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자회담 각국 수석대표의 협상 스타일

제4차 북핵 6자회담이 참가국들의 장고(長考)에도 불구하고 일단 휴회로 막을 내렸지만 13일이라는 긴 시간이었던 만큼 핵심국가인 남.북한과 미국 등 수석대표들의 면면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회담이 13개월만에 재개된 탓에 북한과 러시아를 제외한 한ㆍ미ㆍ중ㆍ일 수석대표는 이번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이번 회담에서 가장 큰 관심사중 하나로 부각한 것은 과연 미국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가 이전 수석대표였던 제임스 켈리와 어떻게 다른 스탠스를 보여주면서 북한 수석대표인 김계관 외무성 부상과 맞설 것인 지, 우리측 수석대표인 송민순 외교부 차관보가 어떻게 중재역을 해낼 수 있을 지 였다.

‘일정한 한계속에서도 재량권을 맘껏 활용한’ 것으로 알려진 힐 차관보는 회담 초장부터 진가를 드러냈다.

회담 첫 전체회의 기조연설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체어맨’이라고 부른 것이 그 시작이었다. 그의 직속 상관인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과 조지 부시 대통령이 회담을 앞두고 마지못해 북한을 ‘주권국가’로 부르거나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미스터’로 호칭한 것으로 미뤄볼 때 서너발 짝은 더 나아간 것으로 평가됐다.

북한이 자신의 최고지도자 호칭을 무엇보다 소중히 여긴다는 한국의 충고를 전해들은 그가 본국에서 기조연설문을 다듬을 때 이의 삽입을 주문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는 특히 북한을 상대하기에 앞서 늘 한국의 조언을 부탁한 것으로 전해졌다.

좀 더 정확한 정보를 갖고 북한 대표단의 핵심을 건드려야 한다는 생각도 있었을 것으로 보이며 송 차관보와의 돈독한 관계가 이를 가능케 했다.

그는 회담이 교착에 빠진 지난 달 31일 송 차관보가 묵고 있는 호텔로 직접 찾아와 로비에서는 물론 방으로 함께 올라가 송 차관보와 머리를 맞대기도 했다.

‘한계있는 재량권’ 범위 내에서 머리를 짜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회담 최후의 쟁점으로 알려진 북한의 평화적 핵개발 문제에 대해서는 힐 차관보의 재량권을 벗어난 것이었기에 그로서도 상당히 난감해 했다는 후문이다.

“회담이 결말을 향해 가고 있다”고 했던 그가 워싱턴의 훈령을 받아들고서는 “북한이 선택해야 할 때”라며 양보의 뜻이 없음을 명확히 한 점이 이를 방증한다.

협상의 한 축에 힐이 있다면 함께 입에 오르내리는 사람이 바로 송 차관보다.

회담 전부터 ‘강단있는’ 인물로 평가돼 온 그는 회담 내내 결렬위기에 처한 회담을 절묘한 중재를 통해 하루 하루 이끌어 간 것으로 전해졌다.

회담이 4∼5일만에 결렬과 타결의 기로에 서자 ‘북미 가교역’이라는 모종의 역할을 통해 1주일 이상을 더 끈 것도 그의 역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후문이다.

특히 지난 4일 평화적 핵활동 여부를 두고 북미간 이견이 더 이상 좁혀지지 않아 이제는 결렬 수순이 아닌가라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지만 이를 무색하게 남북미 3자회동을 성사시켜 파국만은 안된다며 양측을 설득한 것도 송 차관보였다는 것이 소식통들의 전언이다.

3자회동 뒤 남북과 미국이 동시에 “회담은 결렬도 타결도 아니며 계속된다”고 한 목소리를 낸 것은 이를 잘 말해준다.

반기문 외교장관도 “성과가 없으면 돌아오지 말라고 말했다”고 한 것처럼 그는 상당한 권한을 쥐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소식통들은 “지금 베이징에서 제일 센 사람은 송민순”이라는 말까지 했다.

송 차관보는 이런 ‘뚝심’외에도 평화적 핵활동에 대해 북미가 끝까지 충돌하자 궁여지책 끝에 ‘창의적 모호성’이라는 ‘에드벌룬’을 살짝 띄웠다가 워싱턴에서 반발하자 이내 해석을 달리하면서 거둬들이는 노련함도 보여줬다.

북한 김 부상은 이번 회담에서 이전과는 다른 ‘부드러운’ 면모를 각인시켰다.

상대측인 미국의 강경한 입장이 나올 때마다 언론을 통해 미국을 성토했던 과거와 달리 이번에는 세 번의 거리회견에서 자극적인 대미 발언을 일절 삼갔다.

특히 회담이 좌초 위기에 몰렸던 4일에는 길거리 기자회견에서 평화적 핵활동 권리를 강조하면서 “여러분이 아는 한 나라만이 이를 반대하고 있다”고 돌려 말하며 발언의 완급을 조절하기도 했다.

수많은 북미접촉에서 힐 차관보가 북한을 동등한 눈높이에서 무엇이 문제인 지 뭘 원하는 지 ‘까놓고’, 그러면서도 ‘진정성을 갖고’ 말하자 김 부상도 상당히 진지한 태도로 협의에 임했고 얼굴을 붉히거나 고성은 거의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수석대표인 우다웨이 외교부 부부장은 ‘당나귀의 뒷발질이나 서투른 재주’를 의미하는 ‘검려지기’(黔驢之技)라는 고사까지 써가며 참가국들에게 ‘읍소’했지만 끝내 결실이 없자 허탈한 모습이 역력했다.

대북 지렛대를 갖고 있는 중국의 면모를 과시하려 했다가 ‘머쓱해진’ 셈이다.

일본 수석대표인 사사에 겐이치로 외무성 아주국장은 회담 내내 ‘납치문제’만을 외치며 북한의 외면을 받는 듯 했으나 의장성명 발표 직후 북한의 ‘배려’로 잠시 만난 것으로 전해졌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직계로 알려진 그는 8일 우정민영화법 표결에 이은 총선에서 승리를 안겨다 주기 위해 이번 회담에서 국내 정치용으로 북한과의 ‘사진 한 장’이 절실한 형편이었다는 게 한 일본 소식통의 전언이다.

러시아 수석대표인 알렉산드르 알렉세예프 외무차관은 회담 중간에 장관을 대리한다며 모스크바로 건너가 며칠 뒤 다시 회담장에 모습을 드러내는 등 러시아 역할 축소를 자초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