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6! 우리 초심으로 돌아가자”

386! 그대는 초심을 기억하는가!

광주의 아픔을 가슴에 담아내며 파르르 떨리던 그 초심을 기억하는가?
신새벽 뒷골목에 민주주의를 새겨넣을 때 맥박치던 그 초심을 기억하는가?

부모님 생각에 눈물 흘리던 후배의 등을 쓸어주며 조용히 이슬 맺히던 그 초심을 그대는 정녕 기억하는가?

우리는 빛나는 젊음이었다.

민주화라는 시대의 과제를 고뇌와 결단속에 짊어지고 가던 우리는 참으로 아름다운 청년이었다. 산업화, 근대화를 위해 불철주야 내달리던 아버지 세대만큼이나 우리는 희망찬 미래였다.

그리고 한 세대가 흐르고 있다.
새파랗던 젊음이 희끗한 중년이 되어가는 지금 우리는, 우리의 초심에 정직한가?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수백만명이 굶어죽고, 수십만의 사람이 ‘공포’라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유랑생활을 하고 있다. 십수만이 정치범수용소에서 짐승처럼 죽음을 기다리고 있으며, 이천만 대다수가 생존 자체를 위해 필사의 전투를 벌이고 있다.

사상과 표현의 자유,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 거주이전-여행의 자유, 신체의 자유, 법 앞에 평등, 이 모든 것으로서의 인권이 철저히 말살된 사회가 지척의 거리에서 존재한다.

양심을 가진 전 세계인들이 북한주민의 인권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자유주의자이건, 사회민주주의자이건, 공산주의자이건, 휴머니스트이건 이념과 지역을 초월하여 북한주민의 인간됨을 위해 각개의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그런데 오직 유일하게 북한인권개선에 역행하여 반대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유엔의 대북인권결의안, 미국의 인권법안을 반대하는 서명운동을 전개하고, 결의안 상정을 유보시키고 급기야 기권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 사람들은 면면이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푸른 초심의 대명사들이다.

그 이유라는 것이 놀랍다. 우리가 민주화를 요구할 때 거대한 벽에서 울려나오는 소리와 어찌 그리 똑같은가.

“북한인권개선 요구가 수구우파 주장과 같다”(=민주화 주장이 김일성 말과 같다).
“김정일을 자극하면 전쟁이 날 우려가 있다”(=혼란을 틈타 김일성이 재침할 것이다).
“북한민주화와 인권은 북한내부의 문제인데 왜 개입하려는가(=왜 다른 나라와 다른 나라 사람들이 한국인권에 신경쓰고 압력을 가하는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가? 말도 안되고, 일관되지도 않으며, 우리가 과거에 그토록 비분강개했던 논리를 왜 재탕하고 있는가?

왜 독재자 김정일을 감싸는가?

우리세대와 우리세대의 대명사들은 언제부터인가 김정일의 극악한 독재를 감싸주고, 해명하는 데 급급하고 있다. 인권과 민주주의를 지고지순의 가치로 삼았던 우리의 초심은 저자거리에 쪽박처럼 나뒹굴기 시작했다.

최소한 가족 전체의 목숨을 걸고 평양 뒷골목에 민주주의를 새기고 있을 어떤 이의 눈에 우리의 모습은 침묵하는 나약함이 아니라 행동하는 사악함으로 비춰지고 있다.
비극이고 슬픔이다. 우리의 초심과 양립할 수 없는 행동하는 사악함!

DailyNK를 통해 하나씩 그 원인을 추적해 보고 싶다.
아프지만 반드시 걸어야 할 이 여행에 동반자가 무척이나 그립다.

최홍재 논설위원 chj@dailyn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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