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ㆍ25 사진전 여는 조지 드레이크

거리에 주저 앉은 아이와 끝없이 이어지는 피란 행렬, 우는 아이를 안아 든 미군…. 조지 F. 드레이크 병장은 6ㆍ25로 폐허가 된 도시와 전쟁 고아의 모습을 그대로 렌즈에 담았다.

“부모 잃은 아이, 굶주린 아이를 볼 때마다 셔터부터 눌렀습니다. 본국에 도와달라는 얘기를 꺼내려면 보여 줄 게 있어야 했거든요.”

한국 고아를 도와달라는 편지에 동봉하려고 찍은 사진만 2천장. 드레이크(76)씨는 자신이 찍은 사진을 한 자리에 모아 14-19일 광주시청에서 ‘GIs and the Kids, A Love Story(미군 병사들과 한국 아이들, 그들의 사랑 이야기)’라는 주제로 전시회를 연다.

드레이크씨는 1952년 10월부터 1953년 12월까지 한국에서 미 육군 정찰병으로 근무했다. 그가 근무하던 326 통신정찰중대는 고아원을 운영해 50명의 고아를 돌봤다. 한국 고아들에게 그는 아버지나 마찬가지였다.

50명의 고아 중 한 명인 조우현씨는 ‘항상 먹을 것을 잔뜩 싣고 오던 사람’으로 드레이크씨를 기억한다.

“드레이크 병장이 오면 우리는 다들 좋아하면서 매달렸습니다. 책임감도 강해서 부대에서 운영하던 고아원이 문을 닫게 되니까 우리를 다른 고아원에 인계해주기까지 했습니다.”

드레이크씨는 2005년 5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첫 사진 전시회를 열었다. 전시회 소식을 전해들은 광주시에서 그를 명예시민으로 추대하겠다는 의사를 전해왔다.

“제가 한 일은 그야말로 일부분에 불과합니다. 6ㆍ25전쟁 기간 미군은 400개의 고아원을 세웠고 5만4천명의 고아를 돌봤습니다. 명예시민장은 저 한 명이 아니라 미군 봉사자 전원에게 줘야합니다.”

그는 최근 한국내 반미 여론에 대해서 “미국 정부에 무조건 찬성하지는 않는다. 이라크 전쟁 반대 시위대를 보면 시위대 속으로 뛰어들고 싶을 때도 있다”라고 말하면서도 미군의 부정적인 모습만 부각되는 듯해 서운하다는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그는 효순ㆍ미선양 사건에 대해서는 “TV에서 수 만명의 시위대가 미군에 사과를 요구하는 장면을 봤다. 분명 비극적인 일이다. 하지만 누구도 미군이 한국에 기여한 바는 말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6ㆍ25전쟁에 참전한 미군으로서 6ㆍ25에 대한 감회도 솔직하게 털어놨다.

“한 한국인이 저보고 살인자라고 하더군요. 사람을 죽였으니 살인자가 맞지요. 하지만 제가 없었으면 한국의 누군가가 살인자가 됐을 겁니다. 제가 한국에서 보낸 시간이 낭비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제가 죽인 사람보다 더 많은 사람들을 구했으니까요.”

드레이크씨는 전역후 남미 지역에서 외교관으로 근무한 뒤 1967년부터 웨스턴 워싱턴 대학 교수로 사회학과 역사학을 가르쳤다./연합

소셜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