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자회담 기조연설로 본 예상 쟁점

이틀째 진행 중인 제4차 6자회담에서 한반도 비핵화 범위와 인권, 미사일 문제 등의 논의 여부에 대한 핵심참가국들의 견해 차가 확인되면서 향후 치열한 공방을 예고하고 있다.

특히 북핵 문제의 실질적인 당사자인 북한과 미국은 확인된 쟁점들을 놓고 열띤 밀고 당기기를 할 것으로 예상된다.

◇ ‘한반도 비핵화’ 어디까지인가 = 회담의 출발점이자 최종목표로, 참가국간 치열한 논리 싸움이 전개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 회담의 목표가 ‘한반도 비핵화’라는 데는 참가국간 이견이 없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본 결과 비핵화 범위를 놓고 한미일 3국과 북한간 인식차가 극명했던 만큼 이에 대한 ‘교통정리’가 안되면 회담 초장부터 공전할 가능성이 높다.

한미일 3국은 비핵화의 범주를 북한 지역의 평화적 핵시설을 포함한 모든 핵무기 및 핵프로그램으로 규정하고 있지만, 북한은 무기급 핵에만 한정한 채 남한의 것은 물론 주한미군의 핵무기도 철폐해야 한다며 힘겨루기를 하고 있는 상태다.

북한은 한 발짝 더 나아가 영공과 영해를 아우르는 개념으로 외부로부터의 핵반입도 금지시켜야 한다는 ‘비핵지대화’를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유사시 미국의 핵항공모함 조차도 한반도 접근을 막겠다는 것으로 가깝게는 일본, 종국적으로 미국의 핵을 겨냥한 것으로 풀이된다. 비핵지대화를 언급하면서 ’무조건적인’ 핵불사용을 담보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알려진 것도 북한의 의도가 담겨진 대목으로 풀이된다.

따라서 한반도 비핵화에는 합의를 해놓고도 이후 절차인 방법 논의에 앞서 개념부터 다시 꺼내 공통분모를 찾아야 하는 숙제가 생긴 셈이다.

북한이 이 처럼 남한 및 주한미군의 핵무기 철폐와 함께 ‘한반도 비핵지대화’를 거론하고 나선 것은 비록 안전보장안과 경제지원안을 약속받은 뒤에도 자신을 보호할 마지막 수단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핵을 자신들만 없앴을 경우 미국이 이를 뒤집을 수 있다는 대미 불신에서 나오는 것으로 관측된다.

이는 ‘말대 말’, ‘행동대 행동’ 단계마다 관련국들이 경제지원 및 안전보장안을 어떻게 어떤 순서로 조합시킬 것이냐의 ‘순서’(sequence) 문제에서 불거진 대미 불신과도 그 맥이 닿아 있다.

북한의 ‘비핵지대화’ 거론이 ‘핵군축’을 염두에 둔 것이라면 미국은 물론 우리 정부 역시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어서 이에 대한 양측, 특히 북미간의 추가설명과 협의가 있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회담 파국을 원치 않는 우리 정부 역시 이 과정에서 북한의 의도를 파악한 뒤 미국과 함께 이 문제에 대한 심도있는 협의가 뒤따를 전망이다.

그러나 북한도 미국이 기조연설에서 HEU(고농축우라늄)이라는 말을 꺼내지 않은 만큼 신축성을 보일 여지를 배제할 수 없다.

◇ 미.일, 미사일.인권 의제화 논란 = 이날 전체회의 개막식에서 눈길을 끈 대목은 힐 차관보가 회담시 핵심 원칙을 담는 바구니에 미사일 및 인권 등을 양자 또는 다자 이슈로 처리한다는 것이었다.

이는 북한이 극도로 꺼리는 미사일과 인권문제를 6자회담에서 의제화하려는 의지로 해석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핵문제에만 집중하자고 목소리를 높여온 우리 대표단도 적잖게 당황했다는 후문이다.

정부는 인권과 미사일 문제가 중요하기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북미 양자간의 문제인 만큼 이를 6자회담 내의 북미접촉에서 별도로 논의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해왔고, 관련국들에게 이에 동조해줄 것을 설득해왔기 때문이다.

물론 차후 회담 과정에서 북한 대표단의 반발이 거셀 것으로 관측되며 미측이 이를 의제화하려 할 경우 회담이 어려운 상황이 처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의도와 관련해 여러가지 해석이 나오고 있다.

그 가운데 우선 2차례의 북미접촉을 통해 북한 대표단이 강경하게 나오려는 ‘의중’을 파악한 미 대표단이 이를 상계하기 위해 북한이 당연히 꺼릴 법한 카드를 꺼낸 것 아니냐는 분석이 유력하게 제기되고 있다.

실제 북한의 수석대표인 김계관 외무성 부상은 비핵화 실현을 위한 의무사항으로 북미간 신뢰조성을 위한 법적.제도적 장치 구축하는 문제, 남한내 핵무기 철폐 및 외부로부터의 반입금지, 핵우산 제공 철폐 사실상 소화하기 어려운 조건을 내걸었다.

‘강 대 강’으로 맞서 북한의 강수를 꺾으려는 의도라는 것이다.

이 경우 전망은 나쁘지 않다. 단순히 협상카드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와는 달리 미측이 이번 회담의 난관을 조성하기 위해 미사일과 인권문제를 본격 거론하고 나선 것 아니냐는 풀이도 있다.

이게 사실이라면 문제는 심각해진다. 북한은 정색하고 반발하면서 초강수로 대응할 것으로 예상돼 파국으로 치달을 수 있는 폭발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측은 중단 13개월 만에 어렵게 재개된 4차회담이 자국의 강수로 인해 망쳤다는 책임추궁을 원할 까닭이 없다는 점에서 난관조성용 카드는 아니라는 견해도 만만치 않다.

외교소식통은 “모든 차이를 드러내놓는 게 협상의 시작”이라며 “예단할 필요는 없으며 차후 논의과정을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 미 3차회담 제안 놓고 팽팽 = 북미 양국은 미국이 작년 6월 내놓은 제안을 놓고도 부딪혔다.

이 제안은 미국이 6자회담에 참석, 처음으로 내놓은 구체적인 북핵 해법이다.

북한이 3개월 내에 고농축우라늄(HEU) 프로그램을 포함해 핵폐기 선언을 하고, 핵프로그램 및 시설 제거를 위한 준비조치 등을 이행하면 한ㆍ중ㆍ일ㆍ러 4국의 중유제공, 테러지원국 해제 논의 등 단계별 조치를 취한다는 게 그 골자를 이룬다.

하지만 이날 기조연설에서 미국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는 이 제안에 대해 심층적으로 논의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힌 반면, 북한의 김계관 외무성 부상은 불합리한 제안이어서 받기 어렵다고 답한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은 협상 시작의 출발점을 이 3차회담 제안으로 삼고 있는 반면, 북한은 이제안이 마음에 들지 않고 기대치에 못 미친다는 입장인 것이다.

김 부상을 이 제안을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로 선핵포기를 주장하고 핵위협 종식 및 평화 공존과 관련한 구체적 요소가 결여됐다는 점을 든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북한이 작년 3차 회담 직후부터 외무성 발표 등을 통해 미국 안에 대해 반감을 표시한 이유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으로 해석된다.

북한 외무성은 지난 해 7월 미국 안에 대해 “본질상 전향이라는 보자기로 감싼 ’리비아식 선 핵포기’ 방식”이라고 일축했기 때문이다.

특히 북한은 당시 핵동결이 핵무기 폐기로 가는 첫 걸음인데도 불구하고 미국이 중유 제공에 불참한다는 것은 대북 적대시정책의 철회나 평화공존에 대한 의지가 결여된 태도로 해석했다.

북핵 문제를 북미간 문제로 생각하는 북한 입장에서는 상대방인 미국의 ‘행동’이 빠진다면 ‘행동 대 행동’이라는 원칙에도 어긋나는 것으로 볼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북한은 아울러 3개월로 정한 준비기간에 대해서도 반감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미국의 제안에 대한 북한의 반응이 명확히 드러나고 있는 상황은 협상의 여지가 충분하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

게다가 ‘말 대 말’, ‘행동 대 행동’ 방식을 북미 양측이 재확인한데다 미국 제안을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우리 정부의 200만kW 대북 송전 계획이 마련된 것도 긍정적인 여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특히 지난 26일 북미 양자협의에서도 북한이 미국 제안에 대해 구체적인 답을 내놓고 상호 의견을 교환한 것으로 확인된 만큼 앞으로 본격적인 협상을 통해 첨삭이 가능할 것으로 회담 관계자들은 보고 있다. /베이징=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