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자회담 눈에 띄는 힐 `이니셔티브’

제4차 6자회담의 미국측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의 적극적인 ’협상 행보’가 현지 외교가의 이목을 모으고 있다.

지난 9일 베이징(北京)에서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과 담판을 벌여 13개월째 꺼져 있던 6자회담의 불씨를 극적으로 되살려 낸 힐 차관보는 본격적인 협상무대에서도 탄력있는 모습을 과시하고 있다.

26일 개막식 인사말에서는 “북한은 주권국가”임을 강조하면서 “우리는 북한의 안전 우려를 해소하고 에너지 지원을 논의할 준비가 돼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물론 북한의 핵 프로그램 폐기를 전제로 한 것이지만 그는 북한이 극도로 꺼리는 이른바 ‘CVID’(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핵폐기) 라는 용어를 다시 거론하지 않는 등 북한을 배려하는 모습을 과시했다.

이런 그의 모습에 화답이라도 하듯 북한측 김계관 수석대표는 힐 차관보의 인사말이 끝나자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하는 듯한 제스처를 취하기도 했다.

힐 차관보의 적극성은 일찍부터 예견돼왔다. 그는 지난 2월 6자회담 미국측 수석대표에 임명된 직후 “훈령만 읽는 협상자가 되지는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의 이런 모습은 그에 앞서 미국측 수석대표였던 제임스 켈리와 크게 대비됐다. 켈리는 협상이 고비단계를 맞을 때마다 심각한 얼굴로 ’침묵’으로 일관, “그의 얼굴만 보고도 협상이 어긋나는 것을 알 수있다”고 취재진들이 놀려대기도 했다.

현지 외교소식통은 “힐과 켈리의 외교협상능력이 차이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외교적 국면과 미국의 협상전략의 차이를 잘 봐야한다”고 지적했다. 다시 말해 힐의 적극성은 그에게 상당한 재량권이 주어졌다는 것이다.

사실 힐 차관보는 미국 조야에 포진해있는 네오콘(신보수주의자)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리 근 북한 외무성 미국국장을 뉴욕으로 초청해 비공식 세미나를 성사시키기도 했으며, 김계관 부상과의 지난 9일 베이징 회동에서 기어이 6자회담의 개최를 합의했다.

심지어 지난 달 22일에는 “나는 기꺼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날 것이며, 만나게 되길 기대한다”고 선언, 자신의 위상을 한껏 드높이기도 했다.

결국 북한 핵문제를 해결하는 첨병으로서 자신의 역할을 적극적으로 수행하겠다는 그의 의지가 13개월간 닫혀있던 6자회담의 빗장을 여는데 기여했다고 외교분석가들은 평가하고 있다.

힐의 자신감은 역시 조지 부시 대통령과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 등 미국 수뇌부의 신임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리고 이념에 치우치지 않는 실용주의나 유연한 협상력 등은 그의 힘을 보태주는 요인으로 거론된다.

베이징의 한 외교소식통은 “그동안 핵협상의 맥락을 살펴볼 때 힐 차관보만한 재량권과 협상력을 가진 적이 드물었다”면서 “따라서 협상이 고비에 부딪힐 때마다 그가 이니셔티브를 쥐고 난국을 돌파할 지 주목된다”고 말했다.

한편 힐 차관보와 함께 한국의 수석대표인 송민순 외교부 차관보의 ’배짱’도 협상타결에 ’일정한 역할’을 할 지도 관심사다. 송 차관보는 과거 미국과의 SOFA(주둔군지위협정) 협상 당시 미국측의 ’간담’을 서늘하게 할 정도의 추진력을 과시한 것으로 유명하다.

따라서 북한과 미국이 ’첨예한 줄다리기’를 할 때 송 차관보가 ’주도적 중간자 역할’을 하겠다고 나설 가능성이 거론된다.

특히 송 차관보는 힐 차관보와 함께 폴란드 대사직을 같은 시기에 지내는 등 친분이 각별하다. 서로를 “민순”이나 “크리스”로 호칭하는 두 사람의 관계를 볼 때 ’힐의 협상력’을 보태주는 ’민순의 서포트’가 가능하다는게 현지 외교소식통의 전언이다./베이징=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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