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수경 민주통합당 의원의 탈북자 비하 발언 파문이 일파만파 확산되면서 386운동권 세력의 남·북한 사회인식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일고 있다. 특히 1980년대 사회적 인식과 從北·親北 성향을 현재까지 버리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임 의원은 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폭압체제를 피해 자유를 찾아온 탈북자들을 변절자라고 매도했고, 북한의 실상을 깨닫고 북한인권 운동에 매진하고 있는 과거의 동지에게도 ‘변절자’라고 낙인을 찍었다. 취중진담이라고 했던가. 임의원의 발언은 한 개인의 단순한 ‘주폭(酒暴)’로 보이지 않는다.
데일리NK는 5일 과거 이들과 함께 전대협·한총련 활동을 주도했던 허현준(사진) 시대정신 사무국장과 인터뷰를 통해 임 의원을 비롯한 민족해방(NL) 계열 386운동권 출신 세력이 이같은 문제를 보이는 이유에 대해 짚어 봤다.
허 국장은 “자신들이(임 의원을 비롯한 NL계 386운동권) 동경하던 체제서 탈출해 목소리를 높이는 탈북자들이 반가울리 없었을 것”이라면서 임 의원의 탈북자에 대한 인식은 386운동권 출신들의 정치·이념적 구태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이러한 인식은 김일성주의와 민족주의적 감정, 남한 기득권 체제에 대한 증오에서부터 출발됐다”면서 “김일성주의에서 벗어난 사람들도 민족주의적 감정과 한국 사회에 대한 증오가 작동해 북한 체제를 비판하는 것에 소극적이거나 반감을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과거 동지였던 하태경 새누리당 의원에게 ‘배신자’라고 비난한 것도 이른바 ‘진영논리’로 설명했다. 허 사무국장은 “자신들의 낡은 이념과 지향의 모순을 방어하고 비판세력을 대중으로부터 고립시키기 위해 펴는 억지 논리”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그는 386운동권 세력이 김일성주의 등 낡은 이념적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면 한국사회 발전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허현준 시대정신 사무국장 인터뷰 전문]
-386운동권 세력의 현재 정치성향은?
=8,90년대 386운동권은 이념적으로 김일성주의와 마르크스주의를 기반으로, 반미·반독재·반자본주의 운동노선을 걸었다. 이후 2000년대 들어서서 이들 세력은 김일성주의에서 벗어났지만 여전히 북한 체제를 연대세력으로 보는 친북적 성향의 세력과 경기동부연합, 민족민주혁명당 재건파로 대변되는 골수 종북세력으로 분화됐다. 정치권에 진출한 386은 햇볕정책을 기반으로 한 친북적 성향을 보였다.
운동영역에서 벗어난 386은 북한의 인권유린 등에 비판적 성향이 많이 확산돼 있다. 극단적 반미나 폭력주의에도 비판적이다. 하지만 과거 이념적 성향을 완전히 극복하지 못하는 경향을 보이기도 한다. 이들은 종북·친북에서 벗어나 합리적 성향으로 변모해 비판할 때는 비판하고 있지만 여전히 북한 체제와 교류와 협력은 계속 이어가야 한다는 시각을 가지고 있다.
-탈북자들에 대한 적개심은 왜?
=본질적으로 386세력은 오랜 기간 김일성주의를 자기 이념으로 했고, 북한 사회주의 체제를 사회발전의 기본 모델로 여기면서, 민족·통일문제를 중요시했다. 특히 민족적 갈등이 격동하던 시대에 학생운동을 해왔기 때문에 체제문제보다는 민족적 판단을 우선했고, 김일성주의와 민족적 감정이 혼합돼 민주주의, 인권적 원칙을 일차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북한에 대한 동정심, 민족주의적 생각, 김일성주의가 북한을 보는데 있어서 더 중요한 관점으로 여긴다.
때문에 북한 체제의 문제를 좋은 방향, 온정적으로 생각하고 북한 체제가 자립적으로 직면한 문제를 풀 수 있다고 이해해 왔다. 반면 남한 사회에 대해서는 반독재와 반자본주의에 대해 분노와 증오를 앞세워 비판하려는 경향이 강했다.
따라서 북한을 버리고 그동안 증오, 비판해왔던 남한의 자본주의 국가체제에 정착한 것은 자기들이 저항했던 세력에 복종하는 것으로 본다. 결국 자신들이 지지해온 것에 대한 배신으로 여기는 것이다. 386운동권들은 마음속에서는 조국 북한에 열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조국을 등지고 나온 그들을 배신자, 배반자라고 생각한다.
-이같은 인식의 출발점은 어디라고 생각하는가?
=김일성주의, 민주주의와 인권의 시각이 아닌 민족주의적 감정, 남한 체제에 대한 증오가 출발점이다. 김일성주의에서 벗어난 사람들도 민족주의적 감정과 한국 사회에 대한 증오가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들의 정치적 기반의 무너지는 것을 우려해 극단적인 반응을 보인다는 시각도 있다.
=당연하다. 오랫동안 쌓아왔던 정치, 사회, 이념적 운동에 결함이 있다는 것을 탈북자들이 증언을 통해 알리는 것에 위기의식을 느끼는 것 같다. (북한 체제가) 극단적 폭압정치에 기댄 가혹한 체제라는 현실을 부정하고 오히려 동정, 옹호하며 살아야 하는데 그 체제를 살았던 사람들이 탈북해 낱낱이 밝히니까 부담될 수밖에 없다.
정치·이념적 활동의 정당성이 흔들리는 것이 가장 뼈아플 것이다. 또한 정당과 시민사회 영역에서 누려왔던 그동안의 정치·경제·상징적 기득권의 기반이 무너지는 것과 동시에 대중적 신뢰가 무너지고 자신들이 걸어왔던 운동노선의 붕괴할 수 있다는 우려에 따른 심리적 박탈감이 작동한 것 같다. 여기에 그들의 미래에 대한 불암감도 작용하고 있다. 정치적 집권을 통해 연방제통일을 이룬다는 목표를 가졌는데 (탈북자 등의 증언으로) 북한은 붕괴돼야 하는 체제라는 정당성이 확보되면 자신들의 미래에 대한 불안이 작용하는 것이다.
-북한인권운동가 등 전향 386운동권에 극단적 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자기들이 걸어왔던 길에 함께 서 있던 사람이 비밀의 판도라를 열어 과거의 관행과 낡은 이념에서 벗어나 새로운 것에 대해 검증하려고 하니 두려울 수밖에 없다. 때문에 낡은 이념과 노선을 지키려는 사람은 공격자들의 팔과 다리를 쓰지 못하도록 방어적 기재를 써야 한다. 새로운 것에 대한 논쟁에 불리하다고 보고, 인신공격으로 사회에 통용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특히 민혁당 재건파와 경기동부연합과 같은 종북 지하세력은 이같은 논리를 97,8년부터 일관되게 펴 왔다. 이들은 자신들의 지하조직을 통해 일사분란하게 퍼뜨렸는데 북한인권운동가 등 전향386세력의 이념적 정당성에 흠집을 내기 위해 펼쳤던 것이 바로 ‘배신자론’ ‘변절자론’이었다. 이는 자신들의 조직과 노선을 지키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었다. 김영환 북한민주화네트워크 연구위원 등을 배신자, 변절자라고 매도하면서 이탈할 수 있는 동료들을 단속하고, 동시에 대중적으로 이들에 대한 나쁜 인식을 심어주는 효과를 노렸던 것이다.
-좌파 386운동권 내에서도 합리적인 목소리가 있을법한데.
=물론 그렇다. 하지만 그들의 목소리는 집단화되지 못했다. 만약 북한민주화 운동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김정일 체제를 정면으로 비판하면 내부에서 배척되는 일종의 ‘왕따 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 배신자, 변절자 논리를 펴는 것도 이탈자를 막기 위해서다. 소수의 목소리가 드러나지 않는 것도 내부에서 배신자, 수정주의자, 개량주의자라는 공격을 받아 그들 세력에서 퇴출되는 것을 우려해 개개인이 그런 뜻이 있어도 말하지 못한다.
-좌파 386세력이 추구하는 궁극적 목표는 무엇인가?
=이들은 한국사회를 자본주의 체제로 보고 이를 뛰어 넘어 사회주의 모델에 가까운 체제로 가겠다는 것이고, 북한을 중심으로 한 연방제통일을 이루겠다는 것이다. 다만 소수의 좌파 운동권들은 북한 중심의 연방제통일을 반대한다. 과거 민주노동당의 분당 역사가 바로 소수 좌파 운동권과 종북 운동세력의 대립으로 볼 수 있다.
-386세력의 정치·사회적 위상으로 볼 때 이들의 낡은 사상적 잔재가 한국 사회에 끼칠 영향이 우려되는데.
=2000년대 들어서서 사회 각계각층의 의사결정의 중심에 서게 됐다. 결국 그들 386세력의 지향이 의사결정 방향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정치적으로는 이인영, 임종석 등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세력은 10여 년 전부터 민주통합당의 주류로 자리 잡았고, 이제는 다수가 돼 향후 5년 내에 당권을 장악할 것으로 예상된다. 통합진보당은 경기동부연합 등 이미 이들 세력이 모든 권력을 장악하고 있다.
이미 정치권의 무게추가 386운동권 출신들에게 기울었고, 집권을 목표로 하는 세력이 돼 있다. 때문에 이들이 과거 80년대 이념적 기반을 여전히 유지하는 것은 우리 사회에 불행한 일이다. 김일성주의, 반자본주의 관념이 지식혁명 등 문명적 변화가 있었던 30년의 세월을 넘어 이 사회를 이끄는 주요 이념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386운동권 세력에 바라는 것은?
=김일성주의, 친북적 경향에서 벗어나 민주주의와 보편적 인권에 대한 가치를 기준으로 북한 사회를 바라봐야 한다. 이들의 북한 사회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어떤 식으로 전개되는지에 따라 민주당과 통진당의 지향과 대북정책에도 큰 변화가 있고, 남북관계도 북한에 끌려가는 것에서 주도하는 방향으로 전개될 수 있다.
또한 한국사회를 계급이나 민족적 시각이 아니라 글로벌, 문명사적 시각으로 봐야 한다. 그것이 보다 발전된 선진사회의 기틀을 만들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세계사적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어렵다. 오히려 분열과 갈등을 계속 일으킬 수 있다. 그들이 낡은 이념에 사로잡혀 계속 사회 분열을 일으킨다면 엄청난 사회비용을 낭비하게 된다.
386세대는 한국사회의 변화를 주도해왔다. 그런데 지난 10여 년은 오히려 변화를 가로막는 역할을 했다. 객관적 현실(북한의 인권, 탈북자 북송 등)에서 눈 감지 말고 그들이 가졌던 양심과 민주적 원칙을 기준으로 현실을 직시하고 세상의 변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낡은 관행과 이념에 얽매이지 않아야 시대를 역행하는 과오를 범하지 않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