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중 멍에’ 탈북자

과거에는 ‘영웅’으로 대접받던 탈북자들이 최근에는 ‘국제 난민’으로 전락했다.

여기에 가족과 생이별한 ‘현대판 이산가족’으로 고통을 온몸으로 떠안고 낯선 타국을 헤매거나 다행이 한국에 입국했다 하더라도 새 삶을 개척하는 ‘탈북자’으로 힘겨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는 이들에 대해 점점 관심과 애정이 식어가고 있는 가운데 탈북자 집단은 다양한 정치·사회적 문제를 잉태하고 있다.

또한 재외 탈북자들은 인도주의적 차원이나 인권문제, 정치적 득실 등을 고려한 국제적인 이슈로 떠오르면서 탈북자 문제는 더 이상 ‘대한민국 영토’내 문제가 아닌 국제 문제로 탈바꿈하고 있다.

◆’영웅’에서 ‘국제 난민’으로 = 1990년대 중반까지 탈북자들은 남북 간 첨예한 대립구도 속에서 체제 우월성을 입증하는 하나의 상징에다 희소가치까지 가미돼 `귀순용사’등으로 ‘특별대우’를 받았다.

그러나 냉전구도가 깨지면서 남한에 북한에 대해 우호적인 분위기가 형성되고, 탈북자수도 급증하면서 이들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1995년대 북한의 대홍수 이후 ‘고난의 행군’이 시작된 이후부터 늘기 시작한 탈북자들은 1990년대 중반까지 국내 입국자만 연간 두 자리 숫자를 보였으나 1998년부터는 세 자릿수로 늘었고 2002년부터는 천명을 넘어서 지난 6월까지는 8천541명에 달했다.

내년 상반기 중에는 입국 탈북자수가 1만명을 넘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사선을 넘은 탈북 이후 한국에 입국해 남한땅에서 새로운 삶의 터전을 가꿔가는 새터민 이외에 북한에서 나와 중국 등에 머물며 아직 국내로 들어오지 못한 탈북자도 5만∼10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대북인권 단체인 ‘좋은 벗들’은 1999년 탈북자들이 가장 많은 시기에 중국에만 30만명에 달했으나 지난해 중국 동북3성에 대한 표본조사와 올해 보충조사 결과, 10만명 가량이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고 밝혔다.

정부 당국은 수만명에서 5만명 가량으로 잠정 추산하고 있다.

이승용 좋은 벗들 평화인권부장은 “중국 정부의 감시와 체포, 북중 국경 감시강화 등에다 지난 7월 대규모 수해 이전까지는 북한 내 식량으로 인한 난민사태가 다소 진정돼 절정기에 비해서는 탈북난민 규모가 훨씬 줄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그러나 “탈북 난민들이 감시를 피해 조선족 거주지에서 내지의 한족 거주지로 이동하고 있다”면서 “이 과정에서 탈북여성들이 수난을 겪고 있고 인권을 침해받는 경우도 상당수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말했다.

또한 탈북자들의 국내 진입과정이 ‘탈북→중국 등 제3국 →한국’으로 고착된데다 중국을 비롯한 태국, 베트남, 몽골 등 제3국 경유기간이 늘면서 불법체류자로서 외국인노동자 이하의 취급을 받고 있다.

이들의 신병 인도나 정착지 안내 등과 관련해서도 한국과 북한, 중국, 러시아, 일본, 몽골, 태국, 베트남 등 동아시아 인접 국가들이 관련되기 때문에 국제적 정치·외교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구조로 흘러가고 있다.

◆현대판 ‘기아’ 이산가족 = 탈북자들은 6.25전쟁 이전이나 피난과정에서 가족과 헤어진 이산가족에 이어 새로운 이산가족 집단을 형성하고 있다.

전란을 피해 고향을 등진 이들을 ‘전쟁 이산가족’이라고 한다면 최근 탈북자들은 배고픔을 벗어나기 위해 삶의 터전을 버리는 과정에서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진 경우라서 ‘기아(飢餓) 이산가족’으로 분류되고 있다.

전시 이산가족이 분단의 장벽에 생사 확인도 못한 채 오랜 세월을 보내왔지만 이들은 생사는 물론 브로커를 통한 전화연락까지 하면서 북한에 남긴 가족들과 재회의 날을 학수고대하고 있는 ‘특이 이산’형태를 보이고 있다.

이미 체제경쟁이 의미가 없어졌을 정도로 남북 간 경제적 격차가 벌어진 상황에서 북한을 떠나온 탈북자들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지런히 돈을 벌어 아직도 굶주림에 허덕이는 남은 가족을 ‘구출하는’ 형국이 벌어지고 있다.

탈북자 지원단체 고위 간부는 “최근 탈북해 한국에 입국하는 사람들 대다수는 중국에 있을 때부터 돈을 벌어 북한에 남겨둔 가족에게 보내던 사람들”이라며 “남한에서 정착하면서도 돈을 모아 북한에 있는 가족을 데려오기 위해 하루하루를 노심초사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하지만 북한은 이들을 ‘조국을 버린 배신자’나 ‘도피한 범죄자’ 정도로 규정해 남북 간 의제로 탈북자 문제를 거론하는 것 자체를 반대하고 있으며, 남한 당국도 동포애적 대응책을 강구하고 있긴 하지만 남북관계를 고려해 적극적인 대화에 나서지는 않고 있다.

◆남한 사회 정착 힘겨운 탈북자 = 북한 이탈주민으로서 일단 성공한 것으로 볼 수 있는 한국 입국 탈북자들도 한국 사회에 정착하기는 녹록지 않다.

북한에서 뛰쳐나온 뒤 새로운 정착지를 찾기까지 갖은 고생 속에서 인권을 짓밟히기 일쑤인 탈북자들은 한국에서 여전히 새로운 터전에서 제대로 뿌리내리지 못하는 실정이다.

탈북자단체인 숭의동지회가 서울대행정대학원과 월간중앙의 요청을 받아 지난 7월 탈북자 550명에 대해 설문조사한 결과, 66.4%가 ‘제3국으로 이민 갈 생각이 있다’고 답했으며 70.5%는 ‘기회가 주어지면 미국으로 망명하고 싶다’고 밝혔다.

또한 이들 중 61.4%는 직장을 갖지 못하고 있고 취업을 했어도 정규직은 16.7%에 불과해 월 소득도 100만원 이하인 경우가 65.7%인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초기보다 줄긴 했지만 정부가 여전히 정착 지원금과 직업훈련 등 각종 지원을 해주고 있지만 탈북자들은 아직도 취업을 비롯한 생활 전반에 걸쳐 차별받고 있고 한국 입국 이후 재혼했을 경우도 북한에 남아 있는 배우자와의 이혼 확인이 안돼 혼인신고를 할 수 없는 등 불편을 겪고 있다.

윤인진 고려대 교수(사회학)는 “탈북자 지원은 임시방편적인 정책이 아닌 장기적 자립 정착을 유도하는 방향으로 원칙과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면서 “이들은 통일 이후 남북한 주민 간 사회문화적 통합을 이끌 수 있다는 점에서 경쟁력과 효율성만 강조한 지원이 아니라 보상과 배려와 같은 사회적 논리도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통일부는 탈북자 정착지원을 위해 ▲개인 특성을 고려한 맞춤식 지원 ▲취업연계와 준법교육 등 사회 적응교육 강화 ▲탈북 청소년 특성화 학교 설립 ▲기초 직업적응훈련과정 신설 등을 중점 추진하고 있다./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