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을 맞이하는 北주민들, 어떤 심정일가

한국에서 주민들은 5월을 ‘가정의 달’이라고 한다. 그 의미는 가정이라는 포근한 분위기 속에서 살아 숨쉬는 자신의 존재에 대하여 깊이 생각케 하는 철학의 의미를 담고 있는 듯하다. 사람이 있어 가정이 있고 가정이 있어 국가가 있고 국가가 있어 세계가 있으니 말이다.
또한 만물이 소생하는 봄날과 더불어 산천구경을 떠나고 싶은 신체적 욕망도 용솟음 친다.
그 마음을 달래기라도 하듯 3일 건너 찾아오는 △어린이 날 △어버이 날 △스승의 날 △성년의 날에 어린이들의 손목을 잡고 또는 카네이션을 들고 부모님과 스승을 찾다 보면 사람이 사는 맛을 저절로 느껴 보기도 한다.
남한의 주민들이 가정의 달을 맞으며 삶의 이벤트를 가질 때 북한 주민들은 어떤 심정으로 5월을 맞이할까?

1970년 대 초까지만 해도 북한 주민들이 맞이하는 5월은 상징의 달이었다. ‘5.1절’ 노동자명절이었기 때문이다. 이 날에는 ‘전 세계 노동자들은 단결하라!’는 간판을 내 걸고 체육경기로 들끓었고 그 분위기는 5월이 다 가도록 식을 줄 몰랐다. 북한의 기관 기업소들에서는 체육경기를 한다, 음식을 싸들고 들놀이 간다며 4월부터 주민들의 마음을 들뜨게 하던 달이다.
그러나 오늘에 이르러서 5.1절은 평양시 주민들, 중앙당, 내각 등 중앙의 부서 일꾼들이나 좋은 날이 됐다. 평민들에게는 그리 달갑지 않은 날이다.
70년대 말로 접어들며 북한 주민들 속에서는 5월을 ‘고생의 달’로 불려졌다. 물론 이 말은 주민들 속에서 자연 발생적으로 생겨난 말이다.
5.1절이 지나기 바쁘게 가장 힘겨운 농촌지원에 총동원돼야 하기 때문이다.
북한의 농촌지원은 주민들에게 무조건성의 명령형식이 강조되고 인산인해 동원 방식이 기본 조직수단이다. 따라서 노동당은 김정일의 지시를 인용하여 전당 전국 전민이 농촌지원에 떨쳐나서라고 명령한다. 결국 북한 사회의 4대영향소 (북한의 기관․직장․학교․군(軍)을 일컫는 은어) 들이 총동원된다. 물론 올해부터 가족도급제를 실시하여 농사를 짓는다고 하지만 농사인력이 턱없이 부족한 북한에서는 전체 주민들을 농촌지원에 내몰 수밖에 없다.

– 기관, 기업소의 농촌지원.
북한에서 기관이라 함은 당위원회, 행정위원회, 보위부, 보안부를 비롯한 사무적 업무를 보는 지도기관을 말한다. 지도기관인 만큼 모든 주민들이 농촌지원에 떨쳐나서라 고 하부생산단위들에 외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상급기관으로부터 하달돼는 노력동원 TO 선발 조직도 그들의 선발여하에 달려 있다.
그러나 실천 활동에 들어가서는 상급기관과 생산단위와의 차이는 현저하다. 권력기관은 전당, 전국, 전민이 총동원되야 하는 힘들고 바쁜 날도 요령 것 쉽게 넘긴다는 말이다.
위 기관들에서는 금요노동일이나 일부 지정된 날에 농촌지원에 참가하는 것이 전부다. 하부생산 단위의 근로자들은 농촌에서 집단 숙식으로 12~14시간의 고된 농사일에 강요된다. 당연히 권력기관과 생산단위 근로자들간의 불평등이 생겨난다.
더구나 북한의 농업노동은 기계로 하는 일이 거의 없다. 농사일 하나 하나가 뚝심을 요구하는 수작업뿐이다. 식량배급도 넉넉지 못한데다가 손발이 부르트도록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북한의 농사다. 따라서 주민들은 누구나 공업노동에 비해 굉장히 어렵고 힘든 작업으로 여긴다. 당연히 농촌지원 동원에서 면제 됐으면 하는 바랩들이다.
농촌지원기간에 공장, 기업소들에서는 생산활동을 담당 할 노동자(고급기능공)들을 제외한 나머지 50~60%를 농촌지원에 동원시킨다. 고급기능공의 위치에 있는 노동자들은 다행이지만 여기서 밀려난 노동자들은 농장에서 작업실적의 여하에 따라 노임과 식량을 배급 받게된다. 고된 농사일을 통하여 받는 임금은 저임금에 항상 배고픔에 시달려야 한다. 농촌지원에 동원되면 노역만치를 뿐 노동자들의 생활에는 도저히 도움이 안 된다는 말이다.
그러나 어떻게 하든 생존은 해야하지 않겠는가
결국 일부 노동자들은 농장의 생산물은 물론 공동재산인 비닐박막, 호미와 같은 농쟁기까지 갈취하여 집으로 가져 갈 궁리만 한다.
이것이 자신의 기본생활을 꾸릴 수 있는 수단으로 되기 때문이다.

-대학생, 인민학교, 고등중학교 학생들의 농촌지원.
5월에는 교육기관들도 학업을 중지시킨다.
농촌동원의 주력인 30여만 명의 대학생들과 수백만 명의 고등중학교, 인민학교학생 인력을 동원해야 농사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기간에 대학생들의 노력동원 일수는 70일, 고등중하교 학생들은 30~40일 정도다. 이들은 농촌의 가정집이나 선전실, 탁아 유치원에 집단 숙식을 하면서 벼 모내기, 강냉이 영양단지 옮겨심기 등 각종 농사일을 하게 된다.
인민학교 학생들은 나이가 어리다는 관계로 오전 수업을 마치고 오후 5~6시간, 어느 정도 짧은 시간 동원된다. 9살 10살 나이의 어린이들을 부모의 품에서 떼어 내어 집단 숙식, 노동을 시킨다는 것은 지나친 행위라 생각하는 듯하다.
학생들이 농촌지원에 동원되면 농장원들은 당연히 ‘지도 농민’이 된다.
그들이 학생들을 데리고 다니며 농사일을 시킨다는 말이다.
학생들을 농촌동원에 내 몰았으니 그들이 농사일을 열심히 하도록 자극하는 것이 중요하다. 따라서 ‘사회주의 경쟁’이라는 인센티브를 적용한다. 이를 본질적으로 보면 개인과 개인사이의 경쟁, 집단과 집단사이의 노력경쟁으로 노동의욕을 조성하되 어디까지나 개인도급제를 실시한다는 말이다. 따라서 그 날 맡겨진 일을 끝마치지 못하면 안 된다. 또한 포기농사로 일컫는 ‘주체농법의 규정’을 어기면 안 된다. 양적 과제와 질적 과제를 그 대로 수행해야 한다. 만약 그 날 도급과제를 마치지 못하면 집단적인 비판 또는 자아 비판이 따른다. 남한 식으로 말하면 ‘집단 왕따, 개별 왕따’를 시킨다는 말이다.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집행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다고 학생들은 농촌지원에 장기간 동원되어 일해도 노동력에 따르는 금전적 대가가 있는 것도 아니다.
의무교육에 따른 무보수 노동인 격이다.

-인민군대의 농촌지원.
학생들 다음 가는 주력은 인민군대 동원이다. 북한의 인민군대가 117만에 달한다고 하지만 농촌지원에 동원돼는 인력은 그 일부다.
협동농장 주변의 군부대 병력 일부를 동원시켜 농장을 돕는다는 것이다.
그 어느 나라든 군대가 국민들의 어려운 경제활동을 돕는 다는 것은 상식으로 통하지만 북한은 인민군대가 농장을 지원하는 것을 가장 큰 정치선전으로 떠든다.
김정일 장군님을 최고 사령관으로 모신 인민군대가 농촌을 적국 지원한다고 말이다. 이것이 곧 김정일 장군님의 군민일치(軍民一致) 사상을 실현해 나가는 표본이라고 말이다.
그러나 농촌지원에 동원된 개별적 군인들은 해방감에 도취된다. 잠시나마 고달픈 병영생활에서 벗어난다는 의식과 자급 자력으로 굶주림을 해소 할 기회를 가져본다는 기쁨이다.
그 자급 자력이라는 것은 낮에는 협동농장 일을 하다가도 밤이면 도적으로 변하여 탈곡장, 남새(채소)밭 등 먹을 것이 있는 터전을 습격(도둑질)하여 굶주린 배를 채울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협동농장의 관리일꾼들은 당의 지시에 의하여 어쩔 수 없이 군인들의 도움을 받지만 군인들보다는 일시키기 쉽고 사회 물정을 모르는 학생노력을 선호한다.

그러나 위와 같은 노력동원체계도 식량난 이후에는 무너져 가고 있다.
배급체계가 붕괴되면서 지원자들을 먹일 수 있는 농장이라야 인력을 배정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94년까지는 학생들이나 노동자들은 농촌지원 기간동안 거주지의 식량배급이 정지되고 협동농장에서 배급권이 넘어갔다. 하지만 배급이 중단된 후 농장에서는 거주지로부터 배급권을 넘겨받지도 못한 채 지원자들의 식량을 떠맡게 됐다. 이 때문에 지원자들에게 줄 식량이 없으면 지원 노력을 쓸 수가 없게 됐다.
대부분의 협동농장들에서는 농사가 되지 않은 관계로 식량을 준비 할 수가 없다. 결국 학생들과 노동자들이 동원돼도 굶주림으로 일을 하지 못한다.
따라서 명령 속에서 살고 죽는 군대를 농사일에 동원시킬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또한 인민군대도 역시 무임금, 잉여노동을 강요할 수 있는 편리성 때문이다.

오늘 북한의 선군정치는 외부의 적보다도 파괴된 경제, 피폐된 주민들의 사상정신을 군대의 힘으로 정리하고 독재체제의 정상봉이였던 1980년대로 되돌려 보려는 복고주의의 사고에서 비롯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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