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자합의문 `모호성’ 藥될까 毒될까

우여곡절 끝에 태동한 북한 비핵화 2단계 이행 합의문이 갖는 모호성이 어떤 결과로 귀착될까.

불능화.신고 단계 로드맵을 담은 이른 바 ‘10.3 합의문’을 접한 6자회담 관측통들이 대체로 갖는 의문이다.

이번 합의문은 연내 불능화.신고를 이행한다는 시한을 담았지만 불능화의 구체적 방법에 대한 합의는 뒤로 미뤘고 신고 대상도 ‘핵프로그램’으로 포괄적으로 규정했다.

또한 북한에 대한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 시한도 ‘제네바에서 지난 달 열린 북.미 관계정상화회의 합의 사항을 기초로 북한의 불능화.신고 조치와 병행해 이행한다’는 식으로 모호하게 정리됐다.

정부 당국자들은 이미 참가국 간에 쌓인 신뢰가 문서로 자세한 내용을 명시하지 않아도 될 정도며 이미 참가국들이 실무회의와 양자접촉을 통해 불능화.신고와 관련해 양해한 내용이 있기에 문제될 것이 없다고 설명한다.

더욱이 합의를 지나치게 구체적으로 도출하려 하다보면 이행보다는 문안 합의에 진을 빼게 된다는게 당국의 논리다.

그러나 만에 하나 6자회담 프로세스가 현재의 순항 국면에서 이탈했을 때 문안을 놓고 갈등을 빚을 가능성에 대비, 합의문에 최대한의 구체성을 담았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을 소지가 있다.

또한 불능화 수준과 신고 대상 등을 참가국끼리만 공유하기 보다는 대외적으로 공개되는 문안에 담는 편이 참가국의 정치적 이해를 반영한 ‘밀실합의’라는 등의 일부 시각을 일소하는데 도움이 됐을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이런 지적들을 뒤로 하고 이번 합의문의 ‘모호성’이 6자회담 프로세스에 약이 될지 독이 될지는 향후 한달 안에 어느 정도 윤곽을 드러낼 가능성이 커 보인다.

불능화 방법의 경우 2주 안에 미국 주도의 전문가 집단이 방북, 북측 인사들과의 협의를 통해 대강의 안을 마련하면 6자 수석대표들은 그 전문가들이 권고하는 불능화 방법의 타당성을 검토한 뒤 채택한다는 내용이 이번 합의문에 담겼다.

이 때 6자가 그간 설명해온 대로 ‘12개월 가량 복원이 불가능한 수준’의 불능화 방법을 채택할 경우 합의문의 모호성은 어느 정도 극복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불능화 수위를 둘러싸고 북한과 이견을 좁히지 못하거나 연내 불능화라는 목표에 집착, 12개월 보다 훨씬 짧은 시간 내에 복구 가능한 낮은 수준의 불능화 방안을 채택할 경우 합의문의 모호성은 도마 위에 오를 수 밖에 없을 전망이다.

핵프로그램 신고의 수준도 한달 안에 윤곽을 드러낼 전망이다.

6자회담 미국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는 북한이 이달 말까지 핵프로그램을 1차로 신고할 것으로 예상했다고 미국의 유력일간지인 워싱턴포스트(WP)가 3일 보도했다.

이번 10.3 합의는 신고와 관련한 논쟁 포인트인 농축우라늄 프로그램(UEP) 문제와 보유 플루토늄 관련 내용을 명시적으로 담지 않았기에 북한이 신고 목록에 UEP 관련 장비 내역과 보유한 플루토늄량 등을 담아 올지는 리스트를 보기 전에 장담하기 어렵다.

물론 북측이 1차 신고에서 UEP문제를 적절히 해명하고 플루토늄 보유량 등을 회담 참가국들의 추정치와 비슷한 수준에서 신고한다면 문제될 것이 없다.

하지만 북측이 보유 플루토늄 량을 1차 신고에서 빼거나 UEP 관련 의혹에 대해 5자가 납득할 수 있을 만큼 해명하지 않을 경우 역시 합의문의 모호성은 시비의 소지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이와 함께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 건도 미 행정부가 현지시간 4일 미 의회와 관련 협의를 시작할 것임을 힐 수석대표가 밝힌 만큼 향후 한달 후 정도면 북한의 불능화.신고 관련 조치와 동시 행동식으로 이행될 수 있는를 어렴풋하게나마 가늠할 수 있을 전망이다.

이와 관련, 힐 차관보가 이날 “테러지원국 제외 문제를 포함한 중요한 양자 문제를 다루기 위해 다음 주에 북한측과 일련의 회담을 계획하고 있다”고 밝힌 점은 이런 여러가지 의혹과 문제 제기와 관련해 주목을 끌었다.

힐 차관보가 이번 합의과정에 북.미가 공개되지 않은 별도의 ‘양해사항’(side understanding)을 주고 받았음을 시인했다고 워싱턴포스트가 전한 점을 감안, 미국이 북측과 일련의 회담을 통해 이런 의혹 등에 대한 북한측의 확답내지는 ‘양해사항’을 확인하려는 것 아니냐는 분석을 가능케하기 때문이다.

한 외교 소식통은 “합의문을 모호하게 만든 것이 연내 불능화 이행이라는 목표 달성을 위해 위험을 무릅쓴 것으로 평가될 지, ‘합의문을 뛰어넘는 합의 이행’이라는 6자회담의 새 전통으로 연결될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연합

소셜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