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년 전 납북된 아들, 죽기 전 한번만이라도…” 80대 老母의 호소

전후납북피해자가족연합회, 정부에 납북자 해결을 위한 남북 회담 요구

1972년 납북된 오대양호 선원들이 1974년 북한 묘향산에서 찍은 사진. / 사진=전후납북자피해가족연합회 제공

납북 피해자 가족들이 납북자들의 생사를 확인하고 만남을 요구하는 서한을 문재인 대통령에게 전달했다.

전후납북자피해가족연합회는 29일 청와대 분수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가 북한과 납북자 문제 해결을 위한 회담에 적극적으로 나서달라”고 요청했다.

1977년 8월 11일 전남 홍대해수욕장에서 북한 공작원들에게 납치된 것으로 알려진 이민교(당시 17세) 씨의 어머니 김태옥(88세) 씨는 문재인 대통령에게 보내는 서한에서 “수학 여행을 보낸 것도 어미의 죄요, 그래서 북에 납치된 것도 어미의 죄”라며 “죽기 전에 아들 얼굴 한번만 보게 해달라”고 호소했다.

김 씨는 그러면서 “평양에서 가족을 이루고 산다니 다행이지만 살아있다는 것을 직접 확인받고 싶다”고 밝혔다.

납북자는 한국전쟁 중 민간인이 북한에 의해 납치된 전시 납북자와 정전협정 체결 이후 북한에 의해 납치된 전후 납북자로 구분된다. 전후 납북자는 1950년대 중반부터 1970년대에 집중적으로 발생했는데 납북자 대부분은 어부였고, 고등학생 5명도 포함돼 있었다.

통일부 자료에 따르면 1953년 7월 정전협정 체결 이후 2000년까지 북한에 피랍된 민간인은 총 3,835명이며 이중 3,319명이 귀환했다. 정부는 2000년까지 북한에 억류돼 있는 전후 납북자를 516명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2010년대에 들어 납북 및 억류 중인 우리 국민 7명인 것으로 전해진다.

전후납북피해자가족연합회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일본인 납북 피해자 메구미 씨의 남편인 한국인 납북자 김영남 씨가 지난 2006년 이산가족 상봉에서 어머니 최계월 씨를 만난 것처럼 납북자들을 직접 만나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정부는 남북 장관급회담이나 적십자 회담 등을 통해 납북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협의를 시도해왔다. 지난 2000년 제1차 남북적십자회담에서 정부는 “6,25전쟁시기 및 전쟁이후 본인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상대 측에 남아있는 사람들”의 생사 및 주소 확인을 넓은 의미의 이산가족 문제 해결 차원에서의 추진을 제의했다. 그러나 북한은 “본인의 의사에 반해 북한에 남아있는 사람은 없다”면서 납북자 송환 요구 철회를 요구했다.

1차 남북적십자 회담에서 납북자 문제에 대한 논의가 무산된 후 2002년 제4차 남북적십자회담에서 북측이 “지난 전쟁 시기 소식을 알 수 없게 된 자”들에 대한 생사 및 주소 확인 문제를 협의할 용의가 있다고 표명한 바 있다.

그러나 북한은 “납북자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지속하고 있다. 납북 사실을 인정할 경우 가해국으로서 국제사회의 비난을 피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에 따른 책임을 져야하는 상황이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에 현재까지 납북자 문제에 대한 진전을 이루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반면 일본의 경우 북일 회담의 1순위 논의 주제를 납북자 문제로 두고 지속적으로 북한에 납북자 송환을 요구하고 있으며 국제사회에도 끊임없이 납북자 문제를 알리는 활동을 벌여왔다. 그 결과 2002년 당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은 고이즈미 준이치 일본 총리가 평양을 방문했을 때 일본인 납치 사실을 시인하고 사과했으며 적십자를 통해 일본인 행방불명자에 대한 생사를 확인해주기도 했다.

현재도 일본 정부는 납북자 문제 해결을 위해 적극적 행보를 보이고 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지난 27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방일 시 일본인 납북자 피해 가족들과의 면담 자리를 마련해 가족들의 의견을 청취하고 “무엇보다 중요한 납치 문제의 빠른 해결을 위해 내가 김정은 위원장과 직접 만나겠다”고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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