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北대의원 선거…후계 징후 나오나?

북한이 예상보다 6개월 정도 늦기는 했지만 오는 3월 최고인민회의 12기 대의원 선거를 열겠다고 발표한 것은 북한 내부 정치를 정상화시키는 과정의 일부로 볼 수 있다고 전문가들이 분석했다.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는 6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사회주의 헌법 제90조에 따라 최고인민회의 제12기 대의원 선거를 2009년 3월 8일에 실시한다”고 발표했다. 북한 헌법에 따르면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의 임기는 5년으로 11기 대의원 임기는 작년 9월에 끝나는 것이었지만 북한은 그동안 선거를 미뤄왔다.

북한이 대의원 선거를 열었어야 할 8~9월은 김정일이 뇌혈관 계통 질환으로 쓰러진 시점과 일치한다. 따라서 북한이 김정일의 건강 이상으로 인해 정상적으로 정치 일정을 진행시킬 수 없었다는 것이 대체적인 관측이었다.

전현준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원래는 지난해 개최됐어야 할 12기 대의원 선거가 아무런 이유 없이 연기됐다”며 “북한이 시기를 안 지키는 것은 늘 있는 일이기는 하지만 대의원 선거는 98년 이후 5년마다 해왔던 만큼 김정일의 와병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이제라도 선거를 하겠다고 하는 것은 김정일의 건강이 상당히 회복됐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이에 따라 북한이 모든 부분에 있어 정상적인 활동에 들어가는 수순을 밟고 있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6개월 늦어진 선거…김정일 건강에 자신?=김광인 북한전략센터장도 “정상적이라면 늦어도 지난해 9월에는 선거가 치러졌어야 했다. 그러나 김정일이 알려져 있다시피 건강이 안 좋다보니 공식석상에 나올 수 없었던 것”이라며 “최근에는 현지시찰을 다니는 것만 봐도 건강에 자신감을 얻은 것 같다”고 말했다.

반면, 이기동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단순히 김정일의 건재를 과시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현실적인 필요성에 의해 개최된다고 볼 수 있다”며 “국가가 해야 할 일들, 예를 들어 예결산 처리나 부분적인 인사개편을 위한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할 필요성도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일성 사망 이후 세 번째로 개최되는 이번 12기 대의원 선거는 사실상 ‘김정일 통치 3기 시대’의 시작을 의미하는 것이라는 시각도 많다. 김정일은 김일성이 사망하기 한 해 전인 1993년 4월 최고인민회의 제9기 5차 회의에서 국방위원장으로 첫 추대된 후 1998년(10기)과 2003년(11기)에 각각 재추대됐다.

특히 김정일의 와병과 관련 북한 내에서 조만간 후계구도와 관련된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이번 대의원 선거를 통해 향후 북한 권력의 판도 변화를 점쳐볼 수 있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이기동 연구위원은 “드러내놓고 하지는 않겠지만 건강 이상설 이후 불거진 후계문제나 권력구조 문제 등을 준비하는 차원의 몇 가지 징후들이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연구위원은 “대의원 교체를 통한 권력 엘리트의 변화를 주목해야 한다”며 “핵심 엘리트들은 대부분 대의원들이기 때문에 이들을 교체하는 동시에 후계체제 구축을 위한 기반을 조성할 것으로도 보인다”고 관측했다.

전 연구위원은 “대의원이 얼마나 물갈이 되느냐가 초점”이라며 “어느 분야에 어떤 사람이 등장할지에 따라 북한 대내정책에 어떤 새로운 정책이나 구상이 나올지를 예상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한 “김정일이 국방위위원장에 재추대 되는 것은 ‘자신의 위상에는 변화가 없다’ ‘권좌가 흔들리지 않고 있다’는 뜻”이라며 “김정일 체제가 공고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의미라고 할 수 있다”고 해석했다.

김 센터장은 그러나 “후계 문제와 관련해 큰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무리”라며 “당 중앙위원이 바뀌는 거라면 또 모르겠지만 대의원 교체는 크게 의미는 없다”고 지적했다.

◆국방위원회 위상 변하나=이번 12기 최고인민회의에서는 형식적인 기구에 그쳤던 국방위원회의 위상에도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예상도 나왔다. 최고인민회의는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을 포함한 부위원장과 위원 등을 선임하기도 한다.

이 연구위원은 “조명록 제1부위원장과 같이 고령화 된 인물들을 측근과 실무진으로 대체하는 개편이 있을 수도 있다”며 “이는 국방위원회의 위상 강화와도 연결된다”고 말했다.

전 연구위원도 “국방위원회 위원들은 나이가 많고 실제적인 권한을 갖고 있지도 않다”며 “최근 국방위원회에 행정국장이나 행정실장이 보강되는 등 하부구조까지 점점 틀을 갖춰지는 면을 봤을 때 이번 회의를 통해 국방위원회가 실질적인 권한을 갖는 기구로 변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예상했다.

그러나 최고인민회의가 북한의 헌법상 최고주권기관으로 명기돼 있기는 하지만 실제로는 당 중앙위원회와 국방위원회의 결정사안에 대한 ‘거수기’ 역할에 그치기 때문에 형식적인 행사에 그칠 가능성도 높다.

김 센터장은 “최고인민회의 회의는 당에서 정책을 결정하면 차후에 추인하며 분위기를 돋구는 행사에 불과하다”며 “당에서 결정된 것이 한 번도 거부된 적이 없기 때문에 독자성이 있다고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 연구위원도 “신년사에서 발표한 당의 정책 방침을 지지하고 추인하는 역할 이외에 그 외의 별다른 발표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예상했다.

전 연구위원은 “김일성이 살아있을 때만 해도 최고인민회의는 대내정책과 관련해 정책적인 방향 등을 제시했지만 최근 들어서는 잘 내놓고 있지 않다”며 “예결산을 하는 것은 본연의 임무이기 때문에 하겠지만, 이외에는 새로운 것은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이번에는 대남문제에 대해 성명을 채택할 수도 있다”며 “지금은 남북관계가 나쁘기 때문에 미국보다도 남북관계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내놓을 가능성도 있다”고 전망했다.

한편, 선거 후 처음 열리는 최고인민회의 전체회의에서는 김정일이 빠짐없이 참석해 각종 의안에 대한 투표에서 대의원증을 들어 투표해 왔다는 점에서 김정일이 새로 구성되는 제12기 최고인민회의 첫 회의에도 대의원 자격으로 참석할지 여부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김 센터장은 “김정일은 지금까지 대의원 선거 이후 1차 회의에는 모두 참석했기 때문에 이번에도 모습을 드러낼 것”이라며 “만약 나오지 않는다면 유의미하게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