

제주도 이외 장소로는 중국의 단둥(丹東) 등이 거론되고 있다.
일단 비공식 회동 제안에 대해 북한을 뺀 한국,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6자회담 참가 5개국은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5개국은 최근의 경색 국면이 장기간 지속될 경우 ‘9.19 공동성명’을 계기로 모처럼 조성된 진전의 모멘텀이 상실될 수도 있다는 데 인식을 같이하고 있다.

이 때문에 정부는 13∼16일 제주도에서의 제17차 장관급회담에서도 마약 밀매와 달러 위조 혐의를 바탕으로 한 대북 금융제재 공방이 북핵 문제의 해법을 찾는 논의에 부정적인 영향을 줘서는 안된다는 입장을 전하고 북측에게 예정된 6자회담 프로세스에 성실하게 임해줄 것을 강하게 촉구했다.

그러나 상황은 여의치 않아 보인다.

북한이 사전협의 차원의 회동 제의에 무대응으로 일관하면서 마약 밀매와 달러 위조 주장은 ‘날조’라며 ‘강 대 강’으로 맞서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20일 관영매체인 조선중앙통신의 상보를 통해 “미국이 신뢰의 기본척도인 경수로 건설을 완전히 포기한 만큼 흑연감속로에 기초한 평화적 핵활동을 강화하는 사업을 순간도 멈출 수 없게 됐다”고 강조한 게 단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이 인권, 마약밀매, 달러위조 등으로 압박의 강도를 높인다면 핵억제력 강화로 맞서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보인다.

북한은 이미 2003년 2월 영변 5㎿ 원자로를 재가동해 2년 후인 지난 4월 폐연료봉을 빼낸 데 이어 6월부터 연료를 재장전해 가동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따라서 ‘평화적 핵활동’의 강화는 5㎿ 원자로의 폐연료봉 인출과 이를 통한 플루토늄 추출 가속화 등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이며, 여기에는 짓다가 만 영변의 50㎿와 태천의 200㎿ 원자로의 건설 재개 의지도 포함된 듯 하다.

심상치 않은 점은 북한이 상보에서 “합법적으로 핵무기를 보유한데 대해 자부심을 느낀다”면서 핵무기 보유국임을 부쩍 강조한 대목이다.

이는 지난 2월10일 북한 외무성의 핵무기 보유 선언을 떠올리게 하는 것으로서, 북한이 한반도 비핵화의 원칙을 정한 ‘9.19 공동성명’에 역행하려는 것 아니냐는 우려마저 낳게 한다.

북한이 달러 위조와 마약 밀매 혐의 등에 대해 정치적인 해결을 주장하고 있는데 대해 조지 W. 부시 미 행정부가 이는 명백히 6자회담과 별개사안이라고 선을 긋고 전혀 융통성을 보이지 않는 것은 현 경색국면의 장기화를 예고하고 있다.

미국은 달라 위조나 마약 밀매와 같은 불법행위는 북한이든 누구든 간에 사법적인 판단을 해야하는 사안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북한은 자국을 겨냥한 금융제재의 원인이 되는 일련의 행위가 대북 적대시 정책의 산물이라고 단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정치적인 협상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없지 않다.

그러나 미측의 대북 압박 공세는 이미 시작된 듯 하다.

미 국무부는 16일 우리나라를 포함해 중국, 일본, 러시아 등의 6자회담 참가국과 싱가포르, 베트남 등에게 마약 밀매와 달러 위조에 북한이 관여한 정황증거 등을 상세하게 전했으며, 수년간의 조사를 통해 축적해온 북한 불법행위의 ‘확증’을 시차를 두고 공개하겠다는 의지를 비쳤다.

힐 차관보도 이날 한국특파원 간담회에서 “북한이 달러를 위조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며 나도 (정밀위조한 100달러 지폐인) ‘슈퍼 노트’를 직접 봤다”며 “그 지폐가 수백만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생각된다”고 가세했다.

힐 차관보의 이 발언은 북한의 불법행위를 6자회담과는 연계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보인다.

상황이 이처럼 북미간 날 선 대립으로 치달으면서 지난 7월 제4차 6자회담 개막과 9월 ‘공동성명’ 채택으로 진전되는 양상을 보였던 북핵 논의는 또 다시 안갯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공동성명 이행방안의 논의는 커녕 차기 회담의 개최 여부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는 것이다.

우리 정부는 북한 불법행위에 대한 미측의 설명과 관련해 ‘심증’은 가지만 아직 ‘단정’하는 것은 섣부르다는 판단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정부 소식통은 “꽤 많은 자료를 제시했지만 정황 증거가 대부분이며 마약밀매와 달러위조를 입증할 구체적인 계좌번호 등은 포함돼 있지 않다”고 말했다.

정부는 또 북한의 달러 위조혐의의 경우 사실관계 확인이 우선되어야 하며, 그러한 프로세스와는 별도로 차기 6자회담 개최와 그 틀을 통해 공동성명을 이행하는 실질적 진전을 도출해야 한다는 입장을 정하고, 차기 회담이 가능하면 내년 1월에 열리도록 최선을 다한다는 방침이어서 향후 추이가 주목된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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