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北특수부대 투입, 북한정부 유언비어 가능성”

1980년 ‘5·18광주민주화운동’ 당시 북한 특수부대원들이 투입됐다는 일부 탈북자들의 증언이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가운데 상당수 군(軍) 출신 탈북자들은 강한 의문을 제기하며 “북한 내부에 관련 소문이 있는 것은 맞지만, 추측성 주장은 삼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5·18 당시 중앙당연락소(남파 간첩훈련소) 전투원으로 참가했다고 주장하는 탈북자 김명국 씨와 그를 인터뷰한 이주성 한반도평화국제연합 대표 등은 최근 종합편성채널 인터뷰를 통해 북한 당국의 지령으로 특수부대가 광주 일대에 투입됐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 군 출신 탈북자와 일반 탈북자들의 증언을 종합해보면, ‘5·18  당시 북한 특수부대가 개입했었다’는 소문은 일반 주민들도 알고 있을 정도로 북한 내부에 파다하게 퍼져 있다. 그러나 북한내부에서는 사실관계를 증명할 근거가 확인되지 않고 있다. 오히려 북한당국이 대남공작 성과를 과장하기 위해 루머를 퍼트렸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언론인 출신 탈북자 김경남(가명) 씨는 “1980년대에 특수요원들을 남한에 대량 파견하기 위해 머리를 (남한 대학생처럼) 길게 기르게 했다는 얘기가 있었다”면서 “연락소(특수부대)에 근무했던 친구 형님 역시 여자처럼 머리를 길게 기른 것을 봤는데, 그것은 5.18이 끝나고 남한 대학생들의 머리 모양을 따라해야 한다는 지시 때문”이라고 말했다.

국가안전보위부 출신 탈북자 박춘석(가명) 씨도 “당시 북한군 1개 대대 혹은 1개 연대 규모가 광주로 파견됐다는 이야기가 보위부내에도 파다했고, 대부분 그렇게 알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군 출신 또 다른 탈북자는 “군 출신의 탈북자 중에는 북한군 61저격여대, 62저격여단이 광주에 투입됐다는 얘기를 들어 봤다는 사람들이 많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 씨는 “당시 북한 분위기를 보면, 국가에서 금지하는 내용의 유언비어가 확산되긴 힘든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럴듯한 내용으로 국가의 입장을 대변하는 유언비어는 급속히 확산되는 경향이 있었다”면서 “5·18 관련한 유언비어 역시 그런 유(類)라고 볼 수 있지만 실제로 북한 당국이 특수부대를 남파했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모 탈북자의 주장처럼 광주에서 180여명의 북한군이 전사했다면 현재 2만 5천 명을 헤아리는 국내 입국 탈북자 중에 누군가는 가족이나 친지 관계일 가능성이 높다”면서 “이런 주장의 증언자가 겨우 한 사람이라는 점이나, 이 한 사람 마저도 당당하게 사실을 증언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면 5.18의 진실을 뒤짚을 만한 근거가 부족한 것 아니겠냐”고 강조했다.   

당시 남파 특수부대에 고아 출신이 많았다는 주장에 대해 인민무력부 산하 특수부대 출신 탈북자 박 모씨는 “북한 특수부대원 선발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출신성분’인데, ‘주로 고아들이었다’는 주장은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박 씨는 “재일교포 자녀들을 모아서 해군 특수부대를 만들었다는 얘기는 들어봤지만, 고아를 중심으로 특수부대를 구성했다는 얘기는 금시초문”이라고 덧붙였다. 또한 김명국 씨가 소속부대의 훈련장소라고 묘사한 ‘아동훈련소’도 통상적인 북한 특수부대와는 주둔지역이나 부대 운영방식에서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한편, 김명국 씨는 종편과의 인터뷰에서 중앙당연락소 2처(전투진입하는 1처 신변호위 역할)  파견대장 호위 임무를 맡아 80년 당시 5월 19일 광주에 내려와 지원 활동을 펼치다 사태가 악화되자 그해 6월 5일 휴전선을 통해 귀환했다고 증언했다. 침투한 북한군 규모에 대해서는 “훗날 200명 정도 나왔다(남파)가 거의 다 죽고 살아 돌아온 사람이 17명 정도밖에 안 된다고 파견대장이 말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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