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자회담 낙관·비관 넘나든 13일

한반도의 명운을 가를 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약 2주간 숨가쁘게 달려왔던 6개국간 협의가 결과 도출에 실패한 채 휴회에 들어감으로써 다음을 기약하게 됐다.

회담 개막 13일만이며, 남북접촉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양자협의에 돌입한 지 15일, 참가국 중 가장 먼저 베이징(北京)에 도착한 북한을 기준으로는 17일 만이다.

이번 회담은 세 차례의 지난 어느 회담보다 큰 기대 속에 힘차게 출발했으며, 실제로 회담 중반까지는 낙관적인 전망이 회담장 주변을 지배했다.

남북과 미국을 포함해 모든 참가국들이 이번만은 합의문에 도장을 찍어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충만했으며, 때문인 지 회담은 당초 ‘끝장토론’이 벌어질 것이라는 우려섞인 기대처럼 장기간에 걸쳐 진행됐다.

회담은 지난 달 26일 공식 개막했지만 그에 앞선 24일 베이징 시내 모처에서 남북 수석대표의 물밑접촉을 시작으로 사실상 회기에 돌입했다.

이튿날인 25일에는 사상 처음으로 6자회담 개막에 앞서 북미 수석대표인 김계관 외무성 부상과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가 회담장인 댜오위타이(釣魚臺)에서 만나 회담에 대한 장밋빛 전망을 불러일으켰다.

사전 양자접촉을 가진 뒤 27일 첫 전체회의 기조연설에서 각 국이 자국의 입장을 테이블 위로 올려놓으면서 회담은 본격적인 협상 레이스에 돌입했다.

이 때부터 각 국은 전체가 모이는 회의를 가급적 줄이면서 양자접촉을 중심으로 입장 차를 좁히는 작업을 쉼없이 진행했다.

회담 대칭선상의 핵심 당사자인 북한과 미국은 어느 때보다 양자접촉을 활발히 벌이면서 카드를 하나씩 제시하면서 접점을 찾으려 노력했다.

특히 개막 나흘 째까지 북미가 네 번이나 만나면서 회담이 길어야 일주일, 잘하면 예전회담보다 하루 이틀 정도 늘어날 것이라는 희망이 대두되기도 했지만 북한의 한반도 비핵화지대 주장과 미국의 인권.미사일 문제 제기에 대한 접점 찾기 실패로 이 같은 예측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회담이 교착국면으로 들어설 조짐이 보이자 이번 회담을 통해 ‘중재자’라는 확실한 역할을 찾은 우리 대표단은 북한과 미국을 번갈아 만나면서 설득과 동시에 혹시 있을 지 모를 양측간의 커뮤니케이션상의 오해를 막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의장국인 중국도 회담이 가속화되지 않자 다이빙궈 외교부 상무부부장이 28일 직접 참가국 수석대표들을 위한 만찬을 열며 “댜오위타이(‘낚시터’라는 뜻)에서 대어(大魚)를 낚자”며 각국을 독려하고 나서기도 했다.

그런 가운데 회담 개막 이후 첫 주말인 30일 중국이 각국의 입장을 전달받아 만든 공동문건 초안을 회람시켰고, 그 날 저녁 시내의 유명한 북한식당인 ‘해당화’에서는 유례없는 북미 단독 만찬이 성사되기도 했다.

이는 양측이 공식 회담장을 벗어나 자연스런 대화를 통해 회담 의지를 다잡기 위한 것으로 북한이 미국에 한 턱 ‘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이 공동문건 초안을 내놓은 뒤로 각국은 본국에 대한 보고와 훈령을 주고 받으며 막판 입장 조율에 들어갔고, 중국이 다시 고치는 식으로 진행됐다.

그렇게 초안을 고치고 또 고치면서 4차 수정안이 제출된 지난 2일 그 간 대외적으로 입을 굳게 다물고 있던 북한 김 부상이 북한대사관 앞에서 밝은 표정으로 기자들에게 “미국의 핵위협이 제거되고 신뢰가 조성되면 핵무기와 핵무기 관련 계획을 포기할 결심”이라며 “의견의 상이도 있지만 최대한 좁혀 결과물을 마련하겠다”고 언급, 회담 타결이 임박했음을 시사했다.

힐 차관보도 “4차 수정안은 좋은 안”이라고, 송 차관보도 “합의된다면 상당히 높은 수준”이라고 언급하는 등 베이징 외교가는 타결 기대감이 한껏 고조됐다.

합의문 수준도 이전의 의장요약이 의장성명보다 격상된 공동성명이 발표될 것이라고 당시 회담 관계자들의 확인하기도 했다.

그러나 4차 수정안에 대해 북한만이 사인을 할 수 없다고 버티는 바람에 회담은 더 이상 앞으로 나가지 못하자 힐 차관보는 3일 밤 지친 표정으로 “이제는 북한이 선택해야 할 때”라고 북한을 압박하고 나섰다.

회담이 극적 타결이냐 결렬이냐 아니면 휴회냐에 대한 기로에 선 4일 각국은 댜오위타이에 박혀 막판 담판을 시도했지만 북미간 입장차가 줄어들지 않자 결국 회담이 깨지는 게 아니냐는 쪽으로 분위기가 급선회했다.

이 때 우리측의 움직임이 바빠졌다. 우리측은 주머니 속에서 만지작거리고 있던 마지막 카드인 남북미 3자회동을 전격 성사시키면서 회담 타결을 시도하는 동시에 가능성으로 부각한 ‘결렬’을 사전 차단하는 데 총력을 동원했다.

중국도 이날 오후 “회담은 계속된다”고 사전포석을 놓으면서 파국만은 막아야 된다는 입장을 내놓았고, 3자회동 뒤 한미도 회담 지속을 거론했고, 북한 김 부상도 이날 밤 대사관으로 들어가면서 “회담은 계속될 것”이라고 말해 주변을 안도시켰다.

하지만 김 부상은 평화적 핵활동 불용과 핵포기에 대한 상응조치에 있어 난관이 있다고 공식화함으로써 더 이상 양보할 수 없음을 내비쳤다.

다급해진 또 하나의 나라는 중국.

2주 가까이나 회담을 하면서 합의문 도출을 못한다면 ‘영향력 있는’ 중재자를 자처한 의장국으로서 체면을 구기는 데다, 그 간 고위급이 북미를 오가며 진행했던 사전 물밑작업 역시 수포로 돌아갈 수 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중국은 5∼6일 이틀간 북한과 미국을 집중적으로 접촉하며 합의를 시도 했지만 “더 이상의 양보는 없다”며 꿈쩍도 하지 않는 두 나라 사이에서 속만 태웠다.

결국 더 이상의 협의는 시간만 소모할 뿐이라는 공감대가 이뤄지자 참가국들은 6일 저녁 휴회 검토에 들어가 회담 개막 13일째이자 두 번 째 일요일을 맞은 7일 전격 휴회를 선언함으로써 이번 회담은 3주 후를 기약하며 빈 문서만을 손에 든 채 각자 본국으로 향하게 됐다./베이징=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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