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만에 韓 찾은 英참전용사 “한국 발전 감동”


영국군으로 6.25 전쟁에 참여한 스피크맨 씨는 반 세기 만에 한국을 찾은 12일 “방한(訪韓)을 결정한 가장 중요한 이유는 영국군을 돕던 한국인 수송대원을 찾고 싶어서 입니다”라고 말했다.


정부가 구성한 ‘6.25전쟁 60주년기념사업회’의 초청으로 6.25 전쟁 60주년을 기념해 방한한 참전용사 영국인 윌리엄 스피크먼(83) 씨와 데렉 키니(79) 씨가 이날  잠실롯데호텔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6.25전쟁 이후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한 스피크맨 씨는 이날 “식량, 물, 총탄을 운반하던 한국인 수송대원 없이는 생존할 수 없었다”며 방한을 결정한 가장 큰 이유로 이들과의 재회를 손꼽았다.


그는 “전쟁 당시의 한국은 ‘혼란(chaos)’ 그 자체였고 이 상태를 어떻게 재건할지 모를 정도로 절망적이었다. 하지만 오늘 한국에서 본 것은 믿기 어려울 정도”라며 “한국이 다시 재건을 이룬 것이 매우 감동적이고 한국인들은 역시 대단하다. 1951년 한국에 온 것이 가치 있는 일이었다고 생각한다”고 방한 소감을 밝혔다. 


스피크맨 씨는 6.25전쟁 빅토리아 십자훈장 수훈자 네 명 가운데 유일한 생존자다.


1951년 11월 4일 전쟁 당시 블랙와치 부대(왕실 스코틀랜드 수비대 제1연대)소속 이등병이었던 그는 대규모로 공격해 오는 적진에 수십 차례의 수류탄 공격을 전개해 탈출로를 만드는 등 목숨을 걸고 부대가 안전이 철수하는데 헌신한 용사였다.


그 당시의 상흔으로 스피크맨 씨는 다리와 어깨를 심하게 다쳤고 지금도 다리가 불편해 걸을 때마다 지팡이를 이용하고 있다.


한편, 중, 고등학생인 외손자 2명을 데리고 전쟁 후 두 번째로 한국을 찾은 데릭 키니 씨는 “첫 번째 방문 때는 폐허에 불과했던 한국의 위대한 발전에 감탄했는데 이번에는 한국이 참 아름다운 나라라는 것을 알게 됐다”면 서 “내가 피땀 흘려 지킨 한국을 손주들에게 보여줄 수 있어 기쁘다”고 말했다.


키니 씨는 6.25 전쟁 중 전사한 형의 시신을 찾기 위해 군입대 후 한국전에 자원했다.


그는 임진강 전투의 마지막 날인 1951년 4월 25일 중국 공산군에 포로가 잡힌 뒤 수용소에서 온갖 고문과 잔혹한 심문을 견뎌내고 높은 기상으로 다른 전쟁포로들의 전의와 사기를 불러 일으켰다.


이날 키니 씨는 “형이 평양의 남쪽인 사리원에서 전사한 것으로만 알고 있는데 아직까지도 시신을 찾지 못했다. 형의 이야기만 해도 매우 슬프다”며 눈물을 훔쳤다.


그는 수용소 당시 상황을 묻는 질문에 “그 당시에는 언제나 배고팠고 이나 빈대가 많아서 빈대 잡느라 시간을 많이 보냈다”며 “탈출을 시도하다 붙잡혀 나무 상자 속에 갇혀 있는 등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은 순간이었다”고 회상했다.


키니 씨는 “아직까지도 건물에 들어가거나 사람들이 다가오면 악취가 나고 벌레가 다가오는 것 같은 환상에 시달린다”며 “바로 어제에도 영국 대사가 초청한 행사에 갔는데 블라인드를 닫아 실내가 어두워져 매우 힘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자신을 붙잡고 있던 중국군에 대한 기억 때문에 중국식당에 가면 신경이 곤두서는 느낌을 받는다고 말했다.


이날 함께 동행한 키니 씨의 손자들은 “항상 할아버지가 전쟁 당시 수용소가 얼마나 참혹했는지 말했지만 할아버지에 대해 다룬 책 ‘마지막 한발’이 나오고 이를 읽은 뒤에야 할아버지가 얼마나 뛰어난 영웅이었는지 제대로 알게 됐고 할아버지의 이름을 잇게 된 것이 자랑스럽다”고 전했다.


이들은 20일까지 한국에 머물면서 현충원, 전쟁기념관, 판문점, 부산의 유엔묘지 등을 방문하고 귀국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