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자회담서 ‘창조적 모호성’ 폐기되나

“창조적 모호성이 이 순간에 얼마나 가치가 있을까. 명확해야 할 때는 명확해야 한다.”

북핵 검증의정서 채택을 목표로 베이징(北京)에서 8∼11일 열렸던 제6차 6자회담 제3차 수석대표회의가 사실상 결렬된 이후 정부 고위당국자는 이른바 ’창조적 모호성’을 더이상 용인할 수 없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북한의 과거 핵활동을 ’완전하고 정확하게’ 규명하는 검증활동에 대한 핵심적인 내용을 담는데 애매모호한 것을 용인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의 언급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우선 6자회담에서 보여준 한국 대표단의 역할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동안 6자회담에서 북한과 미국이 주요 쟁점을 두고 첨예한 신경전을 벌일 때면 ’건설적인 역할’을 내세운 한국이 나서 접점찾기를 시도했고, 상당부분 결과를 이끌어냈다. 물론 창조적 모호성이 큰 힘을 발휘했다.

대표적인 것이 6자회담 출범 2년만에 채택된 9.19 공동성명이었다. 공동성명을 채택하기 까지 참가국들은 2005년 7월26일부터 8월7일까지 열린 4차 1단계 회담에 이어 9월13일부터 19일까지 2단계 회담을 하는 등 그야말로 힘든 협상을 해야했다.

미국과 북한의 논리가 총동원됐고, 접점은 좀처럼 찾아지지 않았지만 중국과 한국의 적극적인 중재끝에 양측의 논리를 교묘하게 절충한 합의문이 도출된 것이다.

예를 들어 공동성명이 “6자회담의 목표가 한반도에서 평화적 방식으로 검증 가능한 비핵화를 이루는 것이라는 것을 재확인했다”고 명시한 대목은 북측이 향후 핵문제 진전 상황에 따라 언제든지 남한의 핵무기 사찰 등 검증문제를 들고 나올 수 있는 여지를 남긴 것으로 볼 수 있다.

아울러 ’직접 관련된 당사국들은 적절한 별도 포럼에서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체제에 관한 협상을 가질 것’이라고 규정한 것도 흥미롭다. 이 역시 북한이 1990년대부터 줄곧 주장해 온 정전협정을 평화협정 체제로 바꾸는 문제를 실현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 준 것으로 평가됐다.

거기에 ’적절한 시기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에 대한 경수로 제공 문제에 대해 논의하는데 동의했다’는 구절은 북한이 당시 회담에서 고집했던 경수로 문제와 평화적 핵 이용권리를 ’미래의 권리’로 유보해둔 것이었다. 실제로 경수로 문제는 그후로도 오랫동안 논란의 여지를 남겼다.

게다가 공동성명은 수사학 면에서도 북한의 입장이 절충돼 반영됐다.

’비핵화’는 ’denuclearization’으로 표현됐는데, 그 대상을 ’모든 핵무기와 현존하는 핵 계획을 포기한다’고 했다.

물론 미국과 한국은 이 대상의 의미가 ’과거의 핵활동’을 모두 포함하며, 여기에는 고농축우라늄(HEU)과 북한의 해외 핵확산활동 의혹 등도 포함된다고 주장했다.

특히 1992년 남북한간에 체결된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에서 우라늄농축을 금지하는 항목이 있기 때문에 더욱 HEU와의 연관성이 분명하다는 논리를 쓰고 있다.

그러나 북한은 HEU의 존재를 극력 부인하고 있을 뿐 아니라 해외 핵확산 활동도 근거없다는 입장을 취했다.

여기에 북한은 핵무기를 ’현존하는 핵 계획’과 병렬적으로 배치하는데 성공했다. 이는 핵무기를 핵계획과는 다른 단계에서 논의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실제 북한은 추후 비핵화 2단계 이행조치를 논의하면서 핵무기를 철저하게 핵 프로그램(계획)과 구분하는 전술을 구사했다.

그리고 ’포기한다(abandon)’는 표현은 북한의 자발성을 전제로 하는 뉘앙스가 강했다. ’폐기 또는 해체한다(dismentle)’는 표현과 달랐다.

당시 사정에 정통한 정부 소식통은 “북한과 협상할 때는 ’창조적 모호성’을 어쩔 수없이 용인해야 한다”면서 “북한을 굴복시키려 할 경우 협상이 진전되지 못하는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협상전술”이라고 말했다.

이번 회담에 나선 당국자들의 발언과는 맥을 달리하는 것이다.

외교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창조적 모호성의 역할을 긍정적으로 보느냐 부정적으로 인식하느냐는 정책수단을 선택하는 사람의 시각에 달려있다”면서 “이것이 노무현 정부와 이명박 정부의 차이라고 볼 수도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창조적 모호성을 배제할 경우 북한과의 절충 가능성이 축소되면서 6자회담이 더이상 전진하기 어렵게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일부 전문가들이 창조적 모호성이 가급적 배제됐고, 그래서 결국 사실상 결렬로 끝난 이번 회담을 보면서 ’6자회담의 동력이 떨어져가고 있다’고 지적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된다.

한 외교소식통은 “정부 당국자들이 ’시료채취가 없는데 어떻게 북한의 과거 핵활동을 규명할 수 있느냐’며 명확한 표현을 요구하면서 북한뿐 아니라 미국을 압박했지만 사실 북한이 시료채취에 합의했다고 하더라도 북한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과거 핵활동 규명을 방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관심은 내년 1월 출범할 미국의 오바마 신정부가 북한과의 협상에서 창조적 모호성을 용인할 것인지다. 오바마 정부가 북핵 문제를 위해 창조적 모호성을 용인할 경우 6자회담은 존속될 테지만 한국과의 전술적 협조면에서는 불협화음이 연출될 가능성이 높고 그 반대라면 북핵 협상 자체가 불투명해질 수도 있다./연합

소셜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