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전쟁 당시 북한군에 포로로 억류됐다 풀려난 미국 퇴역군인 2명이 52년만에 ‘포로 석방로’였던 ‘자유의 다리’를 다시 건넜다.
5일 미군 전문지 성조지에 따르면 6.25전 전쟁포로 출신인 호세 히노조사(75)씨와 빌리 브라운(72)씨는 최근 6.25전 참전 이후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 지난 2일 50여년전 북한군에 붙잡혀 고초를 당했던 포로생활을 기억에 떠올리며 당시 포로 석방로였던 경기도 파주시 자유의 다리를 건너는 장면을 재연했다.
1951년 7월 상병 계급으로 비무장지대 인근 ‘펀치볼’지역에서 북한군과 전투를 벌이다 포로가 된 히노조사씨는 포로 억류 25개월만인 1953년 8월 자유의 다리를 통해 들뜬 마음으로 집으로 향하던 당시의 기억을 되살렸다.
이후 베트남전에도 2번씩이나 참전했던 히노조사씨는 “50여년만에 처음 이 곳을 찾았다”며 “마치 당시 북한군 포로에서 석방되는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히노조사씨보다 석 달 뒤인 1951년 10월 포로로 붙잡혀 1953년 8월 역시 자유의 다리를 통해 석방된 브라운씨는 “당시 자유의 다리를 건넌 것은 혹독한 포로생활에서 살아남기 위한 모진 몸부림의 끝이었다”고 회상했다.
브라운씨는 혹독한 포로생활에 대한 아픈 기억으로 불과 10년전까지만 해도 당시의 기억에 대해서는 일체 입밖에 꺼내지 않았다.
그는 “포로가 되자 마자 북한군이 전투화를 포함한 모든 것을 빼앗아 몸에 걸친 것은 얇은 천으로 된 상.하의 뿐이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두 달 뒤부터 눈이 내리기 시작했지만 그해 12월12일 새 옷을 받기 전까지 살을 에는 추위를 견뎌야 했다”며 “내 생에 그런 추위는 처음이었다”고 말을 이었다.
그는 “당시 추위에 살아남기 위해 ‘뜨거운 열에 내 몸이 타고 있다’고 스스로 말을 거는 등 내 자신과 ‘마인드 게임’을 벌였다”고 덧붙였다.
이들이 다시 찾은 자유의 다리는 휴전협정 조인 이후 북한군의 포로가 됐던 국군과 유엔군 1만2천700여명이 석방됐던 통로 역할을 했다./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