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자회담 눈길 모았던 `말·말·말’

13일간의 마라톤협상에도 불구, 최종 합의를 보지 못하고 휴회를 택한 제4차 6자회담은 고비에 고비를 넘는 우여곡절 만큼이나 각국 수석대표들의 다양한 어법도 눈길을 끌었다.

각국 대표들이 언급한 현학적인 수사(修辭)는 때론 회담 상대에게 꽂히는 ’비수’가 되기도 했고 취재진에게는 회담장의 온도를 측정할 수 있는 수은주 역할을 했다는 게 회담장 주변의 평가다.

특히 회담 초반보다는 종반전에 갈수록 알쏭달쏭한 비유들이 쏟아져 어느 때보다 지루하고 해법을 찾기 어려운 회담이었음을 보여주었다.

지난 달 26일 공식 개막식이 열린 후 2∼3일 동안은 ’배와 항구’ ’물잔’ ’대어(大魚)’ 등을 화두로 삼아 폐막일을 정하지 않고 시작하는 회담이 순탄하게 진행되기를 기대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댜오위타이(釣魚臺)의 팡페이위안(芳菲苑)에서 열린 공식 개막식 때 북한 수석대표인 김계관 외무성 부상은 “모든 참가국들이 협력과 이해의 정신에 따라 머리를 짜낸다면 긴 항해를 하기 위해 첫 운항을 시작한 우리의 이 배가 암초에 부딪히지 않고 최종적으로는 비핵화라는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운을 뗐다.

6자회담을 비핵화라는 종착지를 항해 출항하는 선박으로 표현한 것이다.

남측 수석대표인 송민순 외교통상부 차관보도 고대 로마 철학자 세네카의 말을 인용해 “‘어느 항구로 가고 있는지를 알지 못하는 항해사에게는 아무리 순풍이 불어도 소용이 없다’는 말이 있다”라고 거들었다.

그는 “우리는 목표를 분명히 하고 이를 달성하겠다는 확고한 결의와 신뢰를 모아가야 한다. 그래야 우리가 타고 있는 배가 한반도 비핵화이자 동북아는 물론 세계 안정과 평화로 향하는 길인 항구에 닻을 내릴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의장국인 중국의 리자오싱(李肇星) 외교부장도 ‘世上無難事, 只파<拍에서 손수변대신 심변>有心人’(세상무난사 지파유심인: 세상에서 어려운 일은 없다. 단지 마음먹기에 달려있다)라는 중국 고사를 인용, 각국의 적극적인 자세를 촉구했다.

그는 “밥을 한 술 한 술 먹다보면 언젠가는 배가 불러지고 길은 한 걸음씩 걷다보면 언젠가는 목적지에 도달하고 언덕을 하나씩 오르다보면 언젠가는 산에 오를 수 있다”라고 뜻풀이까지 했다.

27일 전체회의 기조연설에서는 ’물잔’이 화두가 됐다.

송 차관보는 “체조선수가 고난도 공중 세 바퀴 돌다 떨어지면 두 바퀴 돈 것만도 못하다. 지금은 물잔을 조금씩 채우기 시작했고 아직 채울 공간이 많다”고 했다.

회담 성과에 대해 조바심이나 섣부른 기대보다는 빈 동이를 채울 수 있도록 각국이 열심히 물을 떠 나르자는 속마음을 표현한 것이다.

그는 “위대한 발견의 길은 새로운 땅을 찾는 게 아니라 눈앞의 땅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라며 지나친 탐색보다는 해법을 모색하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이는 지난 2월 6자회담 무기한 불참을 선언한 북한에 대해 “북한이 닭을 자꾸 오리로 보는 것 같은데 회담장에 나오면 닭인지 오리인지 알 수 있을 것”이라고 한 말과 대조를 이뤘다.

개막 사흘째인 28일에는 북한과 미국 등 각국이 내놓은 안이 본격 조율되고 있음을 ’암나사’와 ’수나사’로 비유하기도 했다.

6자회담 수석대표들을 위한 오찬에서 송 차관보는 “테이블에 내놓은 암나사와 수나사 가운데 맞는 부분은 그대로 끼우면 되지만, 안 맞는 부분은 다듬어야 하고, 어떤 것은 공장(본국)에 보내 깎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엔진과 핸들이 없는 자동차는 있을 수 없다”라고도 했다.

다이빙궈(戴秉國) 중국 외교부 상무 부부장은 “댜오위타이에서 대어(大魚)를 낚자”고 말했다. 댜오위타이의 뜻이 낚시터임을 감안해 각국이 분발하면 예상치 못한 ’월척’도 가능하다는 뜻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회담이 종료되기를 기대했던 31일 이후에도 북-미간 입장차가 좁혀지지 않은 것을 빗대어 ’교통체증’, ’한 지붕 두 개 기둥론’까지 나왔다.

송 차관보는 “1주일간 국도를 따라 도심 입구까지 왔는데 도심에서 목적지를 찾아가려면 거리는 멀지 않지만 신호등도 많고 체증도 심해 얼마나 걸릴지 예측이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그는 “지엽적인 문제까지 논의할 단계는 아니며 현재 한 지붕 밑에 두 개의 기둥을 얘기하고 있다”라고도 했다.

지붕은 참가국이 목표로 잡은 한반도 비핵화를 뜻하고 기둥 두 개는 북핵 폐기와 관계정상화 등 상응조치를 각각 의미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회담 1주일째인 이달 1일 미국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차관보는 숙소인 베이징 국제구락부(세인트레지스호텔)로 돌아와 기자들에게 “오늘 긴 시간 회의를 했지만 진전이 없다. 현 국면에서는 돌파구가 안 보인다”라고 답답한 심정을 토해냈다.

이에 대해 중국 수석대표인 우다웨이(武大偉) 외교부 부부장은 다음 날 ’검려지기(黔驢之技)’란 고사성어를 들어 자신의 처지를 당나귀에 비유했다. 자신이 ’당나귀의 뒷발질이나 서투른 재주’를 감수하고서라도 역할을 할테니 북한과 미국 등이 이제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촉구한 것이다.

7월 마지막 주말이 가까워지면서 회담 기간을 묻는 질문이 많아지자, 송 차관보는 “삼국지에 ’모사재민 성사재천’(謀事在民 成事在天.일을 꾀하는 것은 사람이지만 이루는 것은 하늘)’이란 말이 있다”고 에둘러 답하기도 했다.

회담 종료 시기를 묻는 질문에도 “여벌의 셔츠를 가져왔다”(힐 차관보), “비행기 표를 (탑승 일시를 당길 수도, 늦출 수도 있는) 오픈 티켓으로 바꾸라”(친 강 중국 외교부 대변인)는 재치있는 답변이 있었다.

이 밖에 힐 차관보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체어맨 김정일’로 호칭하기도 했는 또 회담이 막판까지 진통에 진통을 거듭하면서 회담 결렬 또는 휴회 가능성에 대한 대표들은 언급도 눈길을 끌었다.

송 차관보는 6일 “햇볕이 날 때 건초를 말리라는 말이 있듯이 진전 기류가 있는 상태에서 협의를 하는게 좋다”며 마지막까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힐 차관보도 같은 날 “저녁이 되면 언제 호텔을 떠날지 말해줄 수 있을 것”이라며 회담의 어두운 분위기를 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휴회 가능성에 대해서는 “분명한 방법 중 하나이기는 하지만 바위를 언덕위로 끌고 왔는데 그 바위를 아래로 굴려 내리고 싶지는 않다”고 말해 카뮈의 소설 ‘이방인’을 염두에 둔 듯한 비유를 썼다.

13개월만에 재개된 제4차 6자회담은 각국 대표들의 현란한 수사 만큼이나 진통에 진통을 거듭했고, 결국 결렬이라는 최악의 상황은 아니지만 합의를 위한 ‘휴회’라는 우회로를 택하게 됐다.

공식 휴회를 결정한 뒤 송민순 차관보는 “우리가 이번에 과일을 담으려고 광주리를 준비해왔는데 과일도 상당히 모았지만 광주리에 담을 수 없는 물까지 담으려고 과욕을 부린게 아닌가 한다”고 말했고, 우다웨이 부부장은 ‘만리장정타승장’(萬里長征打勝仗. 이미 우리는 ‘만리장정에서 승전을 거뒀다)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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