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북한] ‘3대 세습’ 착수…’시장’엔 고삐①

북한에 2009년은 후계체제 구축 착수와 김정일 체제 3기 출범, 헌법 개정, 화폐개혁 등 그 어느 해보다 굵직한 사건들이 많았던 ‘격동의 한해’였다.

지난해 8월 뇌졸중 질환으로 쓰러져 건강이 썩 좋지 못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공개활동을 작년의 두 배 가까이로 늘린 것이나, 4월 중순부터 ‘경제속도전’인 ‘150일 전투’와 ‘100일 전투’를 잇따라 벌여 주민동원에 총력을 기울인 것도 주목을 받았다.

정치적으로는 후계구도 정착과 체제 강화를, 사회.경제적으로는 경제난 타개를 겨냥해 마치 두 마리 토끼몰이에 나선 것처럼 보였다.

물론 정치적으로 가장 주목받은 것은 후계체제와 관련된 움직임이다.

북한은 1월 초 김 위원장의 3남 정은을 후계자로 지명한 후 7월께부터 그의 자질과 능력을 주민들에게 적극 선전하기 시작했고, 첫 찬양가요인 ‘발걸음’을 공개석상에서 합창하는 등 `후계자=김정은’을 공식화했다.

정치작업도 착착 진행했다. 김정은의 ‘후견인’ 역할을 맡은 장성택 노동당 행정부장(김정일의 매제)을 비롯해 노동당과 군, 공안기구의 핵심 인물들로 국방위원회를 새롭게 구성했고, 김영춘 국방위원회 부위원장과 리영호 평양방어사령관을 각각 인민무력부장과 군 총참모장에 기용했다.

또 4월에는 최고인민회의 제12기 1차 회의를 열어 국방위원장을 ‘최고영도자’로 규정하고 국방위원회의 권한을 대폭 강화하는 내용으로 헌법을 개정했다. 김정은은 1차 회의 직전 국방위원회 `지도원’ 직책을 받아 공식적인 후계자 수업을 시작했다.

김정은은 `150일 전투’와 전례 없이 성대히 치른 5.1절(국제노동절) 기념행사, 대규모 불꽃놀이인 `축포야회’ 등을 주도하는가 하면 김 위원장의 각종 공개활동에도 거의 빠짐없이 수행해 이른바 `업적 쌓기’에 주력했다.

올해 김 위원장의 공개활동이 매우 활발했던 점도 눈길을 끄는 대목이다.

북한의 언론매체 보도를 집계한 결과, 김 위원장은 올 들어 12월18일 현재까지 총 154회의 공개활동을 했다. 이는 1998년 김정일 체제 1기 출범 이후 최다이며 작년 동기(87회)에 비해 77% 증가한 것이다.

김 위원장의 올해 공개활동이 과거의 군 중심에서 벗어나 경제 부문에 집중됐다는 것도 특이하다.

올해 공개활동을 부문별로 보면 공장 시찰 등 경제부문이 66회(43%)로 가장 많았고 그 다음은 공연관람 등 기타활동 38회(25%), 군부대 시찰 등 36회(23%), 해외인사 접견 등 대외활동 14회(9%)였다. 작년까지는 군 관련 활동이 월등히 많았다.

김 위원장의 이런 행보에는 지난해 와병 후 자신의 건재함을 대내외에 과시, 체제 안정과 후계체제의 조기 정착을 도모하는 한편 만성적인 경제난도 타개해보겠다는 뜻이 담긴 듯하다.


북한은 또 김일성 주석의 100회 생일을 맞는 2012년에 `강성대국’을 건설한다는 목표 아래 국가적 역량을 총집중했다.

올해 신년 공동사설(신년사)의 제목도 `총진군의 나팔소리 높이 울리며 올해를 새로운 혁명적 대고조의 해로 빛내이자’였다. 이를 보면 `150일 전투'(4.20∼9.16)와 ‘100일 전투'(9.23∼12.31) 같은 주민동원은 필연적인 결과였다.

북한은 1971년 경제 ‘6개년계획’을 수행하면서 처음으로 ‘100일 전투’를 벌인 이래 그동안 ’70일 전투’, ‘100일 전투’, ‘200일 전투’를 여러 차례 했지만, 한 해에 두 차례나 ‘전투모드’의 주민동원을 벌인 것은 올해가 처음이다.

11월30일 전격 단행된 화폐개혁도 충격적인 조치였다.

이번 화폐개혁의 골자는, ‘가구당 30만원’ 식으로 일정한 한도까지만 구권을 ‘100대 1’ 비율로 새 돈과 교환해준다는 것인데, 노동자와 사무원 등의 급여는 종전 수준을 신권으로 지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당국이 공식 발표한 것은 많지 않지만 지금까지 알려진 내용을 종합하면 2002년 ‘7.1경제관리개선 조치’ 이후 급속히 커진 ‘시장’의 통제를 강화해 장사로 돈을 모은 ‘신흥 부유층’을 단번에 몰락시키는 한편 국가재정을 확충해 중앙집권적 계획경제를 원래대로 복원하려는 의도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북한은 `7.1조치’로 부분적인 시장경제적 요소를 수혈해 극도로 악화된 경제난과 주민 생활고를 완화해보려 했지만 2005년부터 뒷걸음질을 쳤다. 결국 이번 화폐개혁은 `부의 양극화’에 따른 사회불안정의 싹을 아예 잘라버리고 국가통제 강화로 국면을 되돌리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그런 맥락에서 최근 북한이 부동산관리법, 물자소비법 등 경제관련 법령을 제정한 것도 화폐개혁의 연장선에 있다고 봐야 한다. 이들 법률의 구체적인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부족한 재정 확충과 자원의 효율적 관리, 중앙집권적 요소 강화 등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북한 노동신문은 12월 4일자에서 올해를 “불같이 흘러온 한 해, 조국강산에 커다란 변이 난 한 해”였다고 자평했다. 여러 가지 파격적인 조치들이 단행됐지만 만족할 만한 성과를 내지는 못했다는 뜻으로 풀이돼 눈길을 끈다.

동국대 북한학과의 김용현 교수는 “북한은 올해 김정일 위원장의 건강이 어느 정도 회복되자 ‘강성대국’의 기치 아래 내부 정비와 도약을 목표로 여러 가지 정책들을 추진했지만 두드러지게 뚜렷한 성과를 내지는 못했다”고 지적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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