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5문화회관 안내원들에 군복 입힌 김정각, 그의 진짜 속셈은?

[북한 비화] ‘선군’ 강조하던 김정일에게 ‘2·10 제의서’ 올려 군 엘리트들 고충 해결

425문화회관
평양 4·25 문화회관. / 사진=노동신문/뉴스1

김정일의 ‘선군’(先軍) 기조가 정점을 찍던 2008년. 북한 당국은 고등중학교(우리의 고등학교)를 졸업한 당·정·군 상위 1% 간부 자식들이 곧바로 대학에 갈 수 없도록 하는 내적 방침을 내렸다. 상위 1% 간부의 자식들은 고등중학교 졸업 이후 무조건 몇 해 동안 군사복무나 사회노동 생활을 해야만 발전의 기회가 주어졌다. 약 3년 이상 군과 사회에서 말단의 현실을 경험해야만 당의 책임일꾼으로 거듭날 수 있다는 게 당시 김정일의 지침이었다.

이에 군 수뇌부들과 상위 1% 군 관료들은 자녀들을 하부 말단 부대에 보내지 않으면서도 군사복무 경력을 갖추고 입당까지도 할 수 있는, 말 그대로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기 위한 은밀하고도 계획적인 체계 변화 시스템을 실행시킨다.

군 관료들과 엘리트들은 금쪽같은 자식들을 현역 군이나 사회노동 현장에 내보내는 것이 너무도 싫었지만, 그렇다고 최고지도자인 김정일의 지침에 반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식들을 위해 편제(編制)를 개편해서라도 김정일의 내적 지시를 피해가기 위한 꾀를 부렸다.

이런 상류층의 속내를 미리 간파한 김정각은 북한 인민군 총정치국 제1부국장으로 승진한 이듬해인 2008년 2월, 김정일에게 4·25문화회관 사민 종업원이던 여성 안내원들을 모두 군 편제로 편입하겠다는 이른바 ‘2월 10일 제의서’를 올려 비준을 받는다.

김정각이 지금껏 특별한 실각 없이 평탄하게 보낼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핵심 엘리트층의 고충을 제때 알아차리고, 편제 개편 제의서 비준과 실제 집행에 성공했기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평양시 모란봉구역 전우동에 자리 잡고 있는 4·25문화회관은 3층 규모의 건물로, 내부에 1100석짜리 소극장과 제7차 당 대회 등 대규모 행사를 진행할 수 있는 6000석짜리 대극장을 갖춘 군 총정치국 선전선동부 산하 단위이다.

김정각은 당시 김정일에게 올린 제의서에 ‘4·25문화회관은 조선인민군 총정치국 선전선동부 산하 단체로서 중요한 인민군대 행사들이 진행되는 단위의 특성으로 볼 때 극장 안내원 전원을 군복 체계로 만들어야 한다’면서 편제 개편 필요성에 의미를 부각했다.

김정일의 비준 하에 김정각은 총정치국 간부부(군관 인사 담당), 대열보충국 초모부(하전사 및 초기복무사관 입대 담당), 후방국 피복부 등 연관부문들에 필요한 준비서류와 집행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해2009년 3월부터 4·25문화회관 극장안내부를 하루아침에 군 조직으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이로 인해 나이가 들었거나 토대(출신성분)가 걸리는 사민 안내원들이 회관에서 나가게 됐고, 그렇게 발생한 자리 공백에는 군 관료나 엘리트의 자식들과 친척들이 스리슬쩍 들어와 앉았다. 집에서 출퇴근하며 군 복무도 하고, 후에 입당도 할 수 있는 안성맞춤의 자리였던 것이다.

4·25문화회관에서 안내원으로 근무하게 된 군 관료들과 엘리트의 자식들은 초급병사가 아닌 초기상사 또는 소위의 군사칭호를 부여받았고, 1개월간의 제식훈련 및 군사규정 단기강습을 받는 것으로 형식적인 절차만 거친 뒤 군 조직으로 슬며시 편입됐다.

극장안내부에는 3개 작업반이 있는데 1, 2층을 담당한 2개 작업반 성원에게는 인민군 ‘초기상사’ 군사칭호를, 간부대기실 담당 작업반 성원들에게는 ‘소위’의 군사칭호를 주었다.

그런데 사민이었던 4·25문화회관 극장안내부장만은 회관에 남겨졌으며, 심지어 그에게는 소좌(소령급)의 군사칭호가 부여됐다. 그는 11과 대상인 대남연락소 공작원 출신으로, 공화국영웅 칭호까지 받은 남파간첩의 부인이었다.

김정각이 상위 1% 군 관료와 엘리트의 자식들을 위해 군 편제로 바꾼 4·25문화회관은 이후 안내원들의 세대교체가 이뤄지면서 권력 유착의 산물로 자리 잡았다. 실제 2010년 초반에는 4·25문화회관의 안내원으로 입대하는 데 1인 1000달러, 입당하는 데 1인 1600달러로 거래 가격이 형성됐다.

4·25문화회관 극장안내부장은 이러한 뒷돈을 받아 군 최고위 간부에게 70%를 주고, 나머지는 본인이 챙기는 식으로 돈벌이를 했다. 뒷돈은 뒷돈대로 챙기고, 공급은 공급대로 받는 안내부장 자리는 지금도 권력을 등에 업고 호가호위(狐假虎威, 여우가 호랑이의 위세를 빌려 호기를 부린다는 뜻)하는 선망의 자리로 여겨진다.

SOURCE[북한 비화➆] ‘선군’ 강조하던 김정일에게 ‘2·10 제의서’ 올려 군 엘리트들 고충 해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