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봉기 김형직 주도…유관순 누군지 몰라”

제94주년 3·1절을 맞아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기념행사에 참석해 만세삼창을 외치고 국민들은 태극기를 게양하며 기념하고 있지만 북한에서는 공휴일로 지정되지 않고 평양을 제외하고는 기념행사도 열리지 않아 주민들은 3·1절에 대한 별다른 인식 없이 하루를 보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1일 혜산소식통은 “여기(북한)는 ‘3·1인민봉기’가 국가적 명절(기념일)이 아니기 때문에 휴식이나 기념행사도 없다”면서 “주민들은 ‘실패한 항일운동’이라는 역사적 평가를 가지고 있지만 이를 기념해야 한다는 생각은 거의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소식통은 또 “오후 늦게 TV를 통해 평양 중앙기관 일꾼들이 참가한 ‘기념 보고회’가 방영될 예정”이라며 “이 장면을 보고서야 ‘3·1운동이 일어난 날’이라는 생각이 들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전기 사정으로 TV를 보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냥 지나치고 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한 이화학당 학생 신분으로 3.1운동을 주도하다 옥사한 유관순 열사에 대해 아느냐고 묻자 “그런 사람이 있었나? 누군지 모른다”고만 답했다. 탈북자들에 따르면, 북한은 3·1운동의 대표 인물로 알려진 유관순 열사에 대해서 거의 알리지 않았다. 다만, 지난해 7월 주민들의 접근이 불가능한 대남선전용 인터넷 사이트에서 유관순 열사의 이름을 빌려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추진을 비난한 적이 있다.  


북한의 역사 교과서는 “3·1 인민봉기는 일제 식민지 통치에 분노한 우리 인민이 총궐기한 거족적인 민족항쟁이며 일제 통치에 심대한 타격을 줬다”고 설명하고 있지만 그 주도세력과 교훈에 대해서는 김일성 가계 우상화를 위해 왜곡한 흔적이 뚜렷하다.


북한은 3·1운동이 1917년 10월 김형직의 지도하에 조직된 ‘조선국민회’ 회원들의 주도로 전개됐다고 주장한다. 또한 김형직이 1918년 ‘조선국민회’ 사건으로 체포돼 시위에 참가하지 못했지만, 감옥에서 3·1운동 실패 원인을 분석해 공산주의 운동으로 방향전환을 결심했다고 말한다.


북한은 1960년대 중반 ‘김일성동지 혁명력사연구실’을 전국 도처에 설립해 김일성의 가계와 유년시절, 빨치산활동과 해방 후 사회주의 건설’ 업적을 선전해왔는데, 여기서도 3·1운동과 6·10만세운동은 현명한 수령의 지도를 받지 못한 우발적인 운동으로 비판하고 있다. 


소식통은 “항일운동은 김일성 수령님 빨치산 투쟁 외에는 별다른 의미가 없다고 보기 때문에 3·1봉기도 갈수록 개념 자체가 없어지는 분위기”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