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者 진전…北 ‘경제외교’ 최종 목적지는 어디?

▲라오스 공식 친선방문차 4일 하오 비엔티얀에 도착한 북한의 김영일 총리 ⓒ연합

9.19 공동성명 이행을 위한 2단계 조치가 명시된 ‘10.3 합의’에 따라 북한이 지난 5일 영변 핵시설에 대한 불능화 조치에 착수한 가운데, 최근 들어 그동안 단절됐던 나라들과 외교관계를 복원하는 등 북한의 활발한 대외행보가 주목되고 있다.

김영일 내각 총리는 지난달 26일부터 이달 7일까지 베트남을 비롯해 말레이시아, 캄보디아, 라오스 4개국을 순방했다. 앞서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7월)과 최태복 최고인민회의 의장(10월) 등의 해외 순방이 있었다.

북한은 또, 올해 들어 그동안 단절됐던 미얀마, 나카라과와 외교관계를 복원했고 아랍에미리트연합, 몬테네그로, 스와질랜드, 도미니카공화국, 과테말라 등 5개국과 대사급 외교관계를 새로 수립했다.

북한의 이 같은 적극적인 외교 행보는 제2차 북핵 위기가 터진 2002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 동안 불과 3개 국가와 외교관계를 맺은 것과 비교하면 큰 차이가 있다.

북한의 적극적인 대외 행보중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베트남과의 교류다. 농 득 마잉 베트남 공산당 서기장이 베트남 최고지도자로는 50년 만에 북한을 방문해 김정일과 회담한 데 이어 지난달 27일에는 김영일 내각총리가 베트남을 방문했다.

김정일은 평양을 방문한 농 득 마잉 서기장과의 만남에서 “베트남의 ‘도이모이'(개혁)정책과 경제발전 방향을 벤치마킹하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김정일은 이어 20년 간에 걸친 도이모이 정책의 성취를 높이 평가하며 ‘귀중한 경험’을 거울로 삼기 위해 베트남측 답방 초청을 받아들인 것으로 전해졌다.

김정일의 베트남 답방수락과 관련,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회의적으로 바라보면서도 북한의 입장에서는 중국식 개혁·개방 보다는 베트남식 모델에 호감을 가지는 것 아니냐는 분석을 내놨다.

북한의 적극적 경제외교와 관련해 북핵 6자회담의 진전과 연계시켜 분석하는 시각도 있다. 즉, 적극적 대외행보를 통해 향후 북핵문제 해결의지에 대한 긍정적 메시지를 보냄으로써 미국과의 관계정상화를 적극 모색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이다. 여기엔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 철회와 직결돼 있다.

북한은 미국과 관계정상화 직전까지 갔던 클린턴 행정부 말기인 2000년에도 여러 나라들과 외교수립에 나섰다. 그해 1월 이탈리아와 국교를 맺은데 이어 4~8월까지는 3차례에 걸쳐 일본과 수교 교섭을 벌였다. 5월엔 호주와 24년만에 관계정상화에 성공했고, 아시아지역안보포럼(ARF)에도 가입했다.

이 같은 북한의 행보와 관련해 미국측 6자회담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는 지난 3일 일본 내셔널 프레스 클럽 기자회견에서 북한이 베트남에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은 “매우 흥미롭고 긍정적인 상황전개”라고 평가했다.

특히 북한의 활발한 대외행보를 6자회담의 진전과 연계시켜 분석하는 기사에 대해 “큰 흥미”를 갖고 있었고, 그렇게 보는 게 “흥미로운 개념”이긴 하다면서도 “그 두 사안이 어떤 연관성을 가졌는지 아직 알 수 없다”고 말했다.

힐 차관보는 북한이 6자회담 과정에 참여하면서 “자신들의 고립을 극복하려는 열망이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면서 “과거엔 고립이 자신들에게 이롭다고 말한 적이 있더라도 이제는 해로운 것이라고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의 개방 의지 자체에 대해 “아마 북한을 가장 잘 안다고 할 수 있는 중국 사람들도 그렇게 보고 있다”며 “북한 관리들에게 중국의 신(新)경제를 보여주는 게 북한의 개방 노력에 인센티브 작용을 하고 있는 것으로 중국 사람들은 믿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대다수 전문가들 사이에선 아직까지 북한의 개혁·개방 의지로 해석할만한 근거가 부족하다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다만 전면적 개혁·개방은 아니더라도 체제유지에 위협이 되지 않는 선에서의 제한적 개혁 조치는 가능하다는 관측이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지난달 30일 사설을 통해 “세계 속에 조선이 있다”우리가 ‘자력갱생’을 강조하는 것은 결코 국제경제 관계를 무시한 채 경제건설을 다그치자는 것이 아니다”고 말하는 등 ‘현대적 과학기술과 실리에 기초한 자력갱생’을 강조하고 나섰다.

‘자력갱생’을 노동당의 영원한 ‘경제전략’으로 내세웠던 북한 당국이 21세기 변화하는 환경에 따라 경제기조도 변화할 수 있음을 천명한 것이다.

하지만 “경제분야는 자본주의적인 요소가 발붙이기 쉬운 분야”이고 “제 힘으로 난관을 뚫고 나갈 수 있는 의지가 없으면 이색적인 비사회주의적 요소가 들어와 사회주의 물질적 기초가 흔들린다”고 거듭 강조했다. 일련의 개혁적 경제 정책을 편다고 하더라도 체제유지를 위협하는 범위는 벗어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

특히 이 같은 시점에서 지난달 26일 노동당의 최말단 조직인 ‘전국 당세포비서대회’가 10여년만에 열린 것은 시사하는 바 크다. 직전 대회는 1994년 제1차 북핵위기로 미국의 영변핵시설 공습이 예고되던 시기로 사상적, 안보적 위기에 처해 있을 때였다.

때문에 이번 당세포비서대회는 94년과는 상황이 다르지만, 김정일이 현재 시점을 94년만큼이나 중요한 정세의 변곡점으로 보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다. 94년엔 미국의 위협으로부터 내부 결속을 다지기 위함이었다면, 이번엔 북한의 대내외 환경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비하기 위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다.

노동당 중앙위원회는 이날 축하문을 통해 “경제강국 건설과 인민생활 향상을 위한 공격전으로 당원과 근로자들을 적극 불러 일으키는 것은 오늘 당세포 앞에 나서는 중요한 과업”이라며 “그 어떤 어려운 조건에서도 동요와 비관을 모르는 강한 정신력을 키워주기 위한 사업을 진공(進攻)적으로 벌일 것”을 주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