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자회담 `장기공전’ 우려 제기

북핵 6자회담이 장기 공전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가 외교가에 고개를 들고 있다.

특히 그동안 비교적 순탄하게 진행돼오던 비핵화 과정이 결정적 고비에 봉착한 점, 한국의 대통령 선거가 임박해있고 새로운 대통령 취임까지 상당한 과도기를 거쳐야 하는 점, 그리고 미국도 사실상 정권말로 치닫고 있는 상황 등과 맞물려 이런 비관론이 확산되고 있다.

우선 올 초 비핵화 1단계 시공계획에 해당되는 2.13합의가 채택되고 이후 방코델타아시아(BDA) 문제가 해결된 뒤 영변 핵시설 폐쇄, 대북 중유제공, 10.3합의 채택과 이후의 핵시설 불능화 착수까지는 큰 문제없이 진행돼왔다.

하지만 북한의 과거 핵활동의 궤적을 고스란히 드러내야 하는 핵 프로그램 신고는 다른 조치와 비교할 수 없는 복잡함을 내포하고 있다.

미국 당국자들과 언론의 보도를 종합하면 조지 부시 대통령은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에게 보낸 친서에서 `충분하고도 완전한 핵 프로그램 신고를 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핵탄두 수, 무기급 핵물질 생산량, 핵 기술.물질 이전 공개 등 3가지를 강조한 것으로 파악된다.

특히 미국은 제2차 핵위기의 발단이 된 농축우라늄프로그램(UEP)에 대해서는 단호한 입장이다.

UEP 문제가 풀리지 않으면 미 의회는 물론 강경파들이 부시 대통령을 향해 ‘5년간 도대체 뭘 했느냐’는 비난을 퍼부을 것이 뻔한 상황이다.

이미 샘 브라운백 등 상원의원 4명은 현지시간 11일 대북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와 관련, 북한의 핵.미사일.생화학기술 등의 해외 이전, 테러조직 지원 문제, 달러 위조, 납북자 문제 등 포괄적 이슈들에 대한 해결이나 재발방지 또는 무혐의 입증을 대북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의 전제로 삼을 것을 요구하는 결의안을 내놓았다.

여기에 미 의회조사국(CRS)의 래리 닉시 연구원 등도 12일 발표한 북한 테러지원국 명단삭제 관련 보고서에서 북한을 테러지원국에서 제외하는 데 미국 정부가 `섣불리 나서면 안된다’는 경고를 하고 나섰다.

부시 대통령이 북한과의 관계정상화를 위해 적극적으로 대북 협상기조를 유지하고 싶어도 미국내 상황이 간단하지 않음을 그대로 보여주는 장면들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북한은 아직까지 UEP 문제 등에 있어 “없는 것을 어떻게 있다고 할 수 있느냐”라는 입장을 고수하면서 신고서 제출을 미루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음주 6자회담 의장인 우다웨이(武大偉) 외교부 부부장이 방북, 북한측 고위인사들과 협의할 예정이어서 아직 변수가 남아있기는 하지만 북한이 개선된 자세로 나오리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는 상황이다.

급기야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은 12일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최근 북한과 관계개선의 조짐들이 나타나고 있지만 미국이 북한과 폭넓은 관계개선할 준비는 돼 있지 않다며 북한은 이란과 마찬가지로 중대한 핵확산 우려가 있는 국가라고 밝혔다.

라이스 장관은 특히 ‘북한이 모든 핵프로그램을 포기할 때까지는 북한 정부와 폭넓은 관계개선을 추진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비핵화 과정과 다소 성격이 다르지만 한국과 미국내 국내 정치상황도 큰 변수가 되고 있다.

곧 치러질 한국의 대선에서 승리한 차기 대통령 당선자가 북핵 협상에 대해 이전과 다른 입장을 밝히거나 최소한 `룰의 변경’ 같은 문제를 제기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또 차기 대통령 취임까지 대략 2개월 남짓한 시점까지 한국내 협상 수뇌부의 ‘사실상의 공백’도 고려해야 한다.

만일 북한이 연말이나 내년 초에 신고 문제에 있어 전향적인 조치를 취하고 나서고 6자회담이 본격적으로 진행될 경우 현정부와 차기 정부가 혼재하게 될 한국내에서는 상당한 혼선이 빚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와 함께 북한이 전통적으로 미국 대선을 앞두고 ‘시간벌기’를 해온 점도 변수가 될 가능성이 있다.

물론 ‘시간은 북한편이 아니다’라는 여론이 아직 높기는 하지만 체제 유지를 가장 큰 판단기준으로 삼고 있는 북한 정권의 속성상 자칫 한국과 미국의 과도기가 `시간 유예’에 대한 유혹을 부추길 개연성은 농후한 실정이다.

하지만 부시 대통령이 그야말로 이례적으로 ‘친서’까지 보내면서 협상의지를 과시하고 나섰고 북한도 어렵게 영변의 핵시설을 불능화까지 한 마당에 현재의 순조로운 협상기조가 쉽게 부정적 국면으로 넘어가지는 않을 것이라는 의견이 아직은 우세하다.

한 외교소식통은 “결국 북한이 얼마나 현재의 국면을 중시하고 통큰 결단을 시의성있게 내리느냐에 따라 전체 협상국면이 결정될 것”이라면서 “자칫 시간을 벌겠다는 판단을 할 경우 적어도 내년 봄까지 6자회담이 공전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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